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서양의 코냑과 조선의 포도소주-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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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서양의 코냑과 조선의 포도소주-①

연합뉴스 2026-04-02 14:00: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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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여동빈도', '묵포도도', '가응도' '여동빈도', '묵포도도', '가응도'

[안산시 제공]

한반도에 포도가 처음 들어온 것은 언제일까? 역사학계에서는 실크로드를 거쳐 삼국시대 무렵 중국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일신라 시대의 안압지 출토 유물이나 옛 기와(와당)에 새겨진 정교한 포도 덩굴 무늬가 그 오래된 인연을 증명한다.

세월이 흘러 조선시대에 이르러 포도는 많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한 덩굴에 수많은 알맹이가 주렁주렁 열리는 포도의 특성은 다산(多産)과 다남(多男), 그리고 가문의 번창과 풍요를 상징하는 귀한 길상(吉祥)의 징표로 대접받았다.

백자철화포도문항아리 백자철화포도문항아리

[이화여대박물관 소장]

신사임당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화가가 그린 초충도나 묵포도도, 그리고 새하얀 백자 위에 푸른 안료로 그려 넣은 '백자철화포도문항아리' 등 조선의 예술 작품 속에 포도가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신사임당 작 묵포도도 신사임당 작 묵포도도

[간송미술관 소장]

이처럼 과일이 있고 예술이 있었으니, 우리 땅에도 자연스럽게 그 과일을 활용한 '포도주'가 존재했다. 흔히 와인을 서양의 전유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선조들 역시 오래전부터 붉은 포도로 술을 빚어 그 풍류를 즐겼다.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를 통해 서역의 포도주가 처음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전기에 이르면 아예 우리 땅의 기후와 환경에 맞춘 독자적인 양조법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1540년대 경북 안동의 탁청공 김유가 쓴 조선 전기 최고(最古)의 조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에 포도주 빚는 법이 명확히 기록돼 있다. 흥미로운 점은 서양의 양조 방식과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와인은 으깬 포도의 즙과 껍질에 붙어 있는 천연 효모만을 이용해 발효시킨다. 하지만 당시 한반도에서 자라던 산포도나 머루 등 토종 포도 품종들은 서양의 양조용 포도에 비해 당도가 낮고 신맛이 강해 포도만으로는 알코올 발효를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빛을 발했다. 이들은 토종 포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곡물과 누룩을 포도와 함께 버무려 빚어내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택했다. 질 좋은 쌀이나 찹쌀로 고두밥을 짓고, 잘 띄운 누룩을 섞어 밑술을 만든 뒤, 알알이 떼어내 깨끗하게 씻어 으깬 포도를 듬뿍 넣어 함께 발효시킨 것이다.

이렇게 하면 쌀에서 우러나오는 부드러운 단맛과 누룩의 강력한 발효력, 그리고 포도의 새콤달콤한 과즙이 항아리 속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발효가 끝난 뒤 맑은 부분만 걸러내면, 요즘 유행하는 내추럴 로제 와인처럼 고운 분홍빛을 띠는 '조선식 와인'이 탄생한다. 포도의 향긋함과 곡주의 깊은 맛을 동시에 품은, 서양 와인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매력을 지닌 우리만의 포도주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행복한 상상을 해볼 수 있다. 훌륭한 와인이 존재했다면, 이를 불로 다스려 증류한 코냑(브랜디)도 당연히 있지 않았을까?

놀랍게도 조선의 최고급 주류 문화에는 포도주를 한 번 더 증류해 낸 '포도소주'(葡萄燒酒)가 분명히 존재했다. 19세기 조선 후기 실학자 풍석 서유구의 방대한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의 '정조지' 편에는 아예 '포도소주방'이라는 이름으로 이 맑은 술을 내리는 제조법이 독립된 항목으로 상세히 적혀 있다.

풍석(楓石) 서유구(1764-1845) 초상 풍석(楓石) 서유구(1764-1845) 초상

[연합뉴스 자료 사진]

잘 익은 붉은 포도주를 무쇠 가마솥에 붓고, 그 위에 흙으로 빚은 소줏고리를 얹어 장작불을 지핀다. 솥 안의 술이 끓어오르며 알코올 증기가 솟아오르면, 차가운 물을 얹은 소줏고리 위쪽에서 응결되어 이슬처럼 맑고 투명한 진액이 한 방울씩 조심스레 떨어져 내린다.

곡물이 만들어낸 묵직한 바디감, 누룩 특유의 풍미, 그리고 증류기를 타고 화려하게 넘어온 포도의 폭발적인 향취가 극적으로 응축된 궁극의 증류주다.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해 보면 포도소주는 그야말로 극강의 사치품이었다. 조선시대에 포도는 그 자체로 비싸고 귀한 과일이었다. 생명과도 같은 쌀과 정성껏 디딘 누룩에 그 귀한 포도까지 듬뿍 넣어 술을 빚은 것도 모자라, 이를 다시 열매 맺듯 불로 다스려 솥 한가득 끓여내도 얻을 수 있는 양은 극소량에 불과했다.

수율과 원가로 따지면 오늘날의 최고급 싱글몰트 위스키나 명품 코냑을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이다. 일반 백성들은 평생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던, 오직 조선 최상류층 왕실과 사대부만이 은밀하게 누릴 수 있었던 미식의 결정체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땅의 포도를 증류해 맑은 진액을 얻어내는 이 '포도소주'의 명맥이 단절되지 않고 현대에 이르러 더욱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전국의 지역 와이너리들은 그저 국산 와인을 만드는 것을 넘어, 한 단계 진일보한 프리미엄 'K-브랜디' 시장을 개척하며 애주가들의 미각을 사로잡고 있다. (2편에서 계속)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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