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콘크리트의 유언, 인프라 국가를 설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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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콘크리트의 유언, 인프라 국가를 설계하라

경기일보 2026-03-31 19:10: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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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53만채, 경기도에서만 16만채의 빈집이 거대한 침묵 속에 방치돼 있다. 주택 100채 중 8채가 비었다는 서늘한 지표는 수십년간 한국을 지탱해 온 부동산 신화의 파산을 알리는 최후의 경고음이다. 부의 축적을 상징하던 훈장인 콘크리트가 이제는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묶어 버린 거대한 족쇄가 된 셈이다. 이 인구 절벽의 파고 속에서 던져야 할 본질적인 질문은 하나다. 이 거대한 공백을 국가적 부채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을 재설계할 새로운 전략 자산으로 전환할 것인가.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은 자산의 동맥경화다. 가계 자산의 70% 이상이 생산성과 절연된 부동산에 묶여 있지만 차가운 콘크리트는 더 이상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153만채의 빈집은 자본이 흐르지 못하고 고인 채 사장(死藏)돼가는 침전(沈澱)의 현장이다. 이제 소유라는 과거의 유령에서 벗어나 활용과 흐름이 지배하는 미래의 영토로 나아가야 한다.

 

해법은 분명하다. 빈집을 주거 공간이 아닌 국가적 인프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유휴 주택을 분산형 에너지 저장 장치(ESS)와 인공지능(AI) 엣지 컴퓨팅 거점으로 전환해 지역 단위의 미세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 제안이다. 거대 발전소와 중앙 서버에 의존하던 수직적 구조를 세포 단위의 수평적 구조로 해체해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이미 세계는 이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독일은 에너지 전환을 통해 200만개 이상의 소규모 발전시설을 연결하며 거실의 발전소화를 실현했고 일본은 지방 유휴 시설을 초저지연 데이터 처리를 위한 엣지 센터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전력은 분산되고 데이터는 현장으로 흐르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조류임에도 우리만 집값이라는 환각에 빠져 미래 자산을 폐기물로 방치하고 있다.

 

이 전환의 성패는 기술이 아닌 자본의 리듬을 바꾸는 데 달려 있다. 민간 자본이 시세 차익 대신 인프라 수익을 쫓도록 인프라 리츠(Infra-REITs)를 도입해야 한다. 투자자가 에너지 거래와 데이터 처리 수익을 배당받는 구조다. 글로벌 시장에서 ESS 기반 전력 거래가 연 6~10% 수준의 수익률을 증명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난관은 존재한다. 화재 안전성과 소음 문제를 해결할 기술적 표준이 마련돼야 하며 국토부, 산업부, 과기부로 파편화된 행정을 통합할 ‘국가 공간 재구조화 본부’ 같은 범정부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다. 또 자산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주민들에게 인프라 수익권이나 요금 감면 같은 실질적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사회적 합의가 병행돼야 한다.

 

이 전환의 본질은 접속 권력의 재편이다. 앞으로의 격차는 소득이 아니라 인프라 접속권에서 발생한다.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수준의 에너지 자립과 데이터 환경을 누릴 때 공간의 위계는 비로소 무너진다. 지방 소멸의 해법 역시 사람을 억지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인프라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153만채의 빈집은 부채가 아니라 전환을 위한 기회다. 부동산에 매몰된 경제가 자본을 고착시킨다면 인프라 경제는 그 자본을 깨워 생산성을 확장한다. 양적 공급의 담론을 넘어 공간을 어떻게 흐르게 할 것인가라는 질적 전환에 집중할 때다. 콘크리트는 더 이상 축적의 대상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다음 세대를 지탱할 인프라 국가의 견고한 재료가 돼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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