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춘희 & 조성민
Gee Chun Hee of MISS GEE COLLECTION
& Cho Sung Min of JADEN CHO
“사실 1년에 두 번 컬렉션을 진행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런데 그냥 무작정 가는 거예요.
가야만 존재할 수 있고, 존재해야 후배들에게도 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지춘희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 저희는 세대 간 소통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두 분과 함께 ‘양방향 멘토링’이라는 개념을 제시해보려고 해요.
제이든 초(이하 조) 뜻깊은 기획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제이든 초의 조성민입니다. 한국에서 사라져가는 감정들을 시각화하기 위해 1980년대의 실크나 당대를 풍미한 색감을 활용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춘희(이하 지) 저는 미스지 컬렉션의 지춘희입니다. 반갑습니다.
‘멘토링’을 주제로 모인 만큼, 두 분의 커리어 초기에 ‘멘토’라 할 만한 인물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조 어머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성장했어요.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신 적도, 원단을 수입하신 적도 있어 종종 일을 도와드렸거든요. 때로는 강제성을 띠기도 했지만(웃음), 자연스럽게 다양한 부분을 배웠죠.
지 굉장히 귀한 어린 시절을 보냈네요. 저는 세월이 지나고 보니 주위의 모든 것이 멘토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확히 특정한 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주변인, 동경하던 인물, 인상 깊은 영화나 배우. 모두 배울 점이 있었죠. 환경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일을 시작할 당시에는 자료가 풍부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원단 수입도 자유롭고, 세계 어디든 나가서 필요한 공부를 하거나 재료를 살 수 있죠. 당시에는 저지 천 하나를 구하기도 힘들어서 부산까지 가서 배로 갓 들여온 원단을 구입하곤 했어요. 무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고생해야 했는데, 그게 오히려 값진 경험이 되었죠.
두 분 모두 ‘한국의 쿠튀리에’로 일컬어질 만큼 수작업을 고수하시죠.
지 언제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런 작업 방식이 이어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디자이너는 일종의 감독이에요. 주변의 장인들이 각자의 영역을 완성하며 도와주어야 하고요. 그런데 앞 세대는 나이 들었고, 이어갈 세대가 없죠. 한국 패션의 존립 여부가 달린 만큼 하루빨리 환경을 구축해 젊은 장인을 양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조 정확히 ‘오트 쿠튀르를 한다’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제대로 된 옷을 만들고자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태도까지 고객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옷을 통해 소통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죠.
세대가 다른 만큼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기대나 책임감도 다를 텐데, 어떠세요?
조 지춘희 선생님의 시대는 아마 없는 가운데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야 하는 시기였으리라 짐작해요. 반면 제가 속한 세대는 모든 게 갖춰진 상황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해야하니 장단점이 분명하죠.
지 예전에는 원단도 직접 염색해서 쪄낼 정도로 창조적인 시도가 잦았어요. 또 옷 자체가 귀하다 보니 조금만 잘해도 각광받았죠.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금 젊은 디자이너들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서 말한 대로 기술을 가진 조력자가 드물어지면서 테일러링을 하기도 쉽지 않을 테고요. 그래서인지 옷의 구조가 단순해지는 듯한 인상도 받아요.
조 사라지는 공장도 너무 많아요. 실제로 제 주변에도 일을 그만두는 장인이 점점 늘어나면서 매 순간이 소중해요. 어떤 디자인은 당장 만들어놓지 않으면 이듬해에는 제작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고요.
지 예전에는 수트 한 벌도 심지를 얇기별로 겹쳐서 형태를 잡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요즘은 그렇게 못 하죠.
조 소재 측면에서도요. 접근할 수 있는 원단의 범위는 넓어졌지만, 질적으로는 낮아진 것 같아요. 저는 소재야말로 비전을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여기거든요. 그래서 어렵지만 소재 개발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나중에 누군가 이 역할을 이어가주기를 바라면서요.
오너로서는 또 다른 힘듦이 있겠죠?
