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았다. 간 수치가 좋지 않으니 한 달 동안 철저히 관리한 후 재검을 받으라는 의사의 처방이 내려졌다. 지난 몇 달간 나를 짓눌렀던 걱정과 스트레스가 이렇게나 빨리 몸에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문득, 한 가지 묵직한 깨달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역사를 돌아보면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했던 시대가 있었다. 서구의 낯선 문물이 해일처럼 밀려들던 조선 말기가 그러했고 증기기관이 거대한 공장을 만들어내며 산업 구조를 송두리째 바꾼 산업혁명 시기가 그러했다. 그 시대를 맨몸으로 부딪쳐야 했던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을까? 시대의 파도를 견뎌낸 이들에 대한 연민과 감탄이 동시에 교차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바로 지금 우리가 그 역사적 격변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공지능(AI)이 몰고 온 충격파는 그 크기와 속도 면에서 과거의 어떤 혁명보다 압도적이다. 이 폭풍은 수많은 사람의 일상을 거침없이 뒤흔들고 있다. 누군가는 이 흐름을 타 천문학적인 부를 창출하고 자신의 유능함을 뽐내며 기회를 거머쥔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효율성이라는 매정한 잣대 앞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자리를 AI에게 속절없이 내어주고 대체된다. 아예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출발선에서 멈춰 선 이들도 있다. 과거 신입 사원들이 맡으며 일을 배워나가던 기초적인 업무를 AI가 단숨에 처리하게 되면서, 취업의 문 자체가 굳게 닫혀버린 사회 초년생들의 절망이다.
무엇보다 깊은 내상을 입은 이들은 일을 단순한 밥벌이가 아닌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일 것이다. 일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창조해 온 이들은 이제 "과연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섰다. 평생을 바쳐 벼려온 전문성과 철학이 알고리즘의 연산 속도와 비교당하는 현실은, 단순한 일자리 상실을 넘어 한 인간의 존재 이유를 뒤흔드는 뼈아픈 위기다.
이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장 내가 오랫동안 해오던 강의 주제들은 더 이상 시장에서 찾지 않는다. 세상은 온통 AI 관련 강의로 넘쳐난다. '왜 진작 AI 강사가 될 준비를 하지 못하고 구경만 했을까' 하는 뼈아픈 자책이 가슴을 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서둘러 준비하라고 속마음은 재촉한다. 하지만 모든 창조자가 그러하듯 내가 하는 강의 주제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나의 핵심 가치이자 정체성 그 자체다. 유행에 따라 하루아침에 메뉴를 바꾸듯 순식간에 갈아치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밀려오는 거대한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내가 오랫동안 지켜온 정체성의 본질을 어떻게 잃지 않을 것인가? 이 막막하고도 묵직한 고민이 매일 밤 나를 짓누른다.
조직 구성원들과 리더들이 겪는 혼란 역시 임계점에 달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 형국이다. 본디 팀의 생명력은 하나로 뭉쳐 손발을 맞추는 데서 나오는데 AI는 이러한 조직의 오랜 공식을 완전히 헝클어트리고 있다. 신입 사원이 AI 에이전트를 능숙하게 활용해 10년 차 선임의 전문성을 순식간에 뛰어넘는 묘기를 부린다.
이제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서로에게 묻지 않는다. 다만 AI에게 물어볼 뿐이다. 팀은 점차 각자의 비장의 무기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 해내는 '용병들의 집단'으로 변해간다. 실력 있는 용병의 "나는 혼자 일합니다"라는 선언이 제법 멋지게 들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일터에서 겪는 이 정도의 혼란은 타격감의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곧 다가올 것이다. 머지않아 일자리를 근본적으로 위협받는 순간이 닥칠 수 있다. 이미 공공연하게 기업의 관리자 역할을 AI가 대체할 것이라는 보고서들이 쏟아져 나온다. 오늘과 내일을 어떻게 살 것인가? 꼬리를 무는, 답 없는 걱정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AI를 활용하여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것 외에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거대한 불안과 걱정에 맞서 싸울 '단단한 마음의 준비'다. 대전환기가 가져오는 극심한 혼란 속에서, 오늘과 내일의 생존을 가늠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짓눌려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강인한 정신력을 다져야 할 때다.
우선 걱정과 싸워 이기겠다는 단단한 결심부터 해야 한다. 데일 카네기는 그의 저서 <자기관리론> 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걱정을 계속하게 되면 건강을 해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라. 걱정과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은 단명한다." 이 문장을 당장 인쇄해 책상과 냉장고에 붙여두어야 할 것이다. 자기관리론>
그렇다면 어떻게 싸울 것인가? 모든 싸움은 내가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걱정이 나를 갉아먹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것이 진짜 시작이다. 스스로에게 소리 내어 말하라. "나는 결코, 걱정에 지지 않겠다!"라고.
그리고 다짐을 넘어 구체적인 행동을 하나 시작했다. 나는 다시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아침 조깅에 나섰다. 다행히 때마침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뺨에 닿는 아침 공기는 더 이상 차갑지 않고 오히려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만큼 상쾌하다. 마지막 한 바퀴는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전속력을 낸다. 폐 깊숙이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며 가뿐 숨을 고르며 온몸에 피가 도는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싸울 용기가 생긴다.
걱정과 싸우겠다고 결심한 당신에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글을 <자기관리론> 에서 재인용하여 선물한다. 자기관리론>
“의식적인 노력으로 생활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만큼 믿음직한 것은 없다. 자기가 뜻하는 방향으로 확신을 갖고 나아가 바라던 삶을 누리려고 노력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성공에 이르게 될 것이다.”
☞AI 에이전트= 사용자의 목적에 맞춰 스스로 판단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인공지능 비서다. 단순한 질문 답변을 넘어 이메일 작성, 일정 관리, 데이터 분석 등 복잡한 업무를 자율적으로 처리하며 인간의 업무 파트너 역할을 한다.
여성경제신문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spreadksj@gmail.com
김승중 심리학 박사 / 리더십 코치
광운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양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GS건설 재무팀을 거쳐 데일카네기코리아에서 17년간 교육컨설팅본부장으로 근무하며 삼성, 현대, LG, SK 등 주요 대기업의 리더십 개발 프로젝트를 기획·총괄했다. 국제 공인 마스터 트레이너로서 수백명의 강사를 양성한 전문가다. 현재는 리더십·코칭 전문 컨설팅 회사 TGW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임원과 핵심 리더들이 아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그 변화가 조직 전체로 확산하도록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인생의 내공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 <마음의 레버리지> 가 있으며, 월간마음건강 고정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마음의> 인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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