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어머니를 위한 마음에서 시작된 필라테스의 기준
누구나 건강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지만, 나이가 들수록 몸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운동 공간은 오히려 찾기 어려워진다. 운동은 더 절실해지는데도 시니어를 위한 수업과 환경은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젊은 층에 맞춰진 프로그램은 많지만, 나이가 든 몸에 필요한 설명과 속도, 세심한 배려까지 갖춘 곳은 드물다. 그래서 부모의 노후를 걱정하는 자녀들에게 더 절실한 것은 ‘운동을 시켜주는 곳’보다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디어마더&라피네필라테스의 혜성 대표는 바로 그 물음에서 출발해, 시니어의 몸과 자녀의 마음을 함께 살피는 공간을 고민해 왔다. 이에 이슈메이커는 그녀가 세워온 기준과 향하는 방향을 살펴보았다.
예술가의 시간 끝에서 필라테스를 만나다
디어마더&라피네필라테스는 지금의 혜성 대표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명제가 됐다. 시니어의 몸 상태에 맞는 운동을 고민하고, 자녀가 부모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공간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이라는 인식도 그 안에서 함께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운동을 업으로 정해두고 이 길을 준비해 온 것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까지 혜성 대표가 향했던 곳은 음악인의 길이었다.
혜성 대표는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예술가였다. 가족들 역시 음악과 가까운 환경에 있었고, 언니도 지금까지 바이올리니스트다. 다만 그녀는 일찍부터 자신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봤다. 고등학교 때 이미 이 길에서 가장 앞선 자리에 설 수는 없겠다는 판단이 있었고, 음악을 계속해도 진로의 폭이 넓지 않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다른 가능성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여러 일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성향을 확인해 갔다.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일이 잘 맞았고, 서비스와 교육이 함께 있는 일에서 더 큰 흥미를 느꼈다. 강의를 듣고 배우는 과정 자체도 즐거웠지만, 누군가를 만나 설명하고 반응을 살피며 가까이에서 변화를 확인하는 일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다는 사실을 그 무렵 분명히 알게 됐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낯설었던 것도 아니다. 어릴 때부터 수영과 등산을 좋아했고, 활동적인 생활을 자연스럽게 이어왔다. 그러다 부산에서 필라테스라는 이름이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던 시기에 이 분야를 다시 보게 됐다. 당시에는 필라테스가 아직 대중적으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 졸업 후 5년쯤 지나 부산에서도 관련 자격증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지체 없이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2018년부터 준비를 시작해 2019년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자격증 하나를 손에 쥐었다고 곧바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론보다 현장이 더 중요하다고 봤어요. 앉아서 이론을 공부하는 영역은 혼자서도 채울 수 있지만, 실제 수업은 회원과 마주하는 자리에서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본 수업에 바로 들어가기보다 대강과 실습을 더 많이 택했고, 여러 공간을 오가며 몸의 상태도, 수업의 분위기도, 회원들의 반응도 직접 겪어보려 했습니다”라고 전했다. 지금 혜성 대표가 운동을 설명할 때 늘 사람과 상황을 먼저 떠올리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이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 아닐까.
빠른 성장 뒤에 찾아온 실패가 남긴 교훈
코로나-19로 세상이 잠시 멈췄던 시기, 집 앞을 서성이다 우연히 부동산에 들어간 일이 디어마더&라피네필라테스의 전신인 라피네필라테스 창업의 시작이 됐다. 원래부터 개원을 목표로 치밀하게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여러 공간을 본 뒤 ‘이 정도 월세라면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겠다’라는 판단이 먼저 섰고, 번화가가 아닌 작은 동네 안쪽이라는 점도 오히려 마음을 움직였다. 처음부터 큰 규모나 화려한 입지를 내세우기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시작해 보자는 판단이 앞섰다.
