[뉴스컬처 최진승 기자] 전남 여수시 시전동에 위치한 '여수 선소유적(사적 제392호)'은 왜란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던 조선 병기창의 심장부다.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는 4월의 선소는 평화롭지만 이곳에 새겨진 기록들은 400여 년 전 긴박했던 망치 소리를 생생히 전하고 있다.
선소유적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지형이다. 이곳은 가막만 최북단에 위치해 있고, 바다 입구의 가덕도와 장도가 방패 역할을 해준다. 덕분에 먼 바다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고 파도가 잔잔해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들고 숨겨두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이곳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나대용 장군과 함께 거북선을 건조한 곳으로 유명하다. 유적지 곳곳에는 당시의 공정을 짐작케 하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굴강(掘江)은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하며 배를 대피시켰던 인공 호수다. 잔잔한 물결 위로 당시 거대한 거북선이 위용을 뽐내며 떠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대장간 터도 남아 있어 당시 무기를 직접 제작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암반 사이에서 솟아나는 천연 샘물을 활용해 무기를 벼리던 장소로 복원됐다.
해안 쪽으로 조금 더 가면 지휘소였던 세검정(洗劍亭)과 무기 창고인 군기고(軍器庫)를 만나볼 수 있다. 세검정은 집무 및 지휘소 기능을 담당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1980년대 발굴 조사를 통해 철제 화살촉과 배에 쓰인 못들이 발견되면서 실체가 입증됐다. 조사 당시 주춧돌의 간격 등으로 규모가 확인됐고, 1986년 앞면 7칸 옆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복원됐다.
군기고는 군사무기를 보관하던 창고로 추정된다. 외부의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주춧돌 사이 벽체를 토담으로 튼튼하게 쌓았으며, 건물터 앞에서 쇠로 된 화살촉, 배에 사용된 못 등이 발견됐다. 군기고는 앞면 4칸, 옆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세검정과 함께 복원됐다.
세검정과 군기고 옆으로 난 샛길로 조금 더 나가면 계선주(繫船柱)를 볼 수 있다. 계선주는 해안가에 홀로 선 1.4m의 돌기둥으로 배를 묶어두던 정박 시설이다. 판옥선과 거북선이 이 기둥에 밧줄을 매고 출격의 때를 기다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한편 선소가 1995년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대대로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배를 타며 살던 선소마을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야 했다. 선소 입구에는 그들의 아픔이 기록돼 있다. 선소유적은 주민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역사의 보루인 셈이다.
현재 여수시는 선소유적 인근에 선소테마정원을 조성 중이다. 지난 2021년부터 국·도비 총 195억 원 규모로 선소 유적지 내 테마영상전시관 및 탐방로 등을 만들고 있다. 당초 2025년 완공 예정이었지만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현장 관계자는 "보수공사 등으로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면서 "올해 6월초 개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여수 선소유적은 화려하진 않지만 흙담에 서린 역사의 무게가 남다른 곳이다. 마을 입구와 유적 곳곳에 위치한 벅수(돌석상)들은 이곳을 지키고자 했던 민초들의 염원이 서려 있다. 이순신 장군의 전략적 혜안과 나대용 장군의 기술력, 그리고 이름 없는 대장장이와 마을 주민들의 헌신이 모여 거북선이 건조되었음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올 여름 여수 밤바다를 찾아온 이가 있다면, 잠시 가막만의 해안을 따라 과거 위대했던 조선소의 흔적을 찾아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뉴스컬처 최진승 cjs92748897@gmail.com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