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분쟁 격이었던 CVC와 브로드 간 저촉심사가 결론에 이르면서 2022년 초 이후 사실상 대기 상태였던 툴젠과 브로드 간 후속 저촉심사도 약 4년 만에 재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크리스퍼 카스9 특허분쟁에서 결승 격인 툴젠(199800)과 브로드 간 저촉심사가 본격화되면 유전자 가위 치료제 특허 수익을 둘러싼 툴젠·브로드·CVC 간 협의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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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C 재심도 패소…툴젠vs브로드 구도 부상
PTAB는 지난 26일(현지시간) CVC와 브로드 간 저촉심사에서 브로드 측이 선발명자라고 판단했다. 앞서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이 기존 결정을 파기하고 재심리를 명령했지만 재심에서도 동일한 결론이 유지된 것이다.
생물학적 가위로 불리는 크리스퍼 카스9은 유전정보가 담긴 디옥시리보핵산(DNA)을 정밀하게 절단·편집하는 기술로 유전적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버텍스 파마슈티컬의 카스거비(Casgevy)에 관련 기술이 사용됐고 미국 국립보건원(NIH) 임상시험 데이터 기준 크리스퍼 카스9 기반 신약후보물질은 수십 건에 달한다. 향후 관련 신약이 잇따라 상용화될 경우, 특허 분쟁에서 우위를 점한 측은 막대한 로열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PTAB 판단의 핵심은 크리스퍼 카스9의 단순한 발명이 아니라 진핵세포에서 실제 작동하는 크리스퍼 카스9 구현에 있다. 크리스퍼 카스9 치료제 개발은 진핵세포, 즉 DNA가 담긴 핵이 존재하는 세포에서 작동되는지 여부가 핵심인데 이 기술은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핵막 안에 존재하는 DNA로 접근하는 것이 어렵고 면역 반응과 오프타깃 리스크(유전자가위가 목표가 아닌 엉뚱한 유전자 부위를 잘라내는 위험)를 최소화하면서도 유전자가위의 효율은 높여야 한다. 진핵세포에서 작동하는 크리스퍼 카스9 기술의 구현 여부가 향후 수익화의 핵심이 되는 이유다.
PTAB은 CVC가 브로드보다 앞선 시점에 진핵세포에서의 크리스퍼 카스9 구현 기술을 완성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봤다. 이번 저촉심사 대상이 된 CVC 측 청구항 상당수도 최종 거절됐다. 이에 따라 향후 진핵세포 관련 저촉심사에서 툴젠은 브로드를 중심으로 특허 다툼을 진행하게 된다.
물론 이번 판결 이후에도 CVC 측의 추가 불복 가능성은 남아있다. CVC가 PTAB 결정에 대해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에 재차 항소할 수 있고 이후 전원합의체 재심이나 미국 연방대법원 상고 절차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다만 이미 한 차례 항소를 거쳐 환송된 뒤 이번에 재심에서 동일한 결론이 나온 만큼 불복하더라도 쟁점이 법리 판단으로 좁아져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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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젠 저촉심사 ‘대기 해제’…선출원자로 본격전
이번 판결로 중단됐던 툴젠의 저촉심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CVC-브로드 간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툴젠이 포함된 후속 절차인 프라이어리티 페이즈가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툴젠측 절차 진행 요청에 따라 지난 1월 PTAB은 CVC와 브로드 간 저촉심사 판단이 내려지는 대로 해당 승자와 툴젠 간 저촉심사를 즉시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CVC의 추가 불복 여부와 관계없이 절차를 속행하겠다는 의미로 이르면 상반기 중 툴젠과 브로드 간 저촉심사가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툴젠 관계자는 “CVC와 브로드 간 저촉심사가 브로드의 승리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이제까지 미뤄졌던 툴젠의 저촉심사 2단계(프라이어리티 페이즈)가 이른 시일 내 개시될 것”이라며 “그간 불확실했던 상황들이 하나씩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툴젠은 해당 저촉심사에서 선출원자(Senior Party)로 지정됐다. 통상 더 이른 출원일을 가진 당사자를 뜻하는 것으로 입증 책임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선출원자라는 점만으로 승리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미국 특허법 전환기의 산물이다. 미국은 2013년 3월 이후 특허법 체계를 선출원주의로 전환했지만 이전 출원 건은 여전히 선발명주의가 적용된다.
크리스퍼 카스9 특허 분쟁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툴젠의 특허 출원일은 2012년 10월, 브로드연구소는 2012년 12월로 파악된다. 단순 출원 순서만 보면 툴젠이 앞서지만 저촉심사에서는 출원시점이 절대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대신 실제 발명 완성과 구현 수준이 핵심 쟁점이다. 이번 CVC와 브로드 간 저촉심사에서도 진핵세포에서 크리스퍼 카스9이 실제 작동하는 구현을 중심 기준으로 삼았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특허 구도도 보다 선명해졌다. CVC·브로드·툴젠 삼자 경쟁구도에서 향후 저촉심사는 브로드와 툴젠 양자 대결 구도로 압축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구도 변화가 툴젠에는 기회와 부담을 동시에 안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CVC와 브로드 간 특허주도권 경쟁에서 브로드가 승기를 잡는 것이 툴젠에 유리하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툴젠 역시 브로드가 CVC를 이겼을 때의 상황에 더 많이 대비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국 내 자국 중심주의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은 변수로 거론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보호무역과 자국 산업 우선 정책이 재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CVC는 미국 UC버클리대학과 유럽 연구진이 결합된 다국적 컨소시엄이고 브로드는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하버드대학 등 미국 연구기관을 기반으로 한 진영으로 알려졌다.
그동안에는 저촉심사가 다국적 연합과 미국 중심 연구기관 간 경쟁 구도로 전개돼 왔다. 이번에 미국 중심 연구기관이 1승을 거두면서 향후 툴젠과의 저촉심사에서도 보이지 않는 기울기가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유종상 툴젠 대표이사는 “미국 내 자국중심주의가 특허분쟁에 미칠 영향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며 “툴젠 역시 이런 부분에서 실수하는 부분이 없도록 브로드와의 분쟁에 대비한 미국내 대리인 선임 등 철저한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이어 “프라이어리티 페이즈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특허의 귀속을 좌우하는 결정적 단계다. 우선권 판단 단계로 넘어가면 각 당사자가 부담해야 할 소송 비용과 리스크가 급격히 커져 이 시점부터는 장기전보다 합의를 택하려는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CVC·브로드·툴젠 삼자합의가 본격화 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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