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2면-1> 혼자지만 함께, 무알콜 '어드민 나이트'에 빠진 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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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2면-1> 혼자지만 함께, 무알콜 '어드민 나이트'에 빠진 Z세대

아주경제 2026-04-02 13:19:40 신고

군고구마.” “네.”
“햄스터 왕자!” “네.”

화요일 밤 8시,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 이름 대신 닉네임이 불릴 때마다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어색한 웃음이 스치지만 분위기는 금세 가라앉는다.

“오늘 할 일 하나씩 말씀해 주세요.”

“지난주에 시작한 책 끝낼게요.”
“블로그 글 마무리하겠습니다.”
“논문 수정이요.”

각자의 선언이 끝나자 진행자가 말한다.

“지금부터 두 시간 동안 대화 없습니다.”

그 순간 공기가 바뀐다. 노트북이 동시에 열리고 이어폰이 꽂히며 손이 분주해진다. 방금까지 낯선 사람들이었던 이들은 순식간에 각자의 세계로 들어간다. 카페 안에는 키보드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만 남는다.

 

1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참석자들이 어드민 나이트 모임을 마치고 인증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AJP유나현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참석자들이 '어드민 나이트' 모임을 마치고 인증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AJP유나현

이른바 ‘어드민 나이트(Admin Night)’. 이름은 가볍지만 분위기는 묘하게 긴장감이 흐른다. 단순한 모임이 아니다. 미뤄둔 일을 반드시 끝내기 위해 모이는 자리다. 

모임을 운영하는 최경원(28) 씨는 핵심을 이렇게 설명한다. “혼자 있을 때는 계속 미루게 되는데 여기서는 달라요. 한 번 하겠다고 말하면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거든요.” 

실제로 두 시간 동안 거의 자리를 뜨지 않는 참가자들이 많다. 휴대폰을 확인하는 사람도 드물다. 짧은 집중이 아니라 ‘완전히 몰입하는 시간’이 만들어진다. 

공동 운영자인 조현준(32) 씨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했다. 

“두 시간 내내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집중하는 걸 보면 이런 공간이 정말 필요했구나 싶어요.” 

참가자들이 가져오는 일은 다양하다. 여행 계획, 영상 편집, 취업 준비, 자격증 공부, 학업 과제까지 각자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혼자서는 계속 미뤄왔던 일이라는 점이다. 

이 모임의 구조는 단순하다. 함께 있지만 철저히 각자다. 대화는 시작과 끝에만 허용된다. 닉네임만 쓰고 서로를 깊이 묻지 않는다. 관계를 확장하기보다 목적을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대신 생기는 감각이 있다. 

“누가 직접 보는 건 아닌데 계속 지켜보는 느낌이 있어요.”

참가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이는 단순한 분위기가 아니라 심리적 장치에 가깝다.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진행되는 어드민 나이트 모임 안내문이 책상 위에 놓여있다 AJP유나현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진행되는 '어드민 나이트' 모임 안내문이 책상 위에 놓여있다. AJP유나현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이를 ‘사회적 촉진’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타인의 존재만으로도 수행 능력이 높아집니다. 낯선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지만 완전히 단절된 상태는 아닌 것이죠.”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최근 주목받는 ‘바디 더블링(body doubling)’도 있다.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집중력이 높아지는 행동 전략이다. 감시가 아니라 ‘느슨한 시선’이 만들어내는 집중이다. 

어드민 나이트는 단순한 자기계발 모임을 넘어 관계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감정 소모가 큰 관계를 피하려는 경향은 있었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이 흐름은 더욱 뚜렷해졌다.  대면 접촉은 줄고 비대면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관계는 더 선택적이고 통제 가능한 형태로 바뀌었다. 깊은 관계 대신 부담 없는 연결을 선호하는 흐름이다. 

참가자 최경원 씨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목적이 분명한 만남을 더 선호해요. 수다가 길어지면 오히려 집중이 흐트러지거든요.”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어드민 나이트 모임을 마치고 모임 운영진 조현준32씨가 소감을 나누고 있다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어드민 나이트' 모임을 마치고 모임 운영진 조현준(32)씨가 소감을 나누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퇴근 후 술자리’ 문화의 대체 흐름으로도 읽힌다. 술 대신 커피, 관계 대신 집중, 감정 교류 대신 생산성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특히 Z세대에게 시간은 소비 대상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다. 이들은 시간을 나누기보다 구조화하고 통제하려 한다.

어드민 나이트는 그 욕구가 집약된 형태다. 이 현상은 한국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사일런트 스터디, 코워킹 모임, 딥워크 세션 등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원격근무의 확산은 자유를 키운 동시에 고립감을 키웠다. 이에 따라 ‘느슨하게 연결된 협업’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실제로 원격근무자의 약 25%가 매일 외로움을 느낀다는 조사도 있다. 전 세계 약 4만2000개의 코워킹 공간이 500만 명 이상을 수용하고 있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디지털 공간에서도 유사한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화상으로 서로를 켜둔 채 함께 작업하는 ‘온라인 바디 더블링’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곽 교수는 한국 청년들이 이 변화의 선두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실용적입니다. 관계의 경계를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연결은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효율적이면서도 성숙한 방식입니다.”  

밤 9시 50분. 타이머가 울린다. 

“오늘 어땠는지 한 분씩 말씀해 주세요.” 

“8주 걸릴 줄 알았던 책을 절반이나 읽었어요.” 

짧은 공유가 끝나자 사람들은 조용히 짐을 챙긴다. 긴 인사는 없다.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도 없다.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며 다시 혼자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혼자지만 함께.’

어드민 나이트는 관계를 최소화하면서도 연결을 포기하지 않는 방식이다. 깊이 얽히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활용하는 새로운 협업 구조다.

조용한 카페 안에서 청년 세대는 지금 관계와 효율 사이의 균형점을 다시 설계하고 있다.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어드민 나이트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AJP유나현
3월31일 오후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어드민 나이트'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AJP유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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