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벚꽃잎이 600년 세월을 머금은 성벽 위로 내려앉는다. 충청남도 당진의 면천읍성은 화려한 도시 풍경 대신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역사의 결을 간직한 곳이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을 지나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낮게 드리운 그림자와 그 너머로 펼쳐진 평화로운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과거의 어느 봄날로 들어선 듯 차분한 감흥도 전한다. 이곳은 인위적으로 꾸며진 관광지라기보다 주민들의 삶이 성곽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공간에 가깝다. 꽃길 사이를 걷는 동안 정겨운 봄기운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싼다.
면천읍성 군자정 / 충남관광 홈페이지
면천읍성은 1439년(세종 21년) 왜구의 침입을 막고 행정 중심지를 보호하기 위해 축조된 평지 읍성이다. 당진과 서산, 태안을 잇는 길목에 위치해 예부터 국방의 요충지이자 조운로의 핵심 거점 역할을 했다. 성벽은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는데, 외부는 단단한 석축으로 두르고 내부는 돌과 흙을 채워 견고함을 더했다. 성벽의 총길이는 약 1564m에 달하며, 과거 동서남북 사대문을 갖췄던 읍성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복원 사업을 통해 남문과 옹성, 서벽 등이 제 모습을 찾았으며, 조선시대 성곽 축조 규정이 잘 반영된 유적으로 꼽힌다.
면천읍성 / 충남관광 홈페이지
면천 은행나무 / 충남관광 홈페이지
성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천연기념물 제551호로 지정된 두 그루의 은행나무다. 수령이 1100년에 달하는 이 나무에는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 장군과 그의 딸 영랑의 효심이 깃들어 있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위해 아미산의 진달래꽃과 안샘물로 술을 빚어 대접하고, 집 앞에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들였다는 전설은 오늘날까지도 이 마을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으로 전해진다. 마을 주민들은 지금도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이 나무 아래서 목신제를 지내며 안녕을 기원한다. 오랜 세월 풍파를 견뎌온 거대한 가지 아래 서면 숙연한 마음이 든다.
골정지 / 충남관광 홈페이지
은행나무 뒤편으로는 조선시대 정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군자정과 골정지가 이어진다. 특히 골정지는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재임하던 시절인 1797년부터 1801년 사이 황무지를 못으로 만들고 그 가운데 ‘건곤일초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고 전해져 의미가 깊다. 연못 한가운데 자리한 이 정자는 봄이면 흩날리는 벚꽃과 어우러지고, 여름이면 연꽃이 수면을 채워 단정한 풍경을 자아낸다. 화려하지 않지만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미는 당시 실학자였던 박지원의 실용적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 면천읍성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의 정취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레트로 거리’다. 낡은 우체국 건물을 개조해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과 오래된 자전거 점포 건물을 활용한 책방 ‘오래된 미래’는 마을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활기를 더하고 있다. 수제 공예품을 판매하는 ‘진달래 상회’ 등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선 거리는 소소한 즐거움을 전한다. 성곽길을 따라 걷다가 만나는 작은 책방에서의 휴식도 이곳 여행의 매력 가운데 하나다.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 / ⓒ한국관광콘텐츠랩
지역을 대표하는 맛과 멋도 빼놓을 수 없다. 매년 4월이면 국가무형유산인 ‘면천 두견주’를 주제로 진달래민속축제가 열린다. 진달래꽃을 넣어 빚은 두견주는 향긋한 풍미와 부드러운 맛으로 잘 알려진 명주다. 또한 면천 지역의 별미로는 서리태를 활용한 진하고 고소한 콩국수가 꼽힌다. 특히 면천면 소재지에는 줄 서서 기다려 먹는 맛집들이 즐비한 ‘콩국수 거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서리태를 아낌없이 갈아 넣어 만든 국물은 보약만큼이나 진하고 고소하다. 성곽길 산책 후 맛보는 달콤한 꽈배기와 쫄깃한 떡 같은 소박한 간식거리들도 여행객들의 입거리를 즐겁게 하며 마을의 정겨운 인심을 오감으로 느끼게 한다. 제철 식재료로 차려낸 소박한 식사는 여행의 즐거움을 한층 더해 준다.
면천읍성 골목길 / ⓒ한국관광콘텐츠랩
면천읍성은 현재 상시 개방되고 있으며, 입장료와 주차비가 모두 무료여서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 당진영덕고속도로 면천IC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역사적 현장이자 누군가의 삶터인 이곳은 인근의 면천향교, 복지겸 장군 유적지 등과 연계해 둘러보기 좋다. 계절마다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 성곽의 풍경은 언제 찾아도 인상적이지만, 특히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오후 시간에 천천히 걸어보길 권한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