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India | 인도의 여성 보디빌더들이 다시 쓰는 몸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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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ilding India | 인도의 여성 보디빌더들이 다시 쓰는 몸의 서사

마리끌레르 2026-04-02 09:00:00 신고

3줄요약

오늘날 약 7억 명에 이르는 인도 여성 가운데 유급 노동을 하는 사람은 3명 중 1명에 불과하다.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디지털화를 추진하며 인도를 강대국으로 도약시키려는 지금도 이러한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가운데 사진가 키르타나 쿤나트(Keerthana Kunnath)의 프로젝트 ‘Not What You Saw’는 오래도록 여성의 역할을 규정해온 힌두 신화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인도의 여성 보디빌더들이 다시 쓰는 몸의 서사, 확장되는 여성성. 그들이 꿈꾸는 뉴 인디아.

이들의 몸은 새로운 인도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허락을 구하지도, 도움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저 인도의 전통에 맞설 뿐이다.

매년 10월에서 11월 사이, 인도의 주요 명절인 디왈리(Diwali)가 다가오면 수도 뉴델리에는 늘 비슷한 장면이 펼쳐진다. 거리에는 과자와 말린 과일, 장신구와 잡화, 소형 가전 제품, 인도 전통 의상과 서구식 옷을 파는 노점이 끝없이 늘어서고, 수십만 가족이 며칠 동안 새벽부터 해 질 때까지 거리를 오간다. 대기오염을 이유로 인도 정부가 수년 전부터 폭죽을 금지해왔지만, 밤이 되면 수백만 개의 불꽃이 하늘을 밝힌다. ‘어둠을 물리치는 빛의 축제’라 일컫는 디왈리의 풍경이다.

혼란스럽고 과잉된 소비의 열기로 들끓는 이 명절 풍경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영적 이고 금욕적인 인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여전히 뿌리 깊은 힌두교 전통이 자리한다. 디왈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한 서사시로 꼽히는 <라마야나 (Ramayana)> 신화의 한 장면을 기념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기원전 7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힌두교 신 라마의 모험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라마의 아내 시타가 마왕 라바나에게 납치되자, 라마는 원숭이 군대를 이끌고 랑카섬으로 향한다. 수년간의 전투 끝에 라바나를 물리치고 시타를 구출해 왕국으로 돌아오는 순간, 서사는 절정에 이른다.

이 이야기가 인도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는 라마와 시타가 힌두교가 그려온 이상적인 남성과 여성의 전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라마는 싸우고, 시타는 아이들을 키우며 그를 섬긴다. 라마는 왕국을 통치하고, 시타는 그 뜻을 따른다. 훌륭한 남성은 라마처럼 충실하고 올곧으며 자신의 운명을 끝까지 따르는 존재여야 한다. 한편 여성에게는 시타가 보여준 헌신이 요구된다. 남편과 그의 운명에 대한 절대적 충성, 그리고 자신의 정절을 증명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갈 만큼의 순종 말이다.

새로운 도시와 도로, 교량과 항만, 공항이 들어서고 대규모 디지털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뉴 인디아(NewIndia)’.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 미래를 내세운 변화 속에서도 인도의 지배층은 여전히 라마와 시타를 남녀의 이상향으로 제시한다. 눈부신 도약 앞에서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전통이다. 그리고 그 전통에 맞서는 여성들이 있다. 사진가 키르타나 쿤나트는 프로젝트 ‘Not What You Saw’로 그들을 기록했다. 그들은 보디빌더다. ‘인도의 전통’이라는 틀 안에서 그들의 존재는 모순으로 받아들여진다. 강인함과 여성성은 양립할 수 없고, 몸을 단련하는 일 역시 남성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여성들은 인도 남부 출신의 비순응적인 세대다. 여성을 헌신적인 아내이자 다정한 어머니,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만 상정하는 가부장적 사회와 정반대 방향으로 노를 저으며 나아가는 소수이기도 하다. 이들의 몸은 새로운 인도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허락을 구하지도, 도움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저 인도의 전통에 맞설 뿐이다.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경험,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야 했던 시간, 집안의 문제아로 낙인찍혀 외면당한 기억, 혹은 가족이 그들을 다시 ‘정상적인 길’로 돌려놓으려 했던 사연까지. 쿤나트는 이 여성들의 몸에 새겨진 삶의 서사를 담담히 기록했다. 인도에는 이미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꾸려는 준비가 된 여성들이 넘쳐난다. 다만 그 길이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가로막혀 있을 뿐이다. 도시든 농촌이든 조금만 걸어보면 국가 경제의 가장 거친 노동을 떠맡은 이들이 여성임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들은 들판에서 일하고 건설 현장에서 노동하며, 섬유 공장과 시장에서 하루를 보낸다. 중산층 가정에서는 요리하고 빨래하고 바닥을 쓸며 살아간다. 수치는 이 현실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준다. 약 7억 명에 이르는 인도 여성 가운데 유급 노동자는 3명 중 1명뿐이다. 다시 말해,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여성이 매일같이 노동하면서도 아무런 보수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고, 대가족인 경우에는 시부모까지 챙긴다. 물론 그 모든 일 역시 무보수다. 이런 삶은 뉴 인디아가 내세우는 경제 강국의 미래와 쉽게 포개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도의 가부장제가 지금도 열렬히 예찬하는 시타의 신화와는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겹쳐진다. 야망보다 헌신을 더 값진 덕목으로 여기는 해묵은 믿음 탓이다. 이런 의미에서 쿤나트가 사진에 담은 여성들은 시타 신화에 대한 가장 용감한 반(反)신화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오랫동안 남성들에게 ‘여성은 어떤 존재여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들어온 젊은 여성들의 분명한 도전의 증거이자 낡은 전통을 밀어낼 희망이기도 하다.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니요, 시타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라마야나>는 오늘날 여성의 헌신과 순종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시타의 납치와 구출, 정절을 증명하기 위한 두 번의 신적 재판, 라마가 내린 추방령, 그리고 그가 왕좌에 앉아 있는 동안 숲에서 홀로 쌍둥이를 키워야 했던 삶까지. 사건 자체를 바꾸지 않아도, 바라보는 관점만 뒤집으면 해묵은 신화가 규정한 여성상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있다. 2008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영화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SitaSings theBlues)> 는 그 시도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라마야나>를 다시 들려주되 시타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화자가 된 시타가 20세기 초 미국 대중음악 가수 애넷 핸쇼(Annette Hanshaw)의 블루스에 맞춰 사랑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그 사이사이 등장하는 신들의 합창은 이 사랑을 신성한 헌신으로 찬양하기보다 라마의 자기중심적 태도를 비꼬듯 드러낸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은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새로운 <라마야나>다. 이 작품은 시타의 끝없는 사랑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라마의 모습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끝내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타 또한 함께 비춘다. 기존의 시타 신화가 그의 사랑과 헌신을 미덕으로 포장했다면, 이 작품은 그 이면에 놓인 고통과 불균형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처럼 시선을 바꾸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오늘날 시타의 삶은 더 이상 따라야 할 본보기가 아니라, 여성들에게 다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라는 경고이자 주체성을 일깨우는 의미로 읽힌다. 키르타나 쿤나트의 사진 속 여성들은 그 뜻을 이어받아 자신의 몸으로 새로운 서사를 써나간다. 그들이 꿈꾸는 진정한 뉴 인디아. 그 미래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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