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얼굴 뒤 냉혹한 진실…손원평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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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얼굴 뒤 냉혹한 진실…손원평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연합뉴스 2026-04-01 15:48: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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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소설집 출간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창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이 책의 얼굴에 새겨진 문장은 어쩌면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영리하고도 교활한 언어 중 하나일지 모른다."

최근 두 번째 소설집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를 펴낸 손원평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의 제목이 주는 미묘한 찜찜함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는 소설집의 핵심 정서를 설명하는 문장이다.

사과도 아니고 변명도 아닌, 상대방에 대한 위로도 아닌 참으로 어정쩡한 말. 누군가 분명 피해를 봤지만 세상이 원래 그렇지 않냐는 듯 책임을 피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이 문장을 내세워, 자본주의가 인간의 관계와 윤리를 어떻게 재편하는지 묻는다.

책에 수록된 열 편의 단편에는 문화센터, 호텔, 공부방, 명품 매장,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배경으로 자본주의의 톱니바퀴에서 끊임없이 마모돼가는 현대인의 표정이 담겼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당신의 손끝'의 주인공은 상류층이 다니는 고급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미술강사 효원이다.

효원은 자신을 신뢰하고 응원하는 부유한 수강생 주영 덕분에 폐강 위기를 넘기고, 자신만의 화실을 열겠다는 꿈에 다가간다.

충성도 높은 회원을 개인 화실로 유치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효원은 무리해서 문화센터 근처 낡은 건물에 화실을 열지만, 믿었던 주영은 어쩐지 자신에게 싸늘해지고, 효원은 관계의 실체를 뼈저리게 느낀다.

"우정이라고 생각했던 건 허약하디허약한 계약관계일 뿐이었다. 한푼의 납입이라도 채워지지 않으면 그 어떤 연결점도 없이 종료돼버리는 사이를 뭐라 칭해야 할까."('당신의 손끝' 중)

또 '태양 아래 반짝이는'은 남루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위태로운 욕망을 다룬 작품이다.

최고급 호텔 수영장에서 구조요원으로 일하는 '나'는 투숙객과의 일탈을 통해 잠시나마 자신이 호화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결국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깊은 상처와 모욕뿐이다.

이처럼 열 편의 수록작은 선의의 얼굴 뒤 숨은 냉혹한 질서를, 악의는 없다고 해도 누군가를 밀어내고 상처를 입히는 비정한 세상을 그려낸다.

작가는 이런 세계를 응시하며 쉽게 결론을 내리거나 위로를 건네진 않는다. 다만 '나쁜 의도는 없었다'는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해온 자신을 돌아보게끔 만든다.

"우리는 어떤 말들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 말들이 누군가의 하루를 어떻게 건드리는지 한번쯤 돌아보게 된다면, 만약 이 이야기들이 그런 시간을 잠깐이라도 만들어낸다면, 이 책은 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해낸 셈이 될 것이다."('작가의 말' 중)

창비. 248쪽.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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