조 하고 싶은 일과 사업성이 상충할 때가 잦아요. 매 순간 두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죠. 아침저녁으로 심장이 떨릴 정도예요. 선생님은 이런 걸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지 예전엔 명동에 매장이 있었는데, 강남의 집에서 출발해 한강 다리를 건널 때마다 너무 불안했어요. 하룻밤 사이에 가게가 없어졌을까 봐요. 늘 초조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더라고요. 결국 끊임없이 고난을 딛고 일어나야 나아가는 거겠죠. 지난 세월 동안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모든 결정을 도맡아 했어요. 그렇다 보니 일하면서 여유롭고 즐거워야 하는데 늘 짜증이 잔뜩 나 있었죠.
조 그럴 땐 어떻게 해소하셨어요?
지 여행을 자주 다녔어요.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그게 큰 힘이 됐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머리가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니까요.
‘분리의 기술’을 그렇게 터득하셨나 봐요.
지 분리하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이 일을 하려면 디테일이 아주 중요해요. 디테일을 잘 보려면 머리를 깨끗하게 비워야 하고, 또 선택한 걸 뒤돌아보지 않을 줄 알아야 하죠. 워낙 매사에 미련을 두지 않는 편이기도 해요.
조 오늘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들, 줄곧 스스로 되뇌던 질문이에요.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요. 저 역시 출근하면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직원들과 저 자신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날들을 보내거든요.
지 책상 앞에 앉아서는 변화를 만들 수 없어요.
조 선생님도 처음부터 그걸 아신 건 아니겠죠?
지 그렇죠. 훈련이라면 훈련을 한 셈이에요. 패션도 결국 산업이고, 사회현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다른 세계로 나가서 넓은 사회를 겪어야 해요. 우리나라 패션도 나라가 잘살게 된 만큼 접근 가능한 영역이 커진 것처럼요.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체감해요.
지 IMF 외환 위기 때는 프리미에르 비종(Première Vision, 세계 최대의 텍스타일 박람회)에 가도 입장 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그 당시 우연히 마주친 해외 언론과 인터뷰하며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경제는 순환하고, 돈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법인데, 우리를 이렇게 무시하면 안 되지 않아요?”라고요. 변화한 세상을 보면 참 뿌듯해요. 하지만 아직 한국 패션의 정체성이라고 할 만한 특징이 없다는 점은 아쉬워요.
조 이제 한국 패션이 뭔지, 한국 패션 시장 안에서 스스로 정의를 내리고 다음 단계로 향해야 하는 것 같아요. 숙제죠.
지 뷰티, 문화가 주목받고 하다못해 만두까지 동이 나잖아요. 패션계도 힘을 모아야 한다고 느껴요.
그러기 위한 첫걸음은 잘 만든 옷을 보여주는 거겠죠. ‘좋은 옷’의 본질은 뭘까요?
지 글쎄요. 말로 하려니 어렵네요. 직감으로 알아보는 것 같아요. 좋은 디자이너인지, 좋은 옷인지.
조 저는 창조가 더 이상 없다고 느껴요. 중요한 건 ‘조합’이죠.
개인적으로 모든 본질에는 진심이 수반되는 것 같아요.
지 그건 맞아요. 일하는 것, 사는 것. 모두 진심이 아니면 통하지 않을 테니까요.
진심을 나눌 조언자의 필요성을 느낀 적도 있으신가요?
지 만드는 건 잘할 수 있으니까 운영을 누군가 맡아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해요.
조 가끔 어디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지 몰라 불안해요. 가끔은 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무너질까 무섭고요.
지 혼자 다 할 수는 없어요. 나눌 부분은 나눠야 브랜드도 성장하고, 성민 씨가 만든 옷을 더 많은 사람이 입게 되겠죠.
불안한 시간은 어떻게 지나오셨어요?
지 일은 일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 같아요. 돌아보면 나쁘지 않았네요. 그냥 이겨내고, 앞으로 가고, 또 이겨내고···. 꾸준히 그렇게 왔어요.
