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흐른다. 하이네의 시처럼 온갖 꽃들이 일시에 피어나고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부드럽고 윤기 있는 풍경이다. 산책길에 느닷없이 피어난 자목련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얀 목련이 내릴 때쯤 망울지던 것이 이미 만개한 것이다. 버드나무도 어느새 올리브그린으로 변했다. 개나리 진달래 피고, 영산홍과 철쭉이 뒤따라야 하거늘 요즘 꽃들은 눈치 없는 사오정처럼 대책 없다. 번호표를 줘 대기줄을 서게 해야 할까. 꽃들의 무질서는 사실 인간이 만든 부메랑이니 변질된 환경을 탓할 수도 없다. 어쩌면 자연도 인간처럼 앞뒤 없고 속수무책인 속도와의 전쟁을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종달새는 개척교회 목사님 설교처럼 정성스럽고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처럼 미려하다.
세류동 언덕을 지나다 그린세탁소라는 간판을 봤다. 인공지능 시대에 세탁소가 존재하는 것이 신기하다. 무인빨래방도 생겼지만 드라이 크리닝이란 고전적 세탁소는 속도의 시대를 쉬어가는 느린 횡적 풍경이어서 편안함을 느낀다.
문득 손빨래한 교복에 감자풀 먹여 하얀 칼라를 세워주시던 어머니의 다림질이 오브랩됐다. 나도 매일 아이들의 교복을 다림질해 등교시킨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사치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견지하는 의무 같았다. 편의만을 쫓는 시대는 가끔 인간 사이의 체온을 앗아 간다. 봄날도 벌써 어둡다. 준비 없는 이별처럼 한 계절은 이미 떠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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