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노묘정 작가] tvN 드라마 ‘또 오해영’을 본 사람들은 이 장면을 기억할 것 이다. 극 중 에릭이 맡은 박도경은 음향 감독인데,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손에 직접 신발을 끼우고 영상에 맞춰서 발자국 소리를 만드는 장면이 있다. 오늘 소개할 직업은 음향 분야에서도 직접 소리를 만들어내는 ‘폴리 아티스트’다.
폴리 아티스트의 ‘Foley’라는 이름은 초기 영화 산업에서 활약한 Jack Foley라는 사람에서 유래했다. 그는 뉴욕에서 태어나 초기에는 각본가와 연출 보조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일하다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전환되는 시점에 사운드 쪽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1920년대 후반 영화 ‘Show boat’의 음향 작업 중 발자국과 옷의 마찰음, 문 여닫는 소리 등 세밀한 생활 소리를 직접 녹음해서 장면에 맞게 배치하는 이 방식을 고안해 낸 사람이다. 지금으로서는 당연해 보이는 이 접근법은 잭 폴리가 처음 고안해 낸 것이고, 이후 음향 제작에 표준이 되어 오늘날 많은 폴리 아티스트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 장면을 위해 직접 소리를 만드는 것은 이미 녹음이 되어있는 디지털 라이브러리의 사운드를 그대로 쓰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왜냐하면 같은 눈을 밟는 장면이어도 영상마다 눈을 밟는 타이밍, 눈을 밟을 때의 감정이 다 다를 것이고, 그 속도와 타이밍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 싶은 의도가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읽어내고 그 장면에 맞는 음향을 만들어 준다는 것은 감독의 입장에서 자신의 연출을 완성해 준다는 느낌에 가깝다.
영화는 시간성을 다루는 예술이기 때문에 감독은 프레임 단위로 자신의 의도를 설계할 수 있다. 특히나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는 모든 시간을 한 장 한 장 그려서 다루기 때문에 전체적인 영상의 리듬감을 설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타이밍이나 리듬감이 잘 짜인 작품은 영상에서 많은 것들을 화려한 비주얼로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즐겁게 전달 할 수 있다. 관객과 ‘밀당’하는 것에 특히 중요한 것이 타이밍과 리듬감이라고 생각한다.
라이브액션 영화에서 이 역할을 처음 하는 사람은 배우다. 글로 적힌 각본을 보고 강약 조절을 어떻게 할 것인지, 호흡은 어떤 식으로 가져갈 것인지, 그래서 어떤 리듬감으로 이 장면을 이끌어 나갈지를 창작해 내는 것이 배우가 하는 일이다. 이 작업의 시작이 배우였다면 후반작업에서 마무리를 해주는 사람이 폴리 아티스트다. 폴리 아티스트는 단순히 사운드를 만드는 기술직이 아니라 장면의 감정과 리듬을 설계하는 소리의 연기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폴리 아티스트들의 스튜디오는 작은 극장에 가깝다. 바닥도 나무, 대리석 타일, 카펫 등 다양한 상황을 표현할 수 있도록 되어있고, 벽 한 쪽에는 낡은 구두나 금속 조각 또는 채소와 비닐과 같은 수많은 소품이 쌓여 있다.
그리고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 보면서 캐릭터의 감정과 움직임의 무게 그리고 장면의 온도를 읽어낸다. 이후 소리를 설계하는 작업을 가지는데, 어떤 재질의 소품이 필요한지, 그 소품이 어디에 닿아서 소리를 낼 것인지, 소리의 속도와 간격은 어떠한지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어 화면을 보며 실시간으로 타이밍을 맞춰 소리를 낸다. 이 작업의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거의 춤이나 연기를 하는 사람처럼 몸을 써서 퍼포먼스를 보는 것 같다.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보며 최적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재녹음을 할 것이다.
어떤 누군가는 ‘디지털 시대에 폴리 아티스트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라이브러리에 효과음 데이터가 엄청나게 많고, AI가 이 데이터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브러리의 소리는 이미 고정 되어있는 것이고, 폴리는 장면만을 위한 연기와 호흡과 리듬에 맞춰져서 나온 소리다. 특히나 감정이라는 것은 미묘해서 일정하게 데이터화 할 수 없는 것이고, 사람이 해석을 해서 더 창의적으로 나올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슬픔을 질질 끌리는 무게감과 속도로, 또는 불안감을 엇박자로 표현하는 그런 인간의 해석이 작품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단순한 시청을 넘어서 한 사람의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 느끼게 해주려면 많은 감각적인 사람들의 해석과 재창조가 함께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술이 발전해도 여전히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남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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