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폐인의 날②] 낙인 찍힌 ‘자폐’ 대신 ‘오티즘’…용어 전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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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폐인의 날②] 낙인 찍힌 ‘자폐’ 대신 ‘오티즘’…용어 전환 요구↑

투데이신문 2026-04-01 17:58:1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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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 장애(오티즘·Autism)는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 존재한다. 당사자마다 의사소통 방식과 감각, 일상의 조건이 천차만별로 다르지만 사회는 일부 장면과 익숙한 서사를 통해 이들을 쉽게 규정하고 있다.

세계자폐인의 날을 맞아 본지는 ‘살아가는 오티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현장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식이 얼마나 좁았는지 돌아보고 실재하는 삶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인식을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오티즘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존재의 조건을 인정하는 일이다. 이는 비장애인이 타자를 이해하고 관계 맺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기획이 오티즘에 대한 선입견을 벗어나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뜻하는 영단어 Autism.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자폐’라는 용어를 둘러싼 문제의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오랫동안 의학적 진단명으로 사용돼 온 이 용어가 사회적 낙인과 오해를 강화해왔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보다 중립적인 표현인 ‘오티즘(Autism)’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1일 취재에 따르면 의학 용어 ‘자폐’는 미디어상 소통이 불가능하고 사회와 단절된 상태를 의미하는 말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일상 언어에서 ‘자폐적’이라는 표현이 타인의 의견을 듣지 않거나 폐쇄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데 쓰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용어 오용은 오티즘 스펙트럼을 단일하고 극단적인 상태로 오해하게 만들고 당사자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고착화해 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같은 논의는 용어의 어원에서부터 출발한다. 영어 Autism은 그리스어 ‘autos’에서 유래한 단어로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의미를 갖는다. 반면 한국에서 사용되는 ‘자폐(自閉)’는 일본식 번역어의 영향을 받아 정착한 표현으로 한자 뜻대로 보면 ‘스스로를 닫는다’라는 뉘앙스를 포함한다. 이 때문에 ‘자폐’라는 말이 실제 특성을 설명하기보다 사회적 고립과 단절의 이미지를 강화한다는 지적이 이어진 것이다.

언론 보도에서 ‘자폐적’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사용돼 왔는지를 보면 오티즘 용어 확산 시도의 이유가 보다 분명해진다. 본보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AI 기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를 활용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자폐적’ 키워드가 포함된 보도를 분석한 결과, 개체명 간 연결 관계를 시각화한 네트워크 분석에서 해당 표현은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비판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특히 네트워크 분석 결과 ‘대통령’과 ‘변호사’가 각각 17건으로 가장 많이 연결됐고 ‘민주주의’(11건), ‘정치인’(8건), ‘국회의원’(4건) 등 정치 관련 키워드와의 연관성이 높게 나타났다. ‘자폐적 민주주의’, ‘자폐적 정치’와 같은 표현은 특정 집단의 소통 단절 행태를 비판하는 수사로 사용되며 용어 자체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양상이 조사됐다. 키워드 ‘변호사’의 경우 2022년 방송된 ‘이상한변호사 우영우’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별도로 키워드 연관성(가중치 및 빈도)을 기반으로 한 연관어 분석에서는 ‘자폐적’이라는 표현과 함께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단어로 ‘정유정’이 확인됐다. 이는 2023년 5월 부산에서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 사건 보도 과정에서 일부 언론이 피의자의 범행 배경을 설명하며 이른바 ‘자폐 성향’을 언급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해당 표현은 다른 매체들로 확산되며 사건 보도 전반에서 ‘자폐’라는 키워드가 무분별하게 소비됐다. 그 결과 범죄 사건과 장애 자체를 연결 짓는 인식이 강화됐고 오티즘 당사자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편견을 재생산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정신의학계와 장애계 역시 이 같은 보도 행태에 우려를 표했다. ‘자폐 성향’이라는 표현이 범행의 원인인 것처럼 사용되면서 의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데 언론이 일조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오티즘을 가족으로 둔 당사자들은 미디어의 영향을 현실에서 체감하고 있었다. 6살 오티즘 아들을 둔 컬러풀브레인친구 차예진 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자폐라는 용어는 오랜 시간 동안 선입견과 함께 굳어져 왔다고 느낀다”며 “오티즘을 가진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교류를 원하지만 ‘자폐’라는 말은 이를 왜곡해 오티즘이 무조건 폐쇄적인 성향을 지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짚었다.

차 대표는 자폐를 오티즘으로 바꾸는 논의가 의료·교육·일상생활 전반에서 필요한 지원을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서는 장애 인식 교육 이후 오히려 ‘쟤는 자폐아야’라는 식으로 불리며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며 “장애를 진단명으로만 설명하기보다 ‘오티즘을 가진 아이’처럼 사람을 중심에 둔 표현과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현장에서는 ‘오티즘’이라는 용어를 확산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ASK·Autism Society of Korea)의 캠페인과 활동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ASK는 2024년까지 총 5회의 ‘오티즘 레이스’를 개최하며 용어 확산을 시도해 왔다. 발달장애인 참가자의 참가비는 전액 지원됐고 참가자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온라인 기반의 버추얼 마라톤도 운영됐다. 2024년 행사에는 3112명이 참여했다.

또 ASK는 매해 오티즘 작가 특별전시회 ‘세상을 밝히는 명작전’을 개최해 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예술인 가운데 오티즘 작가의 비율은 14.4%에 달한다. ASK는 오티즘 당사자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사회와 소통할 수 있다고 보고 자신만의 화풍을 지닌 작가 발굴에도 힘써왔다.

그럼에도 오티즘에 대한 인식은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ASK 주요섭 과장은 본보에 “오티즘이 영어로 이뤄진 외래어라는 한계가 있는 데다 용어는 학술적 논의만으로 바뀌기에 한계가 있다”면서 “대중문화나 영향력 있는 인물 등 문화적 확산 계기가 필요하지만 아직 그런 환경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새로운 용어 확산이 사회적 인식 개선으로 이어진 사례는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정신분열병’으로 불리던 질환은 2011년 ‘조현병’으로 명칭이 바뀌며 치료와 회복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고, ‘간질’ 역시 ‘뇌전증’으로 변경되면서 부정적 낙인을 완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질환이나 장애를 둘러싼 용어는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편견에 갇힌 단어 ‘자폐’를 ‘오티즘’으로 전환하려는 논의 역시 낯선 시도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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