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갑 주세요.”
1일 서울 광화문의 한 편의점. 직장인 김모(33)씨는 계산대 화면에 찍힌 ‘4500원’이라는 숫자를 보며 묘한 안도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다. 11년째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는 가격이지만 최근 직장인들의 티타임 화두는 단연 ‘담뱃값 인상설’이다.
김씨는 “점심값도 1만원이 훌쩍 넘는 마당에 담뱃값이 조만간 1만원으로 확 뛸 것이라는 뉴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며 “진짜 1만원 시대가 오면 이참에 끊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담뱃값 인상설의 진원지는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제6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2026~2030)’이다. 이 계획에는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담뱃값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2023년 기준 OECD 평균 담뱃값은 9869원이다. 현재 4500원인 담뱃값에 포함된 건강증진부담금(841원)을 대폭 올려 단숨에 1만원 안팎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주류 소비 감소를 유도하기 위해 소주와 맥주 등에도 건강부담금을 매기는 방안이 함께 포함됐다.
서민들의 반발과 시장의 동요가 거세게 일자 복지부는 제6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발표 하루 만인 28일 당장 인상 계획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복지부는 “담뱃값 인상과 주류 부담금 부과 검토는 2021년에 발표한 10년 계획상의 중장기 정책 방향으로, 새롭게 추가된 게 아니다”며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정부의 이례적인 ‘조기 진화’ 배경으로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지목하고 있다. 선거를 불과 두 달여 앞둔 민감한 시기에 표심에 가장 치명적인 ‘서민 증세’ 논란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담배와 주류는 대표적인 체감 물가 품목이다. 이를 건드리는 것은 곧바로 거센 조세 저항으로 이어진다. 과거 정부에서도 담뱃값 인상은 항상 정권의 지지율을 갉아먹는 뇌관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의 전개가 정확히 5년 전과 판박이라는 사실이다. 2021년 1월 복지부가 담배·주류 인상안이 담긴 5차 종합계획을 발표해 논란이 일자 당시 정세균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전혀 고려한 바 없다”며 불을 껐다. 당시에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업계는 가격 인상의 불씨가 꺼졌다고 믿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6월 선거 이후를 진짜 ‘폭풍 전야’로 보고 있다. 담뱃값 인상 명분과 타이밍이 이미 너무나 무르익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11년이나 가격이 묶여 있었고 정부 차원의 세수 확보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결국 시기의 문제가 될 것”이라며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건강부담금 증세 드라이브가 걸릴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담뱃값 인상 역사를 되짚어보면 ‘11년 주기설’이 존재한다. 2004년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오른 뒤 11년 만인 2015년에 2000원에서 지금의 4500원이 됐다.
그로부터 다시 11년이 흐른 2026년 현재, 물가 상승률과 세수 부족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 입장에서 부담금 확대는 매력적인 카드다.
여기에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에서 “담배 가격 정책을 점검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담뱃값 재검토를 시사한 터라 하반기 인상설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유통 채널, 특히 골목 상권의 핵심인 편의점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담배는 편의점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강력한 ‘미끼 상품’이다.
가격이 1만원으로 뛰면 일시적인 사재기 특수는 누리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객수가 줄어들며 커피, 도시락 등 연관 상품 매출까지 연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주류업계 역시 소비 위축의 직격탄을 맞을까 예의주시 중이다.
11년간 굳게 닫혀있던 ‘판도라의 상자’는 과연 언제 열릴까. 건강 증진이라는 대의명분과 서민 물가 안정이라는 팍팍한 현실 사이에서 6월 지방선거 이후 정부가 어떤 타이밍에 청구서를 내밀지 시장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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