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추락, 마러라고 보선 참패, 800만명의 거리 시위 등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의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미국 민주당 세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권력 지각변동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특히 아직까지 공화당 세력이 집권 중인만큼 직접적인 스킨십 보단 민주당 성향의 싱크탱크와 시민단체와의 접점을 늘리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민주당 세력이 집권할 경우 정책 기조 확립과 입법 방향 설정 등을 주도하는 브레인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친 민주당 성향의 단체와 접점을 늘려놓는 것은 향후 미국 민주당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포스트 트럼프' 대비 나선 국제사회…美 민주당 권력의 인재 요람 '브루킹스 연구소' 조명
워싱턴 소식통,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반대 시위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 근거다. 28일(현지시간) 미국 각 주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에 반발한 대규모 시위, 이른바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해 6월과 10월에 이어 세 번째로 이번 시위에는 역대 최대 규모 인원인 약 800만명 가량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얼마 전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에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36%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낮은 지지율은 실제 선거 결과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입증됐다. 지난 24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하원 87선거구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해당 지역은 2024년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에 비해 11%p 가량 앞섰던 공화당 강세 지역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자택인 마러라고 리조트가 위치한 곳이다. 선거 결과 발표 이후 미국 정가에선 단순한 지역구 상실 이상의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트럼프 대통령이 SNS를 통해 전폭적인 지지를 호소하며 투표를 독려했음에도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조기 레임덕을 시사하는 결정적 사건이라는 해석도 적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조직적 저항으로 분출되고 공화당 텃밭 민심마저 등을 돌리자 국제사회의 시선은 미국 민주당 세력, 그 중에서도 정치적 기반 역할을 하는 세력을 향하고 있다. 아직까지 공화당 권력이 건재한 상황에서 당장 민주당과 접점을 늘려나가기 보단 외부 세력과의 접점을 늘리는 게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는 판단의 결과로 해석된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곳은 미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다. 그동안 이곳서 생산된 보고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과 사회 안전망 확충, 다자주의 외교 등 민주당의 핵심 가치에 대한 이론적 근거로 활용돼 왔다.
지금도 브루킹스 연구소에는 역대 민주당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이 연구원으로 대거 포진해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노동 경제학의 권위자 세실리아 라우스가 회장을 맡고 있다. 이사회 의장에는 오바마 재단 부의장을 역임 중인 글렌 허친스가 올라 있다. 허친스 의장은 그의 아내와 함께 허친스 패밀리 재단을 설립했는데 이 재단은 오바마 대통령 센터 건설에도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레너드 셰퍼 이사회 부의장 역시 대표적인 민주당계 인사다. 그는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의료금융관리국(현 CMS) 국장을 지내며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 프로그램을 총괄한 이력을 지녔다.
연구소 내 연구원들도 과거 민주당 정부와 인연이 깊은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일레인 카마르크 선임연구원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부통령실 수석보좌관과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위원을 지낸 인물이다. 선거 전략과 정당 개혁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윌리엄 갤스턴 선임연구원 역시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정책 보좌관을 지냈다. 에즈라 디온 주니어 선임연구원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이자 진보 성향 평론가로 익히 유명한 인물이다. 브루킹스 연구소 내에는 한국 관련 정책 담론을 담당하는 '한국 석좌' 자리도 마련돼 있는데 지금은 앤드루 여 미국가톨릭대 교수가 맡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한국 석좌' 자리는 2013년 SK그룹과 외교부 산하 공공외교 전문 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후원으로 신설됐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일찌감치 국·내외 유명 기업들과도 긴밀한 인연을 맺어왔다. 지난해 공개된 '2024년 브루킹스 연구소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그 해 구글과 아마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기업을 비롯해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 등이 후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국내 단체인 한국국제교류재단(KF)도 그 해 25만달러에서 49만9999달러사이의 후원자 명단에, 국무총리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10만달러에서 24만9999달러를 기부한 후원자 명단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외연 확장을 담당하는 국제자문위원회(IAC) 위원회 명단에도 세계 각국의 유명 기업과 인물들이 대거 이름을 올리고 있다. IAC는 전 세계의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리더들이 모여 글로벌 현안을 논의하는 기구다. ▲무케시 암바니 인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과 라훌 바자즈 인도 상의연합회장 ▲코다이라 노부요리 전 도요타자동차 부사장 ▲후탐 올리얀 사우디 올리얀 그룹 미국 법인 CEO ▲아프리카 통신·금융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하킴 벨로-오사지 에티살랏 나이지리아 회장 ▲존 엘칸 페라리 회장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마르쿠스 발렌베리 등이 대표적이다. 또 한국에선 SK그룹이 기업 자격으로,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각각 위원회 명단에 등재돼 있다.
