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시민권 제도 축소 이슈가 국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먼저 서명한 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 제한 행정명령의 운명이 달린 연방 대법원 판단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이번 연방대법원 판단은 미국 전역에 적용되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 이민 정책' 역시 추진 동력을 상실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번 판결이 미국 원정출산 이슈와도 깊이 관련돼 있어 국내 여론의 관심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지켜 온 출생지주의 원칙, 원정출산 등 각종 편법에 의미 퇴색
미국은 자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자동으로 출생권을 부여하는 '출생지주의'를 택한다. 이에 타국 산모들이 시민권을 따러 오는 원정출산 문제는 미국의 오랜 사회적 이슈였다. 원정출산으로 인한 시민권 취득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시민권만 취득해 놓은 채 자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미국의 혜택만 활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원정출산에 대한 평가는 한국도 비슷한 편이다. 병역을 비롯한 국민의 의무를 기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또 과거 학군이 좋아 아시아인 커뮤니티가 잘 형성됐던 어바인, 오렌지카운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원정출산과 관련해 기소된 외국인 중 한국인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05년 병역기피 수단으로 원정출산을 선택하는 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도록 국적법이 개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민권 취득을 위한 원정출산은 여전히 활발한 편이다. 자녀를 해외로 내보낼 때 시민권자로서 누리는 학업, 취업, 각종 제도 혜택이 크다는 점을 노리고 미국 원정출산을 시도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정마다 자녀 교육의 철학과 가치관이 다르므로 미국 시민권을 따려는 현상 자체를 도덕적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시민권 취득이 확대되고 보편화되면 국가적으로는 자금과 인력의 손실이 불가피 하다"고 우려했다.
'반(反)이민' 트럼프의 시민권 축소 행정명령 두고 법정공방 가열, 연방대법원 판결 초읽기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 원정출산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다. 취임 직후 출생시민권 제도를 축소시키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출생시민권 제도가 불법 이민을 조장하고 미국의 복지 시스템에 부담을 준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행정 명령에 미국 사회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진보 진영에선 출생시민권 제도가 미국의 이민 역사를 반영하며 국가의 포용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반발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논란은 결국 법정으로 향했다. 2025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50개주 중 진보 성향 22개주가 제기한 시민권 제한 행정명령 집행정지 소송을 인용하는 동시에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28개주에서 행정명령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결(Trump v. CASA)했다. 이에 따라 텍사스나 조지아, 플로리다와 같은 전통적인 보수 색채가 짙은 지역은 시민권 제한이 적용돼 외국인이 자녀를 낳아도 자동으로 시민권이 나오지 않게 됐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행정명령에 대한 '전국적 집행 정지(Nationwide Injunction)' 청구가 막히자 당시 원고였던 시민자유연맹(ACLU)은 집단소송(Class Action)이라는 우회로를 택했다. 미국의 '집단소송' 제도는 다수 개인이 공통의 법률관계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원고가 주 법원에 집단소송 진행 허가를 신청하고 해당 법원 판사가 요구를 허용하면 사건은 연방 대법원으로 넘어간다. 만약 연방 대법원이 '전국적 집단(Nationwide Class)'을 승인하면 그 판결이나 합의의 효력은 미국 전역의 50개 주에 적용된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앞서 뉴햄프셔 연방지방법원의 조지프 라플란트 판사는 '미국 전역에서 출생했거나 앞으로 태어날 아동을 대신해 연방정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1심은 "허가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원고 소송인단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만약 연방대법원 역시 이를 그대로 인정한다면 기존대로 미국 50개주 전체에서 원정출산 출생자들에게 시민권이 부여된다.
덕분에 원정출산을 고민했던 산모들과 기존 행정명령이 적용됐던 28개주에 체류 중인 한국인들 사이에선 막혔던 시민권 취득이 다시 뚫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생겨나고 있다. 한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만약 연방대법원에서 행정명령이 뒤집히면 못 받았던 내 아이 시민권도 소급해서 나오나" "미국 시민권이 막혀서 캐나다를 고민했었는데 다시 미국 출산을 고민해도 되겠다"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집단소송 결과에 따라 미국 전 지역에서 시민권 취득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지금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라고 진단했다. 한애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행정명령의 효력을 정지시키기 위해 집단소송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생소해 보일 수 있는 사안이다"며 "미국의 집단소송은 사안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행정명령 정지의 효력이 생기기 때문에 전 지역에서 시민권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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