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F/W BALENCIAGA COLLECTION
빛이 없으면 형태도 없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이 사실을 ‘클레르 옵스퀴르(ClairObscur)’라 불렀다. 어둠 속에 빛을 떨어뜨려 인물의 윤곽과 감정을 동시에 드러내는 기법.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가 발렌시아가 두 번째 시즌에 붙인 이름이 바로 이것이다. 회화의 명암법을 옷 위에 옮기겠다는 선언이자, HBO 드라마 <유포리아>의 제작자 샘 레빈슨과 손잡고 구현한 하나의 시각적 세계관이었다.
81개 룩이 가느다란 빛줄기 아래를 지나는 동안, 컬렉션의 중심축은 명확했다. 얼굴을 감싸는 칼라다. 초상화 속 인물의 얼굴을 액자처럼 돋보이게 하는 포트레이트 칼라, 나팔꽃처럼 솟아오르는 피코트의 조각적 칼라, 어깨에서 떨어져 나온 듯 세워진 오피서 코트의 칼라와 라펠. 피치올리에게 칼라는 곧 액자다. 보도자료에 “칼라, 후드, 데콜테는 마치 초상화 속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프레임”이라 쓴 것처럼, 옷은 모델의 얼굴과 몸을 하나의 인물화로 완성하는 도구가 되었다.
오프닝은 블랙으로 단단하게 시작되었다. 등 뒤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레더 봄버 재킷이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코쿤 실루엣을 소환했고, 드레이프 저지 드레스는 최소한의 봉제선만으로 몸을 감싸며 구축적 우아함을 증명했다. J.M. 웨스턴과 협업한 슈즈는 발을 비틀어 감싸듯 구조적으로 제작되었고, 발과 신발 사이에 미세한 공간을 두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가벼움을 연출했다.
컬렉션이 중반을 넘기며 색이 깨어났다. 절제된 블랙 팔레트 위로 레드, 그린, 블루, 퍼플이 하나씩 떠올랐다. 보도자료의 표현대로 ‘인광처럼 강렬한 컬러 스펙트럼’은 그림자 속에서 솟구치는 에너지 그 자체였다. 테일러드 코트 위로 폭발하듯 번진 플로럴 프린트와 시퀸 자수를 머금은 실크 이브닝 드레스가 피날레를 장식하며, 빛은 마침내 어둠을 뚫고 나왔다.
발렌시아가에서 맞이한 피치올리의 두 번째 시즌은 크리스토발의 방법론, 즉 인체의 형태를 중심에 놓고 옷이 그 주변을 감싸는 구조에 대한 탐구를 심화했다. 유연한 가죽, 밀도 높은 캐시미어, 실크, 시퀸 자수까지,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고유한 성질에 따라 선별된 소재들은 의복에 대한 인식 자체를 갱신했다. 그가 관객들의 좌석에 놓아둔 시트 노트에 적힌 한 줄을 되읊어본다. ‘마치 달이 태양만큼 밝은 것처럼, 마치 별을 끌어내려 빛으로 쓸 수 있는 것처럼.’ 검은 옷 위에 떨어진 조명 한 줄기가 실루엣을 바꾸고, 시퀸 한 올이 어둠 속에서 표정을 만든다. 피치올리에게 옷이란 결국 입는 사람이 자신만의 빛을 찾게 하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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