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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제가 도입 46년 만에 전면 폐지 기로에 섰다. 전속고발제는 불공정 행위를 저지른 기업을 형사 고발할 수 있는 권한을 공정위에만 부여한 제도로, 무분별한 고발로 기업 활동이 위축되는 일을 막기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공정위는 최근 ‘전속고발제 전면 개편 추진방안’을 내놨다. 개편안의 핵심은 18세 이상 국민 300명 이상이 연서하거나 30개 이상의 사업자가 뜻을 모으면, 공정위 조사 여부와 관계없이 수사기관에 직접 고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데 담합으로 가격이 오른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함께 나서 기업을 직접 형사 고발할 수 있게 된다.
유통업계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가 업계 분쟁의 형사화를 촉진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 외식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공정위라는 1차 필터링 역할이 사라지면 관련 법률을 판단할 전문성 결여 문제가 발생하고 경쟁사 등의 악의적인 고발이 남발될 수 있다”며 “특히 1000명이 넘는 가맹점을 보유한 본사 입장에서 30명만 모이면 고발이 이뤄진다는 것은 허들이 너무 낮아 정상적인 사업 영위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층적인 거래 구조를 가진 물류업계의 위기감도 팽배하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대리점이나 위수탁, 도급 등 거래 구조에서 문제가 생겨도 공정위가 중간에서 거를 것은 거르는 역할을 해왔다”며 “이 과정이 통째로 생략되고 협력사들이 직접 형사 절차를 밟게 되면 얽히고 설킨 물류업계 특성상 고소와 고발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유통업계에서는 납품 단가 협상 등에서 고발 권한이 본사를 압박하는 무기로 전락할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한 플랫폼사 관계자는 “납품가 협상이 틀어진 업체가 잃을 것이 없다는 식으로 검찰 고발을 무기 삼아 협박하는 이른바 역갑질 사례가 쏟아질 것”이라며 “사방에서 이어지는 신고에 대응하기 위해 전담 조직을 만들고 인원을 늘려야 하는 등 기업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경영상 부담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이미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ESG) 등으로 기업들의 준법 수준이 고도화된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인 규제라는 비판도 잇따른다. 또다른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지금 기업들은 강화된 법 규제와 ESG 경영 등으로 법 테두리 안에서 매우 보수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오히려 디자인 모방 등 잘잘못을 명확히 따지기 어려운 영역을 빌미로 협상력을 높이려는 블랙컨슈머가 늘어날 것”이라며 “목소리가 큰 일부의 억지 주장이 판을 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남용 방지 장치와 명확한 기준 마련 없는 섣부른 전속고발권 폐지는 결국 유통 및 프랜차이즈 산업 생태계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업의 안정성이 확보돼야 소비자도 가격이나 상품 공급의 안정성을 담보받을 수 있다”며 “고발이 너무 빈번해지면 사업 행위의 안정성을 저해하고, 이는 결국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상품의 품질이나 가격의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산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적용을 경계하며 충분한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산업별로 처해진 계약관계나 상황이 모두 다르다. 어느 산업에 관련돼서 어느 테두리에서 적용 할 것인지 명확히 해야한다”며 “전반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전문가들과 함께 공론 과정을 더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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