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전세윤 작가] 미술관은 참 따뜻하다. 미술관은 참 친절하다. 빈백까지 놓아준다. 미술관은 참 자기 좋다. 자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번 칼럼에서는 잘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울 수는 없으니 졸리지 않게 노력해보도록 하겠다.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길 바라며. ‘디깅 #9’, ‘디깅 #10’, ‘디깅 #16’ 등과 겹치는 내용이라고 봐도 무관하다. 실험 영화 그리고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있는 ‘파운드 푸티지’에 대해 다뤄볼 것이다.
푸티지라는 단어를 영화나 필름 카메라 애호가라면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푸티지는 필름 길이 단위 이름이자 이에 파생된 영화 용어로. 어형은 길이 단위인 피트(Feet)의 단수형인 Foot에 파생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age가 붙은 형태다. 어형이 이렇듯이 본래 필름의 길이 및 그렇게 나눈 필름 조각을 의미하였으나 이후 영상업계에서 여러 가지 파생된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오늘은 찾을 것이다. 필름 조각들을.
found footage 파운드 푸티지. 기존에 존재하던 영상 자료(뉴스릴, 영화, 광고, 다큐, 홈비디오 등)를 재편집하거나 재맥락화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발견된 화면’이라는 뜻의 ‘파운드 푸티지’는 동시대미술계에선 (본래의 뜻에서 한걸음 나아가) 누군가가 찍어놓은 필름을 차용해 이를 자기 식으로 재편집하는 기법을 지칭한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몽타주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작가적 시각과 미감으로 이를 비틀거나 엉뚱하게 조합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본격적인 ‘파운드 푸티지 필름’의 원조로 꼽히는 브루스 코너(Bruce Conner)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영상 이미지들을 병치시켜 중층적인 의미를 제시한다. 코너는 영화, 뉴스, 광고에서 추출한 전혀 상관없는 영상들을 무작위적으로 편집해 ‘시각의 파편화와 낯섦의 효과’를 보여준다. 이 같은 반(反)서사를 통해 자신의 작업의 메타 미디어적 속성을 드러낸 것이다. 상호 모순된 공간들의 다층적 구조는 끊임없이 열려지고, 기이하면서도 복합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 관람자로 하여금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차용은 수많은 작품 사이에서 관객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나게 해주는 친대중적 몰입도를 획득한다. 우리는 영화를 기반으로 완성된 비디오(미디어) 아트의 창작물을 대면하며 각자의 기억과 감각을 안고 완성된 이야기의 성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장 쉽게 표현해 자신이 감상한 영화가 미술관 한 켠에서 영사가 되고 있다. 우리는 편견과 기대를 품고 호기심 어린 발걸음을 떼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 전반에 세포처럼 내재화 되어있는 영화라는 이름의 기억이. 비디오(미디어)아트 작가들의 실험적인 표현과 주제 전달의 좋은 미끼가 되어 우리 앞에 제시되는 것이라 보인다.
여기서 대척점의 매력 또한 발생한다. 확신과 기억을 안고 다가선 관객에게 작가들은 철저하게 주관적이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파괴의 미학으로서 영화에게 가학을 행한다.
관객의 망막에 닿는 이미지는 이미 자신이 알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기에 혼란이 초래된다.
파괴의 미학인 ‘파운드 푸티지’ 기반 작품들이 선사하는 세계는 이전에 알고 있던 세계관을 초토화시킨다. 이 두 가지 특징을 동시적으로 활용하여, ‘파운드 푸티지’ 기반 비디오(미디어)아트는 친대중적 몰입도와 함께 동시발생적으로. 이는 양가적 감정으로서의 역기시감을 한데 섞어 환각적 배경을 구축하며 친숙한 초대와 붕괴적 선언을 이용해 강력한 파급력을 발생시킨다.
‘파운드 푸티지 필름‘들이 어떤 파운드 푸티지를 근거로 했는가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파운드 푸티지 필름’ 방식자체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다.
