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중동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200조원대 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전력이 과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처럼 요금 인상분을 떠안는 ‘희생 구조’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중동 리스크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한전의 전기요금 조정 지연에 나설 경우 한전의 재무 부담을 키우고 나아가 채권시장과 금융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와 LNG 가격이 다시 들썩이고 있어 정부 입장에서는 물가 상승 압박을 줄이기 위해 다시 한전의 전기 요금 인상을 지연시킬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한전이 200조원대 부채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2022년 러우 전쟁 당시와 같은 역마진이 재발할 경우 한전채 발행 한도 초과와 조달금리 급등으로 이어져 한전의 재무 악화가 심화되고 나아가 금융시장 전반에 미치는 충격이 과거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우 전쟁 당시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전력 도매가격(SMP)은 ㎾h당 196.7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을 제한하며 평균 판매단가를 120.5원 수준에 묶었다.
이로 인해 전기를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가 이어졌고 결국 한전은 2022년 한 해에만 32조6552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요금 억제로 인한 누적 적자 여파로 한전 부채가 206조원까지 늘고 하루 이자만 119억원에 달하는 등 장기적으로 재무 부담과 전력시장 왜곡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이란전쟁으로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전력 연료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하고 있어 이같은 우려는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전력용 연료탄 가격은 t당 135.3달러로 전월 대비 33.8%, 전년 대비 38% 상승했으며 동북아 LNG 가격(JKM) 역시 한 달 만에 두 배 이상 뛰며 MMBtu당 21.7달러까지 올라섰다. 국제 에너지 시장 불안이 가격 전반을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연료비 상승분이 전기요금에 반영되기까지 약 8~9개월의 시차가 존재하는 만큼 3월 이후 급등한 비용 부담은 이르면 4분기 요금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국가 간 LNG 물량 확보 경쟁까지 겹치면서 여름철은 물론 겨울철까지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전의 재무 부담을 줄이면서도 소비자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요금 체계의 정상화와 수요 관리 강화,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병행하는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연료비 연동제가 정치적 판단에 좌우되지 않고 일관되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공급 확대 중심 대응에서 벗어나 전력 수요 관리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기 절감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에너지 캐시백 확대와 함께 여름철 등 수요 집중 시기에는 실시간·선택형 요금제를 도입해 피크를 분산할 필요가 있고 주택용 전력에도 계시별 요금제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전기요금을 일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방식 대신 원가 수준으로 정상화하되 취약계층에는 에너지 바우처 지원을 확대해 실질적인 보호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정부 내부에서는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두고 아직 판단을 유보하는 분위기다. 정부 관계자는 “중동발 에너지 가격 변동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재로서는 방향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러우 전쟁 당시와 달리 현재는 전기요금이 원가 대비 일정 수준 여력을 확보한 상태라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역마진 우려는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현재 한전의 전기요금은 인상분을 일정 부분 흡수가 가능한 구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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