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호흡하며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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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호흡하며 살아간다는 것

노블레스 2026-04-01 09: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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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잉골드

영국 애버딘 대학교 사회인류학 명예교수. 라플란드 지역에서 사미(Sámi)족과 핀란드인을 대상으로 현지 조사를 수행했으며 북극권의 환경, 기술, 사회조직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동물 · 인간생태학, 진화론 등에 관해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환경 인식과 숙련된 실천의 관계를 탐구하며 인류학, 고고학, 예술, 건축의 접점에 놓인 문제에 초점을 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영국학술원과 에든버러 왕립학회 회원이며, 2022년 인류학에 기여한 공로로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

샤넬 컬처 펀드의 후원으로 진행하는 리움미술관의 중장기 연구 프로젝트 ‘아이디어 뮤지엄’. 세 번째를 맞은 이번 에디션은 세계적 인류학자 팀 잉골드의 사유에서 출발해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이라는 제목으로 배움과 관계의 방식을 탐구한다. 인간과 사물, 환경이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한 이 프로젝트는 지식을 전달하거나 축적하는 기존 교육을 넘어 관계 속에서 감각하고 변모하며 생성되는 앎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이는 팀 잉골드가 제안한 ‘중동태’ 개념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하나의 실천적 시도이기도 하다. 능동과 수동의 경계를 허무는 이 개념은 모든 행위가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함께 이루어지며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동시에 ‘되어가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개념은 미술관 교육의 장에서 ‘만들기’, ‘춤추기’, ‘연주하기’, ‘합창하기’, ‘듣기’라는 다섯 가지 움직임으로 확장되어 7월 31일까지 워크숍과 퍼포먼스로 이어진다. 이 여정의 출발점에서 팀 잉골드를 만나 그의 사유와 실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중동태의 자리에서 성찰하기: 대를 잇는 삶, 지각, 그리고 배움’을 주제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는 팀 잉골드.