“조작을 통해 어떤 서사적 변화가 발생하였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조작되었는가”에 집중하던 ‘파운드 푸티지 필름’ 작가들의 작업방식은 그대로 ’파운드 푸티지‘ 기반 영상예술 창작 작가들에게도 이어졌고,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매체인 영화를 해체하며 그가 지닌 조작의 힘과 리얼리티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파운드 푸티지의 세부 유형]
1. 아카이브 재구성형: 역사적 이미지의 비판적 재구성으로 과거 기록물을 재배열하여 새로운 해석 생성. (ex.하룬 파로키, 세계 이미지와 전쟁의 비명 (Harun Farocki), Images Of The World And The Inscription Of War,1988)
2. 감정의 재배치형: 개인적 감정과 철학적 사유 전달을 목표로 주관적 내레이션과 감정 흐름 중심의 배치. (ex.리투아니아 여행의 추억, 요나스 메카스 (Jonas Mekas), Reminiscences of a Journey to Lithuania, 1972)
3. 파편적 해체형: 기성 서사나 체계를 해체하며 짧은 클립과 조각화 반복 사용의 특징을 보여준다. (ex.크레이그 볼드윈, (Craig Baldwin), Tribulation 99: Alien Anomalies Under America,1992)
4. 필름 물질 실험형: 영상의 물성을 드러내며 필름 손상, 부식, 빛번짐, 노이즈 강조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ex.빌 모리슨, 데카시아 (Bill Morrison, Decasia, 2002))
5. 메타 시네마형: 영화 매체에 대한 성찰. (ex. 장 뤽 고다르, 영화의 역사(들) (Jean-Luc Godard–Histoire(s) du cinema Jean-Luc Godard, 1988))
[시대적 배경]
전후 사회의 충격과 불신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과 핵, 냉전은 미디어 이미지에 대한 회의와 서사의 해체 욕구를 촉진한다. 기존의 '진실을 전달하는 영화'라는 믿음이 흔들리며, 이미 존재하는 영상의 조작과 해체가 하나의 전략으로 등장한다.
대중매체의 팽창
1960년대 이후 텔레비전과 광고가 범람하며, 시청각 이미지의 소비 자동성이 강화된다. (아서 리프셋은 광고, 뉴스, 교육 영상 등을 빠르게 편집하여 이미지 소비의 기계성을 비판한다.)
[정치적 요인]
선전 영상과 국가 권력의 시각 체계
파운드 푸티지는 종종 국가, 자본, 권력이 생산한 시각자료를 전유하여 그것의 이데올로기 전복 (ex. 하룬 파로키는 군사 산업, 감시 장치, 노동현장을 담은 푸티지를 통해 기계적 시선과 권력의 결탁을 해부했다.)
검열과 저항의 미학
검열 체제 하에서 직접 촬영이 어렵던 작가들은 기존 영상을 조합해 우회적으로 메시지 전달.
[미학적 요인]
레디메이드와 아방가르드 전통 (‘디깅 #13’,‘디깅 #15’,‘디깅 #16’)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처럼, ‘발견된 것’을 새로운 맥락에 놓아 예술로 전환한다.파운드 푸티지는 ‘창작자=발명가’라는 신화를 해체하고, 편집자·비평가로서의 예술가를 강조한다.
시간성과 물질성의 재발견 (‘디깅 #10’,‘디깅 #11’)
빌 모리슨처럼 부식된 필름의 물질적 흔적을 그대로 노출하여 기억과 소멸을 미학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디지털 이미지의 완전성과 반대로, 아날로그 필름의 퇴락과 유한성에 주목하는 전략이다.
Found footage 파운드 푸티지-역사적 맥락
파운드 푸티지의 역사적 전개는 단순한 영상 재활용의 진화가 아니라 이미지의 존재 방식, 기술 환경, 사회적 의식, 미학적 전략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드러낸다. 각 시대는 무엇을 어떻게 왜 다시 사용하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태도와 효과를 보여준다.
-1920~30 다다, 몽타주 실험
-1950~60 구조주의 영화, 비평적 해체
-1980~90 텔레비전 아카이브 비판, 문화연성 분석
-2000 이후 디지털 리믹스, 유튜브 문화, 인공지능 활용
파운드 푸티지의 역사는 곧 우리가 ‘이미지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가’에 대한 역사로. 시대가 바뀔수록 이미지의 물성도, 권력도, 진실도 달라졌으며, 파운드 푸티지는 항상 그 ‘다름’을 폭로하고, 되묻고, 재배치하려는 실천이었다.
종종 ‘습득영상’으로 번역되는 파운드 푸티지는 감독이 직접 촬영한 이미지가 아니라 기존에 다양한 출처로 존재하면서 감독에 의해 발견된 이미지를 말한다. 즉 이때의 파운드 푸티지는 벼룩시장 등에서 발견된 필름 릴이나 홈 비디오처럼 사적이거나 비공식적으로 존재한 이미지들뿐 아니라 영화사, 방송국, 도서관, 필름 아카이브 등의 공적 기관에서 제작, 수집, 보존된 이미지를 포함한다. 좀 더 세밀히 구분하자면 전자의 푸티지만을 파운드 푸티지로 부르고 아카이브 푸티지(archive footage)로서의 후자의 이미지와 구분하는 입장도 있다.