조 최근 더 이상 하고 싶은 일만 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했어요. 이제 브랜드를 더 사업적인 시각으로 대해야 하는 시점이니까요.
지 일인데 뭘 떨어요. 해보고 아니면 돌아가면 되는 거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 있으면 아무래도 무서워지죠.
지 사실 1년에 두 번 컬렉션을 진행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런데 그냥 무작정 가는 거예요. 가야만 존재할 수 있고, 존재해야 후배들에게도 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패션쇼라는 프레젠테이션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도 궁금해요.
지 쇼는 생물이잖아요. 사진은 박제고. 연극처럼 객석과 호흡하는 느낌과 열기가 좋아요. 20~30분이면 끝나긴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관중 없이 쇼를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상호작용이 안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조 모델에게 옷을 입히는 순간의 기분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어서 재작년에 아주 작게 첫 쇼를 진행했어요. 무척 힘든 시기였는데, 객석에서 전달되는 응원과 메시지 덕에 충전되더라고요.
지 연속적으로 하면 자기 발전도 되고 좋아요.
두 분이 대화하는 걸 보니 이제 조금 친숙해지신 것 같아요.
조 아까부터 하고 싶은 질문이 있었어요. 어릴 적 미스지 컬렉션 매장에 갔을 때 마네킹이 참 인상 깊었거든요. 그때부터 속으로 생각했죠. ‘이렇게 컬러풀하고 독특한, 심지어 손가락도 없는 마네킹을 왜 선택하셨을까?’ 하고요.
지 마네킹이라는 게 거의 비슷하잖아요. 그게 싫었나 봐요. 그래서 다른 형태를 찾다가 뉴욕의 한 쇼룸에서 발견했죠. 물론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어요. 깨끗한 마네킹에 입혀야 옷이 보이고, 그래야 잘 팔린다고. 그래도 내 뜻을 관철했죠. 욕 먹으면서.(웃음)
마네킹처럼 모델도 다양하게 기용하셨어요. 예전에는 모델이라면 무조건 키가 크고 말라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도요.
지 어떤 옷에는 어린아이가 잘 어울리고, 또 어떤 옷은 나이 든 사람이 입어야 근사하죠. 배우 김유정이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제 쇼에 섰던 일이 기억나요. 내공이 대단했죠. 또 엄마와 아이가 같이 등장한 적도 있고, 시니어 모델을 세울 때도 종종 있고요. 왜 흔히 말하는 예쁜 모델만 쓰려는 경향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옷은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다 입는 거잖아요.
변화하는 것이 점점 많아져요. 적응하는 것과 기조를 지키는 것 중 어떤 방향을 택하는 편이세요?
지 지켜야 하는 면도, 변화해야 하는 면도 있겠죠. 어쨌든 좋은 옷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신념은 고수할 것이지만, 한편 세상이 바뀌면 일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현실도 느끼고요.
조 아직 지킬 만큼 가진 게 없어서 그런지 바뀌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견뎌보는 중이에요.
지 너무 견디기만 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압박감이 심해질 거예요. 저도 그랬어요. 매일 머리가 아프고, 늘 소화도 안 됐죠. 그런데 지나고 나면 포기할 줄도 알게 돼요. 견딘다기보다 살아내게 되는 거죠.
선생님의 자세와 태도를 보면 ‘꼿꼿하다’는 표현이 떠올라요.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 ‘해준’이 ‘서래’에게 한 말처럼요. 단단함과는 조금 달라요. 유연한 내면을 곧은 척추가 지탱하는 느낌이랄까요. 두 분은 평소 어떤 성격으로 묘사되나요?
지 워낙 직설 적이고, 에둘러서 말하는 법을 몰라요. 그 덕에 제가 하는 말이라면 주변에서 다 믿어 주니까 여기까지 온 거겠죠. 일도 그렇지만 사는 방법 자체가요. 배려심도 제 안 어딘가 에 있겠지만, 생각의 표현은 나오는 대로 하는 편이에요.
