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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획사 대표 A씨는 2011년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처음 만난 중학생 B(당시 15세)양을 여러 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B양이 가출하자 자신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이후 B양은 아이를 낳았고 2012년 A씨에게 성폭행당했다며 그를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B양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A씨와 B양이 지배 관계에 있다고 보고 그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강간 등) 등 혐의로 기소했다.
1심과 2심은 “중학생이 부모 또래이자 우연히 알게 된 남성과 며칠 만에 이성으로 좋아해 성관계를 맺었다고 수긍하기 어렵다”며 A씨에게 각각 징역 12년과 9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A씨가 다른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B양이 거의 매일 구치소를 찾아와 ‘사랑한다’는 편지를 건넸다”며 A씨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B양이 A씨와 주고받은 이메일과 휴대전화 메시지 등에서 스스로 감정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A씨가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이후에도 A씨 집에 머물면서 그의 아들을 돌봤다는 점도 A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파기환송심에서 B양 측은 “A씨의 강요로 면회를 갔고 편지도 썼다”고 주장했다.
B양은 경찰 수사에서도 “편지를 적게 쓰면 A씨가 ‘왜 이것밖에 안 썼냐. 다음부턴 꽉 채워 써라. 그래야 남들이 볼 때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로 보일 것 아니냐’며 화를 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A씨 측이 제출한 구치소 녹취록에는 A씨가 B양에게 “택시 끊기면 안 되니 오늘은 (구치소 면회실에서) 편지를 쓰지 말고 가라”는 등이라고 말한 내용이 담겼다.
대법원 무죄 판결로 결국 혐의를 벗은 A씨는 소리 내 울다 법정에서 나와 “선입견 없이 봐주신 재판부에 감사하다”며 “피해자를 원망한 적은 없다. 잘 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B양 측 변호사는 “판결이 국민 정서와 유리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많이 아쉽다”며 “이런 것이 사법 불신의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판결을 두고 일각에선 법원이 청소년 성범죄에 지나치게 엄격한 증거를 요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피해자 진술 외에 직접 증거가 없다면 범행 정황을 따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따른 판결이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 나이를 13세 미만에서 15~16세로 올려 판단이 미숙한 미성년자들을 보호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B양이 사건 당시 13세 미만이었다면 A씨는 강제성 여부와 상관없이 성폭행죄가 인정된다.
2024년 6월 헌법재판소는 형법 개정 후 처음으로 성인이 13~16세 미성년자를 간음하면 상대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으로 간주(의제)해 처벌하는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헌재는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사람도 13세 미만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다”라며 “설령 동의에 의해 성적 행위를 한 경우라고 해도 성적 행위의 의미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온전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개별 사건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나이를 규정한 데 대해선 “개인의 성숙도나 판단능력, 분별력을 계측할 객관적 기준과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범위를 나이에 따라 일의적·확정적으로 유형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해당 조항은 날이 갈수록 그 수법이 정교해지는 온라인 성범죄나 그루밍 성범죄로부터 16세 미만의 청소년을 두텁게 보호하려는 데 취지가 있다”며 “피해자의 범위를 ‘업무·고용·양육·교육 등’의 특정 관계가 있는 사람으로 한정해서는 입법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루밍 성범죄는 가해자가 피해자와 ‘돈독한 관계’를 형성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A씨에 대한 무죄 판결은 2023년 12월 당시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다시 언급됐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세 여중생과 연인 관계라는 연예기획사 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랑을 인정한 판결에 대해 절대 동의하지 못한다”며 “정신까지 지배하는 그루밍 범죄는 법이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2017년 대법관 재직 시절 A씨에게 무죄를 확정한 조 대법원장은 “파기환송심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지 않고 사건이 올라와 무죄로 판결할 수밖에 없었다”며 “기속력 법리에 따른 것일 뿐, 이 사건 자체의 당부(옳고 그름)를 판단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기속력은 대법원 재판부가 원심 판결을 파기한 재판을 공표한 뒤 해당 재판을 임의로 철회하거나 변경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자 전 의원은 “사회적 파장이 예측되는 판결은 단순히 기속력에 따를 것이 아니라 전원합의체를 거쳐서라도 실체를 확인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
조 대법원장은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이라는 두 가치는 항상 충돌하기 마련”이라며 “파기환송을 하면 하급심이 기속 되는데 그 시스템을 지키지 않기 시작하면 사법 시스템 자체가 존립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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