강사로서 5년의 준비기간이 있었지만, 출발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반응은 빨랐다. 오픈 직후부터 회원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2년 가까이 대기가 이어질 만큼 수업은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혜성 대표 역시 그 시기를 돌아보며 당시에는 ‘하늘이 내 편인가 싶을 정도’였다고 말할 만큼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수업이 채워지고 회원이 늘어나는 속도가 빨랐던 만큼, 더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 무렵 그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일했고, 수업과 운영을 동시에 끌어안으며 앞만 보고 달렸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확장’으로 생각이 이어진 것이다. 동업 형태로 2호점을 내고, 프랜차이즈까지 시도했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밖에서 보기에는 이미 자리를 잡은 듯했지만, 정작 안에서는 사람 문제와 운영 문제, 관계의 균열이 한꺼번에 겹쳤다. 큰 실패를 겪은 뒤 혜성 대표에게 남은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한때는 번아웃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지만, 결국 그녀를 다시 돌아오게 한 것도 수업과 자신을 믿어주는 회원들 때문이었다.
그 시기를 지나며 혜성 대표의 기준은 수업 한 타임 한 타임의 밀도를 높이고, 회원들에게 더 좋은 수업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혜성 대표는 “예전에는 회원을 많이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저 자신이 잘 쉬고 에너지를 아껴야 수업 퀄리티도 올라가고 오히려 단골도 더 생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를 위한 마음, ‘디어마더’가 되기까지
혜성 대표가 지금의 시니어 전문가로서 방향을 분명히 잡게 된 계기는 준비된 사업 전략보다 훨씬 개인적인 곳에서 출발했다. 라피네필라테스는 원래도 센터 안에 연령대가 높은 회원들이 많았고, 그 움직임을 보면서 기존 필라테스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혜성 대표는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 안에 관련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도 직접 데이터를 쌓아보려 했다. 공원에서 무료로 수업을 열고, 어머님들과 아버님들의 움직임을 더 가까이에서 살피며 어떤 방식이 실제로 맞는지 확인해 보려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민은 어느 순간 더욱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뀌었다. 어머니가 헬스장에서 운동하다 쓰러져 응급실까지 가는 일을 겪으면서였다. 이 일은 혜성 대표에게 단순한 사고로만 남지 않았다. ‘운동은 해야 하는데, 정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나?’라는 질문이 그때부터 더 무겁게 다가온 것이다. 시니어 회원들을 운동시키기 전에 직접 함께 몸을 써보며 확인한 것도 같은 문제였다. 막상 해보니 목을 가누는 동작이나 옆으로 돌아야 하는 움직임, 앉았다 일어나는 기본 동작에서도 힘들어하는 지점이 분명했다. 일반적인 필라테스 동작이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 더 선명하게 알게 됐다.
이후 혜성 대표의 시선은 ‘시니어도 운동해야 한다’라는 당위보다, ‘시니어에게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라는 쪽으로 옮겨갔다. 같은 연령대로 묶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같은 범주의 고령이더라도 60대와 70대, 그리고 80대는 각각 몸의 상태가 달랐고, 질환과 병력, 두려워하는 움직임도 저마다 달랐다. 혜성 대표가 연령 사이의 빈틈을 고민하게 된 것도 이 지점부터였다.
라피네필라테스의 브랜드로서 디어마더가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다. 어머니를 기준으로 시니어 회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따로 나누고, 기존 라피네필라테스와는 다른 결의 수업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해 한쪽만 택한 것은 아니었다. 기존에 함께해온 20~30대 회원들도 있었고, 혜성 대표는 그들을 자녀 세대라고 보며 함께 가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지금의 디어마더&라피네필라테스는 단순히 시니어 전용 공간이라기보다, 어머니를 위한 운동과 자녀 세대의 신뢰를 함께 묶어낸 공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름 안에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과, 그 시선을 공간으로 바꾸려는 혜성 대표의 판단이 함께 녹아들어 있다.
