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국내 고학력 인재들이 늘고 있다. 독일 내 만성적인 인력난과 독일 정부의 파격적인 비자 완화 정책, 한국 기업의 현지 진출 확대 등이 맞물린 결과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자 유럽 경제의 주축 국가인 독일로 국내 우수 인재들이 몰리는 것은 그만큼 국내 인력에 대한 해외 선진국들의 평가가 우수하다는 방증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조·물류·금융 등 'K-벨트' 구축된 프랑크푸르트…유능한 한국인 직장인 선호 현상 뚜렷
독일 상공회의소(DIHK)가 발표한 '2025·2026 숙련 인력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독일 경제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노동력 확보다. 조사에 참여한 현지 기업 약 2만2000개사 중 36%가 적합한 인력을 찾지 못해 인력 공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전문 교육을 이수했거나 대학 학위를 갖춘 고숙련 인력의 품귀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에너지, 인프라 등 핵심 산업 분야의 전문 인력 부족이 유독 심각하다.
현지 기업들은 이러한 인력난이 향후 경영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설문에 응한 기업의 83%가 향후 몇 년간 숙련 인력 부족으로 인한 매출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와 맞물려 앞으로 수백만명의 전문 인력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독일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외국인 전문 인력 수용을 위한 정책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4년 '숙련인력이민법' 개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개정안은 학위와 경력을 중심으로 외국인 인재들의 진입 문턱을 대폭 낮추는 내용이 골자다. 가장 파격적인 변화는 '기회카드(Chancenkarte)' 제도다. 과거에는 독일 기업의 채용 확약이 있어야 비자 발급이 가능했으나 법 개정으로 학위·경력·언어 능력 등을 점수로 환산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취업 여부와 무관하게 최대 1년간 독일에 체류하며 구직 활동을 할 수 있다.
IT 등 전문 직군의 경우 관련 학위가 없더라도 3년 이상의 실무 경력만 증빙되면 비자 발급이 가능하도록 예외 조항을 확대하고 동반 가족에 대한 처우도 개선했다. 숙련 인력으로 분류돼 입국할 경우 배우자와 자녀의 동반 거주가 보장되며 배우자의 현지 취업 제한도 사실상 폐지했다. 그동안 독일 정부는 비유럽연합(EU) 국가 노동자의 입국 허가 시 국내 노동자 우선 보호 원칙에 따라 외국인 배우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즉시 허용하지 않았다. 또 해외 국가에서 체결한 사전 고용계약이 있을 경우 연방고용청의 승인 절차를 간소화해 비자 발급 대기 시간을 수개월에서 수주 단위로 단축시켰다.
제도적 훈풍에 힘입어 세계 각국의 유능한 인재들이 독일로 유입되고 있는데 그 중에는 한국인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재외동포청의 '재외동포현황 2025'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독일은 전 세계에서 한국인이 11번째로 많이 거주하는 국가다. 특히 최근에는 독일 경제의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 수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2024년 기준 프랑크푸르트 지역의 한국인 일반 체류자 수는 1만1725명으로 전년 대비 9.2% 증가했다. 독일 전 지역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다. 유학생과 영주권자, 시민권자 등이 별도로 분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반 체류자의 상당수는 현지 기업이나 한국 법인 등에 소속된 직장인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인 직장인들의 '독일 러시'의 배경에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독일 진출 확대와 독일 현지 기업들의 한국 인재 선호 현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재계 등에 따르면 독일 경제의 관문이자 교통의 요충지로 꼽히는 프랑크푸르트는 일찌감치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국내 기업들의 거점 지역으로 평가돼 왔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유럽 총괄 법인, 현대자동차·기아의 유럽법인,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기업 현지 법인 등이 전부 프랑크푸르트에 몰려 있다. 또 KDB산업은행을 비롯해 신한·우리·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과 더불어 현대글로비스, CJ대한통운 등의 물류 기업들도 프랑크푸르트에 진출한 상태다.
한국 인력에 대한 독일 현지 노동시장의 반응도 긍정적인 편이다. 한국인을 '검증된 고학력 엘리트'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주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의 경제 리포트에 따르면 독일 현지 기업들은 한국 인력의 기술력과 프로젝트 기여도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와 전자 분야에서는 한국 인력 특유의 산업 특화 기술력과 즉각적인 현장 투입 능력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IT 및 디지털 전환 분야에서는 한국 인재들의 풍부한 글로벌 경험과 원활한 협업 능력이 플러스 요인으로 지목됐다.
최근 국내 대형 회계법인을 떠나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한 글로벌 회계법인으로 자리를 옮긴 회계사 도영현(30·가명) 씨는 "올해 초까지 국내 4대 회계법인 중 한 곳에서 재직하다 좋은 기회가 닿아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한 회계법인으로 이직하게 됐다"며 "유럽 금융의 허브인 프랑크푸르트에서의 경력은 향후 커리어 발전에도 큰 자산이 될 뿐만 아니라 연봉을 유로화로 수령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유리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인 근로자들의 '독일 러시'는 한국 전문 인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단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독일의 파격적인 비자 완화와 한국 기업의 현지 영향력 확대가 맞물려 국내 엘리트들에게 전례 없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며 "선진국에서 인정받은 핵심 인재들은 향후 한국 경제의 위상 확대와 한국 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을 주도할 핵심 자산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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