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장기화 조짐이 뚜렷해지자 정부와 수출입은행이 총 10조원 규모 정책금융 집행 속도를 직접 점검하고 나섰다. 에너지·원자재 수급 불안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책자금이 실제 기업 현장까지 얼마나 빠르게 투입되는지가 핵심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27일 수출입은행과 함께 ‘중동전쟁 대응 정책금융 점검회의’를 열고, 전쟁으로 직·간접 피해를 입은 기업 지원 프로그램의 집행 상황을 점검했다. 이번 회의는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기존 7조원이던 위기대응 특별프로그램을 10조원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한 직후 열렸다. 정책금융의 ‘규모’가 아니라 ‘속도’가 실제 위기 대응력을 좌우한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현재 집행률은 이달 25일 기준 약 20% 수준이다. 정부는 이 수치를 현장 체감도의 바로미터로 보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출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조치가 진행되고 있지만, 공급망 불안이 빠르게 확산됨에 따라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따라 수출입은행은 대응 강도를 한 단계 높였다. 원유·가스 등 핵심 에너지 품목에 대한 금리우대 폭을 기존 0.2%p에서 0.7%p로 확대했다. 광물·식량도 최대 0.7%p까지 지원 폭을 넓혔다. 에너지·자원 확보를 직접 겨냥한 ‘타깃형 금융’으로 전환한 것이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현장 대응 방식도 바뀌고 있다. 권역별 통합마케팅과 기업별 직접 면담을 확대해 수요를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공급망 리스크가 높은 기업을 중심으로 자금 집행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기업별 피해 양상이 각기 다른 만큼, 획일적 지원보다 정밀 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산업 방어선 구축’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물류 차질이 겹치면 정유·발전은 물론 석유화학, 해운, 항공까지 비용 압박이 연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곧 기업 수익성 저하로 이어지고, 금융권의 신용위험 상승으로 전이되는 구조다. 정책금융은 이 악순환이 시작되기 전에 끊어내는 역할을 맡았다.
수출입은행은 “중동 상황에 따른 리스크 요인을 정밀 점검하고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재정경제부도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피해기업 지원과 공급망 안정화에 신속히 대응하겠다”며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책금융이 자금 투입 ‘속도’의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시장은 즉각 변동성으로 반응할 것이다. 현재 정부가 점검하는 것은 위기 국면에서 정책이 실물 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막차표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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