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LG전자가 ‘성장 둔화–재고 확대–수익성 저하’라는 삼중 압박 속에서 사업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가전 수요가 꺾이는 국면에서 외형 확대 중심 전략의 한계가 드러나는 가운데, 생산·유통·신사업 전반에서 대응 카드를 동시에 꺼내든 모습이다.
가전 시장 환경부터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아이큐(NIQ)에 따르면 글로벌 내구재 시장은 2026년 전년 대비 0.4% 역성장이 예상된다.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서카나는 올해 미국 내구재 매출이 1.2% 감소하고 판매량도 약 1억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수요 자체가 둔화되는 흐름이다.
이 같은 변화는 LG전자 내부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HS사업부 재고는 2023년 2조4605억원에서 2025년 3조5997억원으로 2년 새 약 4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 증가율이 15% 수준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재고 증가 속도가 크게 앞선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판매보다 재고 축적이 빠르게 진행되는 전형적인 수요 둔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수익성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모습이다. HS사업부 영업이익은 2023년 1조3157억원에서 2025년 1조2793억원으로 감소했다. 외형은 커졌지만 실질 이익은 줄어든 구조다. 중국 하이얼 등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점유율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프리미엄 전략만으로는 방어가 쉽지 않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여기에 외부 변수까지 겹쳤다. 중동 지역은 프리미엄 가전 수요가 집중되는 핵심 시장이지만, 라마단 기간 중 발생한 지정학적 불안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됐다. 통상 성수기로 꼽히던 시기에 판매가 기대만큼 이어지지 못하면서 실적 변동성도 커진 상황이다.
비용 부담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중동 정세 불안은 해상 운임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며 물류비와 원재료 비용을 동시에 자극한다. 문제는 수요 둔화 국면에서 가격 인상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비용 증가분을 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워지면서 마진 압박이 구조적으로 커지는 구간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환경 변화에 대응해 LG전자는 공급망과 생산 체질부터 손보고 있다. 최근 협력사들과 함께 인도 푸네 공장을 방문해 자동화·디지털 전환 사례를 공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부 협력사는 AI 기반 공정 자동화로 생산성을 2배 이상 끌어올리고 불량률을 70% 이상 줄이는 성과를 냈다. 공정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으로 대응 시간도 크게 단축됐다.
LG전자는 이를 일회성 사례가 아닌 구조적 경쟁력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무이자 설비 투자 지원을 600억원 규모로 확대하고, 3000억원 규모 상생펀드를 통해 협력사의 유동성까지 뒷받침한다. 피지컬 AI·빅데이터 기반 스마트공장 기술을 전수하는 프로그램도 확대해 공급망 전반의 생산성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원가 구조를 낮추지 않으면 수익성 방어가 어려운 국면이라는 판단이 반영된 조치로 해석된다.
유통 전략도 동시에 조정되고 있다. 수요 둔화 속에서도 혼수·신혼 시장 등 비교적 견조한 수요를 겨냥한 집중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플래그십 매장에서는 신혼가전 할인과 패키지 혜택을 결합해 구매 전환을 유도하고, 오프라인 매장을 ‘결혼 준비 플랫폼’처럼 확장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단순 제품 판매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기반 소비를 묶어내려는 접근이다.
친환경 소비를 겨냥한 정책 연계 마케팅도 강화됐다. 전국 베스트샵에서는 E순환우수제품 구매 시 환급을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진행, 구독·포인트 혜택까지 결합해 체감 가격을 낮추는 방식이다. 수요가 위축된 상황에서 가격 부담을 완화하고 구매 명분을 만드는 전략으로 읽힌다.
중장기 해법으로는 ‘가정용 로봇’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류재철 사장은 정형화되지 않은 가정 환경을 겨냥한 로봇 사업을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물건을 집거나 장애물을 피하는 등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동작이 기계에는 어려운 ‘모라벡의 역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확보되는 데이터와 기술이 향후 경쟁력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LG전자의 대응은 세 갈래로 요약된다. 생산에서는 스마트팩토리를 통한 원가 절감, 유통에서는 수요 맞춤형 판매 전략, 신사업에서는 로봇을 통한 성장 축 전환이다. 다만 수요 둔화와 비용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에서 이 같은 전략이 얼마나 빠르게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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