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네트워크(SNS) 이용연령 제한 여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SNS에 올라 오는 '짧은 영상' 콘텐츠, 이른바 '숏폼'의 중독성·유해성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특히 얼마 전 미국에서 미성년자의 SNS 중독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원고인 부모 측의 손을 들어주며 피고인 구글·메타에 약 80억원대의 배상을 판결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관련 규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법원 판결 결과를 통해 중독성·유해성이 입증된 것과 다름없다는 논리다.
우울증, 불안, ADHD 등 정신 질환에 유사 틱장애까지…술·마약 만큼 유해한 SNS 숏폼
AP·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주 1심 법원 배심원단은 구글과 메타가 운영하는 플랫폼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미성년자 SNS 중독에 책임이 있다며 300만달러(한화 약 80억원) 규모의 배상 책임을 져야한다고 평결했다. 앞서 원고인 20대 여성은 자신이 6세에 유튜브를, 9세에 인스타그램을 각각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SNS 중독 상태에 빠졌고 그 여파로 우울증과 신체장애 등을 겪었다며 플랫폼 운영사를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했다. 만약 배심원단의 평결이 확정되면 배상금의 70%는 메타가, 나머지는 구글이 각각 물게 된다.
이번 평결은 전 세계에 큰 파장을 낳고 있다. 특히 미성년자의 SNS 중독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온 나라에선 또 다시 미성년자 SNS 이용제한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예외는 아니다. 숏폼 콘텐츠를 다루는 SNS 플랫폼이 미성년자에게 미치는 유해성이 재조명되는 것은 물론 문제가 더욱 커지기 전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견해도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선 미성년자의 SNS 접근을 원천봉쇄하는 물리적 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9살·13살 두 자녀를 둔 박수진 씨(38·여)는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요즘 SNS, 특히 숏폼 때문에 골머리 앓는 부모들이 한 둘이 아니다"며 "그만 하라고 할 때 까진 넋을 놓고 스마트폰만 본다. 그만 보라고 잔소리하면 버럭 화를 낼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숏폼이 정말 아이들한테 안 좋다고 느끼는 게 옆에서 말을 걸어도 못 들을 정도로 정신을 놓고 본다"며 "등·하굣길 안전이나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사주긴 했는데 매일 따라다니면서 숏폼을 못 보게 할 수도 없고 정말 골치가 아프다"고 토로했다.
다수의 의료·의학 전문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숏폼 콘텐츠는 아이들의 정신·신체 건강에 매우 치명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마약이나 술 등과 같은 물질 중독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중독성이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볼 때마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도파민에 내성이 생겨 더욱 강하고 지속적인 자극을 찾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자극에 의한 도파민 분비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증, 불안, ADHD 등과 같은 정신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앞서 한 시간 이상 숏폼 등과 같은 디지털 미디어에 노출될 경우 ADHD 발병 위험이 10% 가량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뇌 건강 악화에서 파생되는 신체적 결함 문제도 심각하다. 한 자세로 장기간 스마트폰을 보다 보니 거북목증후군, 안구건조증, 손목터널증후군 등의 발생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진다. 특히 신체가 다 자라지 못한 미성년자의 경우 체형 전체가 망가질 가능성이 높다. 같은 이유로 운동량 저하에 따른 비만과 이에 따른 합병증 발병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낮은 확률로 틱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기능성 틱 유사행동증후군'이 발생할 수도 있다. 숏폼에 몰입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눈을 깜빡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식이다.
중독 가까운 숏폼 몰입에 골머리 앓는 부모들 "아이폰 SNS 접속 시 알림 의무화 필요"
'미성년자 SNS 제한' 규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된 상태다. 사단법인 중독포럼이 지난해 6월 9일부터 13일까지 전국 10대~50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9%가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디지털미디어 중독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부모세대의 우려가 특히 심했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는 비중이 높은 40대의 경우 93%가 심각성에 동의했다. 또한 청소년 앱·게임·SNS 이용에 대한 부모동의 의무화 정책에서는 10대만 유일하게 반대 의견이 많았을 뿐 나머지 세대는 전부 동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린 자녀들을 둔 대다수의 부모들은 'SNS 연령제한' 정책이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 사안이라며 하루 빨리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초등학교 8살·11살 자녀를 둔 김나영 씨(40·여·가명)는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데 SNS 숏폼 영상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과 싸운다"며 "SNS 숏폼 영상을 보기 시작하면 밥 먹을 생각도 안하고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는데 큰 아이 행동을 작은 아이까지 따라 하니까 더 스트레스 받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어 집을 비우는 날이 많다보니 통제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며 "정책이나 법으로 접속 때마다 성인인증을 하게 하든 휴대폰에 뭘 깔아 놓게끔 하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지 싶다"고 강조했다.
10살 자녀를 둔 박승수 씨(43·남)는 "구글이 참 황당한 게 '유튜브 키즈' 어플에는 숏폼 영상이 없다"며 "결국 자신들도 어린 아이들에게 숏폼이 엄청 유해하다는 사실을 안다는 의미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이미 플랫폼 운영사부터 알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규제를 미룰 필요가 없다고 본다"며 "이미 호주나 유럽 국가들, 동남아 국가에서도 미성년자 SNS 이용 시 보호자의 동의를 받게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도 최소한 자녀가 SNS에 접속하면 부모 휴대폰으로 허용 알림이 가도록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게끔 강제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이미 미성년자의 SNS 이용, 특히 숏폼의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됐고 법적으로도 플랫폼 기업에 책임을 묻는 판결이 줄줄이 등장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 또한 국제사회 움직임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문화 후진국이라 치부되는 중국보다도 관련 규제가 약한 실정이다"며 "인적 자원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의 스마트폰 중독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숏폼 중독은 신체적 결함도 문제지만 정신적 외상이 더 심각하다"며 "특히 청소년기는 전두엽 기능이 활발히 발달하면서 심리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이때 디지털 중독에 빠지게 되면 올바른 자아 형성이 불가능해진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 문제의 치명성을 너무 간과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국가적 차원의 강력한 규제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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