영화제작 방식으로서 파운드 푸티지는 이처럼 발견된 이미지들의 수집과 조사, 재편집을 통해 이들을 한 편의 새로운 영화로 다시 만드는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에서의 실천들을 말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원래의 이미지들은 그것들이 속한 본래의 원천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다른 이미지들과 연결되거나 그 형태가 변형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감독은 원래의 이미지들로부터 원천이 되는 작품이나 미디어 인공물 속에서의 의미 대신 새로운 의미를 끌어내거나, 그 이미지들에 내재된(그러나 원천이 되는 작품이나 미디어 인공물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의미와 기법을 노출한다.
우리나라 작가의 예시로는 누가 있을까? 백남준이다. ‘실험영화의 대가’하면 백남준 아니겠는가. 아까 언급했던 미국의 영화감독 브루스 코너(Bruce Conner)와 함께 이야기하며 마무리를 지어볼까 한다. 나는 영화작업이 메인이 아니어서 자명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기고할 수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브루스 코너는 1976년 크로스로드(Crossroads)를 발표한다. 37분 러닝 타임의 35mm 실험영화인 이 작품은 미군이 비키니섬에서 수행한 핵실험을 담은 영상화면(footage)들을 이어 붙인 것이다. 이 작품은 700대 이상의 카메라와 500명 이상의 카메라 감독을 활용하여 미군이 촬영했던 기록 영상물들로 이루어졌다. 코너는 이 영상물들을 수집하고 재편집하여 원경의 핵실험 장면을 콜라주 방식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타인의 영상물들을 재구성하여 또 다른 문맥의 작업을 창조하지만 백남준과는 다르게 매우 느린 시간성의 화면변환과 함께 내러티브를 보다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크로스로드(Crossroads)는 영화계에서 ‘파운드 푸티지’ 기법 혹은 장르를 이야기할 때 선도적인 예로 불리는 작품이다.
재정의를 한번 하며 리마인드하자면 파운드 푸티지는 ‘발견된 화면’이라는 뜻으로 마치 실재하는 기록 영상을 누군가 발견해 사실을 가장하며 대중에게 공개하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다. 필름이나 비디오 등 영상 예술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은 ‘파운드 푸티지’는
‘모큐멘터리’의 일종으로 타인에 의해 촬영된 미편집의 영상물들을 발견, 재구성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기존의 영상들을 콜라주하여 만든 모든 영상물을 일컫기도 한다. |
즉 동시대 영화계에서 하나의 주요 장르로 자리 잡은 ‘파운드 푸티지’는 자신이 직접 촬영하지 않은 영상물들을 수집하여 콜라주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영상작품들을 모두 포용하여 지칭하고 있다. 사실 백남준의 예술 활동이 정상에 오른 80년대의 위성 비디오 시리즈 ‘굿모닝 미스터 오웰 Good Morning Mr. Orwell’, 1984, ‘바이바이 키플링 Bye Bye Kipling’, 1986, ‘세계와 손잡고 Hand in hand’, 988 들은 백남준의 비디오 콜라주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이 시리즈 작업들은 전 세계의 수많은 예술가들과 함께한 한 작품으로 백남준이 직접 촬영한 영상은 거의 없다. 모든 영상은 수백 대의 다른 카메라들로부터 채집된 영상들이다. 영화감독이었던 브루스 코너(Bruce Conner)나 더글라스 고든(Douglas Gordon)이 만든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작업들은 영화적 문맥 내에서 수직, 선형적 내러티브와 직접적인 주제 전달에 치중했다면 백남준의 비디오 콜라주는 수평, 방사적 플롯과 간접적 주제 전달을 더 중시 여겼다.
그래도 이 정도 알고 있다면 만약 미술관에서 실험적 다큐멘터리 영상 작업. 파운드 푸티지 작업을 마주했을 때, 덜 졸리게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백남준은 꽤 유쾌한 사람이다. 내 모교에는 백남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작품이 설치되던 날 백남준 작가가 마이크를 쥐었을 때, 마이크는 고장났고 백남준 작가의 바지가 내려갔었다는 전설(?)이 과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알고 보면 담긴 이야기가 꽤 유쾌할지도 모르는데 러닝타임이 길다고 다큐멘터리라고 영상 작업을 놓치는 사태들이 너무 안타까워 오늘 파운드 푸티지를 다루며 기고하게 되었다. 미술관에서 잠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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