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성 장애(오티즘·Autism)는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 존재한다. 당사자마다 의사소통 방식과 감각, 일상의 조건이 천차만별로 다르지만 사회는 일부 장면과 익숙한 서사를 통해 이들을 쉽게 규정하고 있다.
세계자폐인의 날을 맞아 본지는 ‘살아가는 오티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현장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식이 얼마나 좁았는지 돌아보고 실재하는 삶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인식을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오티즘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존재의 조건을 인정하는 일이다. 이는 비장애인이 타자를 이해하고 관계 맺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기획이 오티즘에 대한 선입견을 벗어나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다가오는 4월 2일 ‘세계자폐인의 날(World Autism Awareness Day)’을 앞두고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계자폐인의 날은 유엔(UN)이 제정한 국제기념일이다. 영문 명칭을 직역하면 ‘세계 오티즘 인식의 날’로, 오티즘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높이고 당사자의 권리 보장과 사회 참여 확대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여기서 ‘오티즘’이란 한국자폐인사랑협회(이하 ASK·Autism Society of Korea)가 사용을 확산하고 있는 용어이기도 하다. ASK는 기존의 ‘자폐’라는 명칭에 담긴 부정적 뉘앙스를 줄이고 보다 중립적이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을 통해 인식을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용어 대체를 추진하고 있다.
31일 취재에 따르면 국내 오티즘 당사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등록장애인 현황’을 보면 2021년 약 3만3600명이었던 등록 오티즘 당사자는 2024년 약 4만7000명까지 증가했다. 국내 등록장애인이 263만1356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오티즘 당사자들은 1.8%인 수준이다.
오티즘 당사자가 늘고 있는 것은 진단 기준의 확장과 조기 발견 체계의 발달, 그리고 사회적 인식 개선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과거에는 특이한 성격이나 양육 문제로 오해되던 경우들이 이제는 보다 정확한 진단을 통해 자폐 스펙트럼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과거에는 낯설고 오해가 많았던 오티즘에 대한 인식도 점차 변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오티즘 가족들이 설립한 ASK와 꾸준한 인식개선 활동이 자리하고 있다. ASK는 지난 20여 년간 ‘세계자폐인의 날’을 중심으로 한 캠페인을 비롯해 오티즘 인식 개선 행사,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 등을 지속적으로 펼치며 사회적 공감대 확산에 힘써왔다.
특히 ASK는 매해 세계자폐인의 날을 기념해 오티즘 작가 특별전시회인 ‘세상을 밝히는 명작전’을 개최해 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예술인 중 오티즘 작가의 비율은 14.4%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ASK는 오티즘 당사자들이 그림을 통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여기며 자신만의 화풍이 있는 오티즘 작가를 발굴했다.
그 결과 5만2704명의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해 오티즘 예술의 가치와 창의성을 사회에 알릴 수 있었다. 이 특별전시회는 온라인 갤러리를 통해서도 운영되며 시간과 공간 제약 없이 누구나 작품을 관람할 수 있게 유지되고 있다.
이 밖에도 시민 참여형 행사인 ‘오티즘 레이스’와 학교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온 ‘행복한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 역시 장애를 보다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감수성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ASK가 일조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아울러 ASK는 오티즘을 포함한 발달장애인의 권리 보장과 지원 체계 마련을 위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2014) 제정 과정에도 힘을 보태며 제도 변화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물론 이 같은 긍정적인 움직임 속에서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장애 차별 경험에 대한 조사에서는 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일상 속에서 겪는 편견과 배제 사례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23 장애인 실태조사’의 ‘장애 때문에 본인이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정도’ 항목에 따르면 오티즘 당사자는 ‘항상 느낀다’ 13.5%, ‘가끔 느낀다’ 54%로 조사됐다.
이를 합치면 오티즘 당사자의 67.5%가 일상에서 차별을 경험한다고 느끼는 셈이다. 특히 우리 사회 전반의 장애인 차별 수준을 묻는 문항에서는 ‘차별이 매우 있다’는 응답이 오티즘 당사자는 44.9%로 가장 높게 나타나 오티즘 당사자들이 체감하는 사회적 장벽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ASK 한은주 운영위원(연극치료사협회 회장)은 오티즘 당사자들이 더 높은 차별을 체감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가 많을 때 차별이 생긴다”며 “오티즘 역시 특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편견과 두려움이 형성되고 그것이 차별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오티즘 당사자를 ‘무섭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고, 결국 거리 두기와 배제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운영위원은 “이러한 두려움은 결국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만큼, 오티즘의 특성과 원인을 꾸준히 알리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공교육을 포함해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인식 개선 교육이 이뤄진다면 오해와 차별은 충분히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발달장애인법 이후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현장 체감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ASK 박성열 부회장은 “지원센터 등 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지만 실제로 당사자와 가족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실질적 지원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많다”고 강조했다.
특히 연령대별 정책 공백 문제를 강조했다. 박 부회장은 “오티즘이 보통 영유아 시기 진단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시기 부모들은 갑작스러운 진단 앞에서 큰 혼란과 막막함을 겪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국가 차원의 초기 교육·정보 제공 체계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며 “동시에 중년기 이후에는 부모의 고령화로 돌봄 공백이 발생하지만 이에 대한 국가적 대책은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정책 방향과 관련해서는 자립 지원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그는 “발달장애인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경제활동을 통해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기업의 실질적인 고용 확대와 현장 중심의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제도 개선과 함께 중요한 것은 사회 인식”이라며 “발달장애인을 우리 사회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책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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