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초등학교 시절 보온병에 따뜻한 밥을 싸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밥은 항상 온기를 품고 있었고 마치 갓지은 듯한 윤기가 흘렀다.
보온병은 그저 따뜻한 물을 오래 유지하는 생활용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온병은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탄생했다.
이야기는 19세기 말,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듀어의 실험실에서 시작된다. 그는 액체 산소와 같은 극저온 물질을 연구하던 중 난관에 부딪혔다. 아무리 단열을 해도 온도가 금세 올라가 버렸다. 어느 날 그는 유리병 두 개를 겹치고 그 사이의 공기를 빼내는 방식을 떠올렸다. 공기가 없으면 열이 전달될 길도 줄어든다는 단순하지만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실험은 성공이었다. 액체 산소는 이전보다 훨씬 오랜 시간 차가운 상태를 유지했다. 다만 듀어에게 이 발명은 어디까지나 ‘연구 도구’였다. 그는 특허를 내지도 않았고, 상업화에도 관심이 없었다. 과학자의 세계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이 유리병에 눈을 빛낸 이들이 있었다. 바로 독일의 유리 공예업자들이었다. 그중에서도라인홀트 버거는 이 기술이 일상생활에서 큰 가치를 가질 것이라 직감했다. 그는 금속 케이스를 덧씌워 깨지기 쉬운 유리병을 보호하고, 휴대가 가능하도록 개선한다.
1904년, 그는 이 제품에 ‘보온병’이라는 개념을 입히며 이름을 붙인다. 그 이름이 바로 라틴어로 ‘열’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써모스(Thermos)다. 이후 ‘써모스’는 브랜드를 넘어, 보온병 자체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기 시작한다.
초기의 보온병은 탐험가와 군인들의 필수품이었다. 북극 탐험대는 혹한 속에서도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었고, 전쟁터의 병사들은 차가운 물 대신 온기를 유지한 음료로 체력을 지탱했다. 과학자의 실험 도구가 인간의 생존을 돕는 장비로 변신한 순간이었다.
한국에 보온병이 들어온 시점은 정확히 한 시기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를 거치며 서서히 보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주로 일본을 통해 수입된 제품이었고, 부유층이나 외국 문물을 접한 계층에서 먼저 사용되었다.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산업화가 진행되던 1970~1980년대였다. 도시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가방 속에는 보온병 하나쯤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소풍이나 수학여행 도시락 옆에는 어김없이 따뜻한 보리차를 담은 보온병이 자리했다. 당시의 보온병은 단순한 용기를 넘어 ‘가정의 온기’를 밖으로 옮겨주는 매개였다.
특히 겨울 아침, 어머니가 끓여 담아주던 따뜻한 차 한 병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었다. 보온병 뚜껑을 컵처럼 돌려 따르던 순간, 김이 올라오며 퍼지던 온기는 단순한 물리적 열을 넘어선 정서적 체온이었다.
오늘날 보온병은 스테인리스 소재와 진공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가볍고 견고해졌다. 커피 문화의 확산과 함께 텀블러 형태로 진화하며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실험실에서 시작된 작은 발명은 시간을 견디며 인간의 일상을 데우는 물건이 되었다. 보온병은 결국 ‘열을 지키는 기술’이 아니라, ‘온기를 나누는 도구’로 남는다.
뉴스컬처 최병일 skycb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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