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올해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까지, 불과 4년 사이 2차례의 대형 분쟁이 이어지며 항공업계는 다시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미국의 주요 3대 항공사는 개전 3주 만에 시가총액의 12~24%가 감소했고, 국내에서도 일부 저비용항공사(LCC)들이 국제선 감편에 나서는 등 충격이 현실이 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이 발생할 때마다 항공업계는 같은 방식으로 흔들리고 대응을 반복해 왔고, 이는 산업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항공업계의 지정학적 리스크 취약성은 과거 사례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1990년 걸프전 당시 유가 급등과 경기 침체가 겹치며 일부 미국 항공사들이 파산 보호에 들어갔고, 2003년 이라크전 때는 사스(SARS) 확산까지 더해지며 항공 수요가 급감했다. 특히 러-우 전쟁에 따라 러시아 영공이 폐쇄되면서 기존 항공 노선을 사용할 수 없게 됐고, 많은 항공사가 운항 경로를 전면 재조정해야 했다.
◇ 우회 반복…좁아진 항공노선의 한계
이번 이란 전쟁의 충격이 특히 크게 나타나는 배경에는 항공 네트워크의 구조적 한계가 있다. 러-우 전쟁 이후 러시아 영공이 장기간 폐쇄되면서 아시아-유럽 항공편은 이미 우회 운항을 이어가고 있고, 여기에 이란과 이라크 등 중동 주요 공역까지 불안정해지면서 항공기들은 북쪽(중앙아시아) 또는 남쪽(아라비아 반도)으로 돌아가는 제한된 경로에 의존하게 됐다.
이러한 우회 운항으로 비행시간과 연료 사용량이 동시에 늘었고, 일부 장거리 노선에서는 수시간 단위의 비행시간 증가가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이 상황이 일시적인 변수가 아니라 구조적인 결과라는 점이다.
특히 항공 노선은 오랫동안 ‘최단거리·최저비용’을 기준으로 설계돼 왔고, 러시아와 중동을 지나는 경로에 집중돼 있었다. 이 때문에 특정 지역이 막히면 전체 노선이 동시에 영향을 받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영공이 국가 주권에 속하기 때문에 전쟁이 발생하면 항공사는 하루아침에 핵심 항로를 잃는다며, 대체 항로를 확보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고 설명하고 있다.
◇ 미리 대비해도 못 막는다…항공유 급등의 한계
연료비를 줄이기 위한 대응도 이번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항공사들은 보통 원유 가격을 기준으로 비용 상승에 대비하지만, 실제 사용하는 것은 정제된 항공유다. 이번 이란 전쟁 이후 항공유 가격은 배럴당 150~200달러 수준까지 오르며 일부 시장에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반면 원유 가격 상승폭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다.
이는 공급 차질 우려와 낮은 재고, 정제 과정에서의 비용 증가 등이 겹치면서 항공유 가격이 원유보다 더 크게 오른 결과로 분석된다. 결국 원유 기준으로 대비해도 항공유 급등은 막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 마진 3~4% 산업…‘퍼펙트 스톰’에 취약
항공산업은 원래부터 위기에 약한 산업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항공산업 순이익률은 약 3.9%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는 IATA가 전쟁 전 전망한 전망치로, 이란 전쟁 이후 하향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연료비가 오르는 순간 수익이 빠르게 줄어든다. 여기에 전쟁이 나면 여행 수요까지 함께 줄어 비용은 늘고 수요는 줄어드는 상황이 동시에 발생하게 된다. 전쟁 이후 항공사들의 실적 전망이 일제히 낮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을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라고 부른다.
국내 항공사들은 여기에 환율 부담까지 더해진다. 최근 원화는 달러당 1500원을 넘어서며 약세를 보였고, 항공유를 달러로 결제하는 구조에서는 환율 상승이 곧바로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특히 연료비 대비 여력이 부족한 LCC는 이런 충격에 더 취약하다. 실제로 에어프레미아와 이스타항공 등 국내 LCC들은 국제선 일부 노선에서 수십편 규모의 운항을 중단하거나 감편에 나섰다.
정부가 지난 26일 중동 전쟁 대응으로 유류세를 최대 25%까지 인하했지만, 휘발유와 경유를 중심으로 시행해 항공업계는 이를 직접 체감하기 어려운 구조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형 항공사는 자본력과 노선 분산을 통해 충격을 줄일 수 있지만, LCC는 특정 노선 의존도가 높아 타격이 직접적으로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 바뀌지 않는 구조 리스크
전문가들은 연료비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항공유 가격을 직접 관리하거나, 우회 항로를 미리 확보하고, 수익 구조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항공유 가격을 미리 대비하는 시장은 규모가 작고, 우회 항로를 평소에 유지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연료를 덜 쓰는 최신 항공기를 도입하는 것도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하다.
결국 위기에 대비하려면 비용이 늘어나고, 비용이 늘어나면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위기에 강해지려 할수록 평소에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구조가 항공업의 근본적인 한계라고 지적한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같은 충격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하늘은 언제나 지상의 전쟁과 정치에 영향을 받아왔고, 그 구조가 유지되는 한 항공업계의 위기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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