한국은 첫 방문이시죠? 첫인상이 어떤가요? 제가 상상한 모습과는 꽤 달랐어요.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면 늘 그렇듯 머릿속에 그려온 이미지와 실제 모습은 어딘가 어긋나기 마련이죠. 무엇보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규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런던은 인구가 약 600만 명인 반면 서울은 10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잖아요. 영국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스케일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방문은 리움미술관의 퍼블릭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에 참여하기 위해서죠. 이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꼭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아이디어 뮤지엄이라는 프로젝트의 개념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고, 단순한 강연이 아니라 워크숍 형식으로 진행한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동시에 약간은 낯설고 당황스러운 지점도 있었죠. 저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 그리고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그려내는 데에 시간이 걸렸거든요. 하지만 그 역시 함께 논의하고 협업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방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배움과 관계’를 중요한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관계적 움직임으로서 교육은 어떤 모습에 가까울까요?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선생과 학생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과정입니다.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라기보단 친구이자 동반자에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 있겠죠. 마치 산책을 하는 것처럼요. 누군가는 이미 이 길을 알고 있고 누군가는 처음 걷는 길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협업하고 대화를 나누며 함께 배워가는 방식이야말로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말씀하신 능동과 수동의 이분법을 넘어선 개념인 중동태가 떠오릅니다. 이런 시각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고 보시나요? 요즘 사람들은 흔히 이상적인 어떤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곧 진보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낙관적인 사람은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질 거라 믿고, 반대로 비관적인 사람은 결국 무너질 거라고 말하죠. 하지만 저는 그 두 가지 경우에 모두 속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세상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그 안에서 계속 살아가며 어떻게든 헤쳐나가는 공간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어떤 완벽한 도착지를 설정해두고 그곳을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관계 속에서 반응하고 조정하며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 만들기 세션 중 ‘땅’ 워크숍에 참여한 참가자들의 모습.
‘식물’ 워크숍을 위해 협업한 파주 직천리 짚풀문화마을 장인의 손길.
참가자들이 흙을 매개로 손과 몸의 감각을 나누며 진행한 ‘땅’ 워크숍 장면.
‘공기’ 워크숍에서 사용된 연. 바람, 하늘, 몸이 맺는 관계를 탐구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이번 아이디어 뮤지엄은 기조 강연 이후 첫 장으로 ‘만들기’ 세션이 이어집니다. 이 세션을 통해 어떤 경험을 제안하고자 하셨나요? 워크숍에 참여한 분들에게 굉장히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이 만들기 세션에서는 참가자들이 직접 손으로 진흙을 만지고 손의 움직임을 통해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혼자 완성하는 작업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과정이었어요. 관계를 맺는 가운데 형태가 생성되는 경험이죠. 그런 점에서 제가 기대한 방향에 상당히 가깝게 다가간 성공적인 워크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땅’ 워크숍은 한국 김주리 작가와의 협업으로 진행했습니다. 그의 작품을 접하고 인상 깊었던 지점은 무엇인가요? 김주리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경과 경관 속에서 자신의 작품이 놓일 위치를 정확하게 감각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하늘과 날씨 그리고 땅의 관계 속에서 진흙으로 조형물을 만들어내고, 그 조형물이 다시 기후변화 속에서 부식되고 소멸해가는 과정 자체가 작업의 일부가 되죠. 형태가 만들어지고 다시 해체되는 과정에서 땅과 하늘이 서로 대화하듯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저 역시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김주리 작가는 도자기라는 매체에 깃든 땅과 하늘 사이의 긴장, 상호작용을 매우 섬세하게 포착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식물’, ‘공기’ 워크숍에서는 짚풀과 연 등 자연과 가까운 재료를 다룹니다. 이렇게 재료와 직접 맞닿는 경험은 배움의 과정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나요? 짚풀은 같은 자연 재료라 해도 진흙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촉감부터 손이 반응하는 방식까지 전혀 다르죠. 짚풀로 줄이나 밧줄을 만들 때는 손으로 재료를 비비고, 엮고, 꼬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저는 그 과정에서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손의 움직임에 생각보다 많은 감각과 경험이 담기고, 꼬이고 이어지는 줄의 구조 속에선 인간의 삶이 은유적으로 드러난다고 느껴요. 인생 역시 계속해서 엮이고 꼬이며 세대를 거쳐 이어지니까요. 공기 워크숍에서 다루는 연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연을 날릴 때 우리는 점프를 하고 손을 흔들며 몸을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은 결코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람의 흐름과 신체의 움직임이 연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죠. 인간의 몸과 공기의 흐름이 하나의 짝을 이루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가자들이 그 순간 자신과 자연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맞물리는 감각을 직접 느껴보기를 바랐습니다.

서로에게 반응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경험이 이번 프로그램 전반에 흐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한국 관람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길 바라시나요? 저는 이 질문을 조금 뒤집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한국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보다는 한국이 저에게 어떤 메시지를 건네고 싶은지 묻고 싶어요.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면 대만이나 중국, 일본 등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사회가 여전히 살아 있고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죠. 반면 유럽은 솔직히 말해 많이 지쳐 있고, 피로감이 짙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아시아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질 때는 우리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인이자 유럽인으로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한국 관람객들이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처럼 관람객의 목소리를 듣고, 그 안에서 의미가 생성되는 과정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역할과도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감상의 장소를 넘어 실험과 경험의 장으로 확장된 오늘날의 미술관은 앞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요즘 미술관은 일종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예술 작품을 보존하고 문화유산과 사회의 집단적 기억을 지켜야 하는 역할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 워크숍처럼 지식을 새롭게 전개하고 재해석하며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하죠. 이 두 가지 역할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문화유산을 정교하게 보존하는 동시에 그 전통이 현재의 삶에서도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다시 풀어내야 하니까요. 앞으로 미술관은 바로 그 긴장 속에서 보존과 활성화가 공존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준비 중인 작업이나 앞으로 계획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나요? 현재 세 권의 책을 프로젝트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For a New Humanism〉이라는 책으로, 지난주에 베이징 대학교에서 세 차례 진행한 강연을 바탕으로 구성할 예정입니다. 두 번째 책은 〈Scribbling〉으로, 한국어로도 번역된 저서 〈조응〉의 후속편에 해당합니다. 다양한 미술 작품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꾸준히 써왔는데, 이 책은 그 글들을 엮어 선보이려 합니다. 그리고 약 40년 전 인류학자로서 핀란드 라플란드 지역에서 필드워크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다시 그곳을 찾아 같은 지역을 새롭게 조사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또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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