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추가 항공모함을 이란 인근으로 보내고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국방부) 장관은 이란이 종전에 합의하지 않으면 더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위협하는 가운데, 이란은 종전 의지가 있다면서도 미국의 재침략을 방지할 수 있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간) 헤그세스 장관은 펜타곤에서 댄 케인 합참의장과 브리핑을 갖고 "향후 며칠이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라면서 이란이 종전에 합의하지 않으면 더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는 "이란도 스스로가 군사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며 이란이 미국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고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헤그세스 장관은 이란과 협상에 대해 "매우 현실적이고 활발하게 진행 중이며, 진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란 인근에 군 병력을 확충하면서 지상군 투입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헤그세스 장관은 "상대방에게 무엇을 할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 특히 지상군 파병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알려준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며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역시 이란과 대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이날 폭스뉴스 앵커 션 해니티와의 인터뷰에서 "(이란과) 메시지가 오가고 있고, 대화가 진행 중이다. 언젠가 직접 만날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항상 그 가능성에 열려 있다"고 말했다.
다만 루비오 장관은 이란 지도자들이 시간을 벌기 위한 "가짜 협상"을 "시간 끌기 전술"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방송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정부가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 및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과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갈리바프 의장은 새로운 최고 지도자인 모즈타바 하메네이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미국과 이란 간 접촉과 관련해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카타르 방송 알자지라와 인터뷰에서 미국과 직접 또는 역내 국가들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점을 확인했지만, 이것이 협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전처럼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특사)로부터 직접 메시지를 받고 있지만, 이것이 협상 중이라는 뜻은 아니다"라며 "이란 내의 누구든 미국과 협상 중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모든 메시지는 외무부를 통해 전달되거나 수신되며, 안보 기관들 간에도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이란 정권이 미국이 보낸 15개 요구 사항에 대해 아직 답변하지 않았으며 "어떤 제안이나 조건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4일 이스라엘 채널 12 방송은 미국의 요구안에 이란 핵능력 해체 및 핵무기 개발 금지, 이란 영토 내 우라늄 농축 금지, 60% 농축 우라늄 비축분 450kg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이관, 나탄즈·이스파한·포르도 핵시설 해체, 역내 대리세력 지원 중단 및 대리전 전략 포기, 미사일 프로그램 사거리와 수량 제한, 호르무즈 해협 개방 등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지난달 25일 이란 관영 프레스TV는 이란 고위 정치안보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이 다양한 외교 채널을 통해 협상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란 정부는 미국 쪽 요구 사항이 "과도하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이란의 요구사항에는 침략 완전 중단, 이란 공격 재발 방지 매커니즘 구축, 전쟁 피해 배상금 지급 보장, 역내 모든 전선 및 저항단체에 대한 전쟁 종식,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주권 행사 인정 등 5개항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재침략 방지 보장안 마련은 종전을 위한 이란 정부의 핵심 요구사항으로 보인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통화에서 "우리는 이 전쟁을 종식시킬 의지를 갖고 있지만, 침략 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한 보장과 같은 필수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유로뉴스>가 보도했다.
이란 측은 미국이 합의를 이뤘다가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했을뿐만 아니라 협상 중에 전쟁을 일으키는 등의 행위를 했기 때문에 미국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미국이 외교를 믿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전했다. 방송은 실제 이란이 미국 정권과 협상 중 두 차례 공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아라그치 장관 역시 미국과 협상에서 "좋은 경험"을 한 적이 없다면서 합의에 도달했지만 미국이 여기에서 탈퇴했던 사례를 언급했는데,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당시 체결했다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란 핵 합의(JCPOA)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는 미국과 협상이 어떤 결과라도 낳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 신뢰도는 바닥"이라며 "미국의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아라그치 장관은 '휴전'이 아닌 '역내 모든 공격 중단'만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보도에 대해 "우리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지상전에서는 더욱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며 "어떤 형태의 지상 공격에도 맞설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다. 그들이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전쟁에 활용하는 것에 대해 아라그치 장관은 호르무즈 해협이 오만과 이란의 영해에 속해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 중인 국가의 선박만 이 해협을 이용할 수 있다. 전쟁 중에는 당연한 일이다. 적들이 우리의 영해를 상업 활동에 이용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다른 국가와 관련된 선박들은 안보 문제, 높은 보험료, 또는 다른 여러 이유로 해협을 이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라면서 일부 국가들과 협상을 진행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우방국 선박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조치가 취해졌다면서 전쟁 이후에는 호르무즈 해협이 "평화로운 수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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