CAP, EPI, 어반인스티튜드, 뉴아메리카…미(美) 민주당 세력의 막후 권력 '4대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 외에도 민주당 권력과 밀접한 인연을 맺은 또 다른 단체들도 조명을 받고 있다. 민주당의 정책 방향과 궤를 같이하며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미국진보센터(CAP)도 그 중 하나다. 클린턴 행정부 비서실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가 설립한 CAP는 오바마 행정부, 바이든 행정부 등의 정책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특히 기후 변화 대응과 의료 보험 확대, 이민 개혁 등 민주당의 핵심 의제들을 대중적인 캠페인과 결합해 입법화까지 이끌어 낸 부분이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현재 CAP는 패트릭 가스파드 회장이 이끌고 있다. 가스파드 회장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정치국장과 주남아공 대사를 지낸 민주당 내 거물급 인사다. 과거 당의 전략과 정책 방향을 조율했던 핵심 인물로로 평가된다. CAP는 민주당 집권 시 연구원들을 행정부 요직에 대거 진출시켜 민주당 내 인재 요람으로도 불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백악관 인사국장을 지낸 캐서린 러셀이 꼽힌다. 그는 CAP 임원 출신으로 바이든 정부 출범 초기 주요 공직 인선을 총괄했다.
진보 성향의 경제 담론을 주도하는 경제정책연구소(EPI) 역시 대표적인 친(親) 민주당 단체로 지목된다. 미국 최대 노동조합 연맹인 산별회의(AFL-CIO)의 후원 등 노동계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경제 노선을 진보적으로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과거 바이든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마티 월시는 취임 전부터 EPI의 연구 결과를 정책 근거로 적극 활용했다. 당시 그는 EPI가 주창해 온 '중산층 재건을 위한 노동권 강화' 논리를 정부의 핵심 경제 기조인 '바이드노믹스'의 중심축으로 삼았다.
현재 EPI를 이끄는 수장은 하이디 쉬어홀츠(Heidi Shierholz) 회장이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노동부 수석 경제자문위원을 지낸 인물로 노동 시장 분석과 임금 정책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일례로 과거 바이든 정부의 '15달러 최저임금 인상' 추진 당시 쉬어홀츠 회장은 정책 제언을 통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한편, 청문회에 출석해 노동자 중심의 경제 회복 시나리오를 강조하기도 했다.
'어반 인스티튜트(Urban Institute)' 역시 민주당 권력과 긴밀한 관계에 놓인 단체로 지목되고 있다. 이곳은 미국 내 최고 수준의 데이터 분석 능력을 보유한 연구소로 저소득층 주거, 아동 복지, 건강보험 시스템 개편 등 민생과 직결된 사회안전망 설계를 다루고 있다. 특히 어반 인스티튜트의 연구 결과는 복지 예산의 흐름과 직결되기 때문에 정책 변화에 민감한 대형 제약사나 건설사들이 가장 주목하는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도 '공급 확대를 통한 주거비 부담 완화' 정책 수립 과정에서 '어반 인스티튜트'의 정밀한 데이터 분석이 핵심적인 근거 자료로 활용된 바 있다. 연구소를 이끄는 사라 로젠 워텔(Sarah Rosen Wartell) 회장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정책 부보좌관을 지냈다.
기술 혁신과 민주주의의 결합을 연구하는 '뉴 아메리카(New America)'도 민주당 계열 싱크탱크로 분류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 교육 개혁 등 현대적 과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며 민주당 내 혁신파 의원들에게 정책적 영감을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이곳 수장인 앤 마리 슬로터(Anne-Marie Slaughter) 회장은 오바마 행정부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을 지낸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다. 뉴 아메리카는 기술 기업에 대한 규제와 혁신 지원 사이의 균형점을 설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구글의 전 회장 에릭 슈미트가 이사회 임원을 역임하는 등 실리콘밸리의 관점을 민주당 정책에 투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과거 바이든 행정부의 인공지능(AI) 윤리 가이드라인과 디지털 격차 해소 정책 수립 과정에서 뉴 아메리카의 '책임 있는 기술 혁신' 프레임워크가 중요하게 반영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민주당계 단체들과의 접점을 확보하는 것이 차기 권력 지형 변화에 대비하는 중요한 선결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민주당계 싱크탱크들은 차기 행정부의 인재 저장고 역할을 겸하기 때문에 이곳과의 네트워크는 향후 입법 및 규제 환경 변화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자산이 된다"며 "SK그룹과 같이 단순히 자금을 대는 차원을 넘어 정책 담론 형성에 기여하는 플레이어로서의 위상을 굳히는 것은 글로벌 경영의 핵심 역량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주당 주변과의 네트워크 구축은 미국 내 민주당의 영향력이 확대될수록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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