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영어 레벨테스트 금지 내용을 담은 학원법이 올해 9월 시행을 앞둔 가운데 학부모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 사교육 규제에 대한 실효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에도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기 위한 여러 가지 규제를 내놓았지만 음성적·우회적 행태만 키웠을 뿐 규제 효과는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규제 보단 공교육 강화를 통해 사교육 수요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끔 만드는 식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수요 넘쳐나는데 무조건 금지, 과거에도 역효과로 학부모 사교육 부담 키운 사례 수두룩
교육부가 1일 발표한 '아동 발달권 보호를 위한 영·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은 ▲시험(레벨테스트)을 통한 비교·서열화 금지 ▲한국어 사용 제한 ▲장시간 주입식 수업 및 신체활동 구속 등을 비정상적인 영업 행태로 규정하고 이를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담고 있다. 여기서 '주입식 교육'은 강사가 지식 주입을 위해 주도적으로 인지 교습을 하는 것을 의미하며 '장시간'은 1일 3시간, 1주 15시간 초과일 때 해당된다.
규제의 실효성 담보를 위해 제재 수위 또한 대폭 상향했다. 과징금 부과 상한액을 매출액의 50%로 올렸으며 과태료 또한 1000만원까지 늘렸다. 파파라치 활성화를 위해 신고보상금도 200만원으로 증액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영·유아의 발달권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려는 목적이다"며 "영·유아기는 개인의 평생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국가가 책임 있게 지원하겠다"고 규제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이번 교육부의 영·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을 두고 학부모와 학생, 다수의 전문가들은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과거에도 학원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규제책을 쏟아냈지만 사교육이 줄어들긴 커녕 오히려 음성화를 부추켜 종국엔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만 키운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학원 심야영업 규제가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됐다. 앞서 정부는 학생의 수면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운영을 금지했지만 결과적으로 학생의 저녁식사 시간만 뺏어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야간 수업이 불가능하다 보니 학원들이 저녁 수업 공백을 없앤 결과였다. 지금도 대치동 학원을 전전하며 수업을 듣는 많은 수많은 학생들은 저녁 먹을 시간이 없어 편의점 김밥이나 과자로 배를 채우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서울 대치동 소재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유나 씨(16·여·가명)는 "학원 수업이 전부 10시에 끝나다 보니 대부분의 학원이 저녁 수업 시간을 빽빽하게 채워놨다"며 "학원을 돌다 보면 저녁 먹을 시간이 부족해 편의점을 가거나 간혹 엄마가 간단히 도시락을 싸오면 카페에 잠깐 들려 먹거나 하는 식으로 저녁을 때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까지 강남구 대치동의 한 영어학원에 근무했던 이나리 씨(40·여·가명)는 "아이들이나 강사들이나 저녁은커녕 쉬는 시간도 없이 수업을 7~8시간씩 연달아 진행하는 게 학원가의 일반적인 루틴이다"고 말했다.
'스터디 카페' 혹은 '관리형 독서실' 등을 별도로 운영하는 학원들도 생겨나고 있다. 두 곳 모두 '밤 10시 제한'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원 관계자는 "학원은 학생들 성적을 올리는 것이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학업이 부진한 아이들은 절대적인 시간을 더 투입해서 공부시킬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학원이 관리형 독서실을 함께 운영하는 것이 모두 법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밤 10시까지만 수업을 하도록 한 이후 그런 시설이 늘어난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전두환정권 시절 시행된 '과외금지'가 대표적이다. 당시 과외는 단순 규제 대상이 아니라 범죄로 치부됐다. 적발되면 직장인이든 공무원이든 바로 퇴출됐으며 부모와 과외교사의 신상이 공개되고 학생들은 무기정학을 당했다. 그럼에도 과외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동하는 자동차 안에서 과외 수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과외교사를 하숙생으로 들여 자녀 교육을 맡기기까지 했다. 또 과외 자체가 범죄로 치부되면서 일종의 '위험수당'까지 생겨나 과외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특정 대상을 타깃으로 한 직접 규제는 결국 새로운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며 수요 자체를 억제하는 식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교육부와 통계청의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0%로 전 세계 평균인 43.9%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인국 고려대학교 행정전문대학원 교수는 "학부모들이 왜 자녀의 유아기 시절부터 영어를 교육시키려는 건지 그 이유부터 파악해야 한다"며 "한국 입시에서 성공하려면 내신과 수행을 모두 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모든 과목을 골고루 잘해야 되는 현실이 됐는데 그 선결조건이 바로 유아기 때 영어를 끝내는 것이다"고 운을 뗐다. 이어 "교육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외부로 드러나는 행태만 규제하려고 하다 보니 실패를 거듭하는 것이다"며 "학부모와 학생이 공교육을 신뢰하지 못해 사교육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수요 분산을 위한 공교육 정상화 등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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