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현지 문화와 언어, 고객에 대한 이해 부족이 기업의 리스크로 작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해당 국가의 언어를 전혀 알지 못해 소비자들의 공분을 사는가 하면,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돈 벌라면 자격 갖춰라" 냉정해진 소비자들…CEO 퇴진 압박에 불매운동도 불사
30일(현지 시간) 에어캐나다는 마이클 루소 CEO의 사임 소식을 발표했다. 에어캐나다 대변인은 "그의 은퇴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라고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현지 언론과 업계에선 마이클 루소 CEO가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한 점을 결정적 이유 보는 시각이 많다.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소속 여객기와 소방차의 충돌로 조종사 2명이 숨지고 승객 4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마이클 루소 CEO가 영어로만 사과와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사망한 두 조종사 중 한 명은 퀘백주 출신으로 평소 프랑스어를 자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점에서 고인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 사과를 하는 것 자체가 진정성이 결여된 행위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마이클 루소 CEO의 부족한 프랑스어 때문에 논란이 불거진 것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21년 CEO 취임 직후 몬트리올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행사에서 "몬트리올에서 14년을 거주했는데 프랑스어를 왜 못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프랑스어를 못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라고 답변해 구설에 오른 적 있다.
캐나다가 유독 언어에 민감한 이유는 특유의 인구 구조 때문이다. 캐나다 내에는 두 개의 역사를 지닌 민족이 존재하는데 지역 별로 민족 구성 비율이 다르고 자신들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하다. 일례로 프랑스계 주민이 상당수 잔존한 퀘벡주에서 프랑스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으로까지 여겨진다. 캐나다 대표 국적 항공사의 CEO가 프랑스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에 민감한 것은 이러한 문화적 특수성에 기인한 결과로 평가된다.
현지 문화와 언어 등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곤욕을 치른 사례는 전 세계에 걸쳐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미국 델라웨어에 본사를 둔 쿠팡은 한국에서 영업활동을 하며 우리 국민 약 3천만명이 사용하는 거대 플랫폼으로 성장했지만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유출 사건 이후의 사태 수습 과정에서 국민적 공분을 산 바 있다. 국회 청문회 자리에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외국인 CEO를 내보내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해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언어 장벽을 방패막이로 삼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돌체앤가바나가 중국 시장에서 크게 무너진 이유도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 지목되고 있다. 지난 2018년 돌체앤가바나는 중국인 모델이 젓가락으로 피자를 먹는 모습을 광고로 내보냈는데 해당 광고를 두고 "중국 문화를 무시했다"고 해석이 나오면서 비판 여론이 빠르게 확산됐다. 돌체앤가바나 측은 상하이 패션쇼 홍보를 위해 '이탈리아와 중국 문화의 만남'을 표현했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결국 패션쇼 또한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지금도 돌체앤가바나는 중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브랜드 중 하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청년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사진·동영상 공유 플랫폼 스냅챗도 인도와 스페인에서 큰 홍역을 치렀다. 창업자이자 CEO인 에반 스피겔이 "우리 앱은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므로 인도나 스페인 같은 가난한 나라로는 확장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사실이 한 직원의 폭로를 통해 알려지면서 이용자들의 탈퇴 행렬이 줄을 이엇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셌는데 이는 스냅챗이 메타에 주도권을 넘겨주며 글로벌 확장 둔화세로 접어든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핵심 고객층에 대한 이해 부족이 기업 리스크를 부채질한 사례도 있다. 2013년 초 프리미엄 요가·운동복 브랜드 룰루레몬은 주력 상품에 고객 불만이 이어지면서 대규모 리콜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룰루레몬 창업자 칩 윌슨은 "어떤 여성들의 몸은 우리 제품에 맞지 않는다"고 발언했는데 해당 발언은 여성 소비자의 공분을 샀다. 리콜 사태의 원인을 고객에게 전가하려던 행위가 오히려 사태를 키우는 계기로 작용하면서 결국 창업자 사임과 브랜드 이미지 하락으로 귀결됐다.
전문가들은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만큼 새로운 시장 개척 과정에서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가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이홍주 교수는 "과거의 소비자들이 단순히 가격과 품질을 보고 소비를 선택했다면 요즘 소비자들은 '이 소비를 통해 나의 어떤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기업은) 소비자들이 개인의 정체성과 소비행위를 동일시한다는 점의 무게감을 인식하고 이전보다 커뮤니케이션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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