필라테스 센터를 넘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꿈꾸다
디어마더&라피네필라테스가 다른 필라테스센터와 갈라지는 지점은 프로그램의 종류보다 먼저, 시니어를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 혜성 대표는 초기에 복지관 출강을 나갔을 때 같은 내용을 두고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필라테스’라는 말로는 수강생이 모이지 않았지만, ‘시니어 전문 운동 강사’라는 소개로 접근했을 때는 훨씬 쉽게 문이 열렸다. 공원에서 무료 수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처음에는 몇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입소문이 나며 참여 인원이 늘었고, 그 안에서 혜성 대표는 센터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반응들을 더 많이 확인할 수 있었다. 몸의 상태보다 먼저 겁을 내는 경우가 있었고,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설명이 길게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같은 시니어라도 연령과 생활 방식, 병력과 통증의 정도에 따라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래서 그녀는 시니어 수업을 하나의 방식으로 묶어 설명하는 데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다. 프로그램보다 앞서야 하는 것은 사람의 상태를 읽는 일이었다.
이런 경험과 판단은 결국 공간의 성격까지 바꿔놓았다. 혜성 대표는 디어마더를 일반적인 운동센터처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인터뷰 내내 여러 번 반복했다. 운동이 끝나면 금방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머물고 이야기하고 사람을 만나는 곳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연말에는 작은 파티를 열고, 공연도 하고, 운동 전후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겉으로 보면 사소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시니어들에게는 이런 시간이 운동만큼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는 일만큼이나 바깥으로 나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 생활의 리듬을 바꾼다고 본 셈이다.
혜성 대표는 “제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운동을 가르치는 장소를 넘어, 시니어가 위축되지 않고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겁먹지 않도록 말의 문턱을 낮추고, 몸 상태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고, 수업 외의 시간까지 편하게 머물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배려와 신뢰로 가능성 증명하는 디어마더&라피네필라테스
혜성 대표가 한때는 더 많은 수업, 더 빠른 확장, 더 큰 운영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지금의 운영 방식은 더욱 선명하게 읽힌다. 실패와 번아웃을 지나며 그녀가 다시 확인한 것은 결국 많이 하는 일이 아니라 제대로 하는 일이었다. 몸의 컨디션을 지키고, 한 타임의 수업에 더 집중하고, 회원 한 사람의 상태를 놓치지 않는 것. 얼핏 느려 보일 수 있는 이 방식이 오히려 회원을 오래 남게 했다. 젊은 회원들도 수업의 밀도와 분위기를 이유로 다시 찾아왔고, 시니어 회원들은 이곳을 단순한 운동 장소 이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디어마더&라피네필라테스의 경쟁력은 눈에 잘 보이는 방식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더 많은 프로그램을 내세우거나, 더 큰 규모를 자랑해서 만들어진 힘이 아니다. 회원을 빠르게 늘리는 방식보다 한 사람을 더 오래 남게 하는 방식, 운동을 가르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사람이 이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까지 고민하는 운영이 지금의 디어마더&라피네필라테스를 만들었다. 혜성 대표가 바라는 방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니어를 위한 운동이 일시적인 관심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부모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는 일상적인 선택지가 되는 것. 디어마더&라피네필라테스가 조금 느리더라도 끝까지 지키려는 기준은 바로 이 부분이다.
고령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부모의 노후를 걱정하는 자녀들이 막상 몸을 맡길 곳을 찾으려 하면 선택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운동이 필요하다는 말은 넘치지만, 어떤 설명과 어떤 속도, 어떤 배려가 필요한지까지 세심하게 들여다본 공간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 혜성 대표가 디어마더&라피네필라테스를 통해 보여주는 방향은 분명하다. 시니어 운동을 새로운 시장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실제로 나이 든 몸이 무엇을 불편해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또 그 곁의 자녀 세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함께 살피는 쪽에 더 가깝다. 그렇기에 디어마더&라피네필라테스, 그리고 혜성 대표가 앞으로 보여줄 가능성은 규모보다 방향에 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부모의 시간을 더 오래 건강하게 지키고 싶어 하는 시대의 바람과 분명히 맞닿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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