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무덤 안에 함께 묻힌 석제 거푸집 한 쌍이 초기철기시대 한반도의 금속 제작 기술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2003년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갈동마을과 양동마을 사이 도로 건설에 앞선 문화유산 발굴 조사에서 구릉 남쪽 비탈면의 움무덤 네 기가 확인됐다. 1호 움무덤 남쪽 벽 부근에서 한국식 동검과 청동 꺾창 모양을 새긴 거푸집 두 점이 나왔다. 출토 위치와 유구 성격이 분명하게 남은 사례여서 학술 가치가 높아 2019년 보물로 지정됐다.
거푸집은 금속을 녹여 부어 도구를 만드는 틀이다. 완주 갈동 유적에서 나온 사례는 청동기를 실제로 만들었던 현장을 가까이 보여주는 드문 자료다. 무덤 주인공이 청동기를 제작하고 소유했던 인물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제작 기술을 가진 장인이 무덤의 주인공이었을 수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출토된 유물은 두 개의 틀을 맞대어 쓰는 쌍합범이다. 한 점은 길이 33.1㎝ 너비 7.4㎝ 두께 3.2㎝이며 앞면에 길이 31㎝의 한국식 동검을 음각으로 새겼다. 다른 한 점은 길이 32.0㎝ 너비 8.1㎝ 두께 3.2㎝이며 앞면에 길이 31.0㎝의 한국식 동검을 새겼다. 뒷면에는 길이 30.1㎝의 청동 꺾창을 음각으로 새겼다. 두 틀은 거의 오차 없이 맞아떨어질 정도로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당시 장인의 손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말해준다.
유물 표면에는 실제 사용 흔적도 또렷하다. 음각 부분이 검게 변한 자국과 미세한 가로 실금이 있어 녹인 청동 용액이 흘렀던 흔적으로 읽힌다. 한국식 동검 새김부가 더 짙게 변색된 점을 보면 청동 꺾창 제작용 틀을 뒤에 한국식 동검 제작용 틀로 다시 썼을 가능성도 크다. 맞댄 면 아랫부분에는 청동 용액을 붓는 구멍과 틀의 위치를 정확히 맞추기 위한 눈금 표시까지 새겨져 있다.
과학 분석 결과도 흥미롭다. 엑스선 형광분석과 엑스선 회절분석 결과 거푸집 재질은 활석으로 확인됐다. 활석은 매우 무른 광물이라 조각하기 쉽고 1,0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도 잘 견뎌 거푸집 재료에 알맞다. 재료 선택에서부터 조각 솜씨와 사용 방식까지 당시 금속 장인의 높은 기술 수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완주 갈동 유적 거푸집의 가치는 출토 맥락이 뚜렷하다는 데서 커진다. 한반도 청동기 제작을 알려주는 거푸집 자료는 적지 않게 알려져 있지만 상당수는 수집품이어서 어디서 어떤 상태로 나왔는지 알기 어려웠다. 국보인 ‘전 영암 거푸집 일괄’도 영암 출토품으로 전해질 뿐 발견 경위가 분명하지 않다. 완주 갈동 사례는 무덤 구조와 출토 위치와 함께 나온 유물, 실제 사용 흔적까지 한자리에서 확인된다.
유물의 제작 시기는 무덤 조성 시기와 거푸집에 새겨진 한국식 동검 형식, 주변 움무덤 출토품을 종합해 기원전 2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약 2,100년 전 이 일대 사람들이 청동기를 직접 만들고 사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다. 청동기에서 초기철기시대로 이어지는 전환기의 생산 체계와 기술 수준, 장인의 위상까지 읽을 수 있는 귀한 자료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완주 갈동 유적 거푸집은 오래된 공예 도구 한 벌에 머물지 않는다. 당시 사회가 어떤 무기를 만들었는지와 누가 금속 생산을 맡았는지,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축적됐는지를 함께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뉴스컬처 이상완 bolante484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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