조 아직은 일할 때의 모습과 평 소의 자아가 꽤 다른 것 같아요. 평상시에는 표현도 잘 못 하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 지’ 하는 식이에요. 하다못해 밥을 먹으러 가도 상대방에게 맞추는 게 편하고요.
지 저는 먹는 일에 관해서는 주도해요.(웃음) 맛있는 건 함께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 굉장히 크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타인에게 결정권을 내주는 게 인격적으로는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봐요.
조 그런데 일할 때는 그렇지 못해서…(웃음)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저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필요해요. 갭이 있어요.
그렇다면 2시간 전 처음 만난 서로는 어떤 사람 같았나요?
조 저에게는 너무나 대선배이시고, 그간 TV나 매체를 통해 뵌 터라 상상 속 인물처럼 여겨졌어요. 그런데 오늘 대화하며 불과 며칠 전 파리를 다녀오고, 하루를 꽉 채워 사는 분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나니 그저 부럽고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 하면 다 돼요. 제가 특별하다기보다는 일이 있으니까 움직이며 사는 거고요. 성민 씨는 이름이 참 좋아요. 훌륭한 사람 같아요. 비슷한 이름을 가진 뛰어난 음악가도 있잖아요. 겉은 유한데 속은 단단해 보여요.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세요. 그러면 훨씬 더 클 거예요. 너무 젊잖아요. 앞으로 갈 길이 멀고요. 혼자 짊어지면 안 돼요.
행복할 때는요?
조 브랜드를 운영하며 항상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려요. 행복은 유지될 수 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동경하는 거죠. 선생님이 행복하셨던 순간이 궁금해요.
지 쇼를 마칠 때요. 결과를 떠나 숙제를 끝낸 셈이니 기쁘죠. 사실 저를 보러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빴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지만요.(웃음) 돌이켜보니 그 찰나가 참 좋았네요. 그런데 살면서 하기 싫은 일을 무수히 맞닥뜨리게 돼요. 그걸 해내고 나면 저절로 행복해질 거예요.
조 오늘의 인터뷰가 제게는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지표 같아요. 비슷한 점이 많거든요.
지 아, 젊을 때 만들었던 드레스나 약혼복을 산 고객의 딸이 옷을 물려받아 수선하러 오는 경우가 있어요. 또 어떤 고객은 남편이 “제 아내는 미스지 컬렉션 옷을 입을 때 참 예뻐요”라는 편지와 함께 사진을 보내온 적도 있죠. 생각해보니 조금 부끄럽지만 행복한 기억이네요.
해석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나에게 주어지는 상황을 행복으로 해석하면 그게 행복 아닐까요?
조 그렇네요. 그렇겠어요.
오늘 후배 디자이너를 만나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셨는데, 어떠셨어요?
지 잘하려고, 잘 지나가려고 하는 고민들이라 걱정이 안 되네요. 이렇게 다음 세대 디자이너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제가 좋아요.
젊은 세대가 ‘멘토 부재’ 현상을 겪고 있다고 해요.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역시 그런 세대에 속할 테고요.
조 제 경험을 되짚어보면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옆에 머무는 게 가장 큰 축복이에요. 이제 겨우 서른 몇 해 살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냥 선택하는 것뿐? ‘이게 더 예쁘다’ 말하는 정도가 제 영역이고, 그 외 모든 걸 주변에서 도와주고 있어요. 그래서 주변에 진짜 친구를 두고, 믿음 가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보다 더 믿어도 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네요.
지 어른이라고 해도 얼마나 더 살았다고 크게 말하겠어요.(웃음) 젊은 친구들은 굉장히 똑똑하고 주어진 일도 잘하니 나무랄 데가 없죠. 참견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한마디를 해줄 수 있다면, 뭐든지 해보라는 거예요.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해본 일’과 ‘안 해본 일’에는 큰 차이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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