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소재로 한 테마 소설집…이순원·황인숙 등 10인 참여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내가 저버렸던 그 고양이. 내가 저버린 수많은 고양이 중 하나인 그 고양이.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풍경을 보면, 희미한 보안등 빛 아래서 그 고양이가 나를 초대했던, 그 아늑한 시간이 흐느끼듯 떠오른다."(황인숙의 '하얀 새틴의 밤' 중)
고양이를 소재로 한 테마 소설집 '고양이, 부르면 오지 않는 것들'(잉걸북스 펴냄)이 출간됐다.
이 책에는 이순원, 황인숙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문인들과 서성란, 고은규, 권혜린, 염기원, 이수경, 양정규, 강혜림, 이호준 등 개성 강한 중견·신진 작가들이 참여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붙잡는 작품은 '고양이 시인'으로 불리는 황인숙의 단편소설 '햐얀 새틴의 밤'.
1984년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등단한 황인숙은 해방촌 비탈길 구석구석을 누비는 '캣맘'으로 유명하다. '고양이들의 수호성인'이자 '길냥이들의 거리집사'로 불릴 정도다.
이번 단편에는 매일 길고양이의 밥을 챙기는, 시인을 닮은 화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삶의 피로를 이기지 못해 '돌봄의 동선'은 무너지고, 시간과 체력의 한계에서 주인공은 돌봄의 한계를 경험한다.
그리고 미처 돌보지 못한 고양이에 대한 연민, 사라져버린 고양이에 대한 죄책감은 겨울밤 흰 눈처럼 쌓여만 간다. 섬세하고 따뜻한 언어로 관계와 돌봄의 윤리를 묻는 소설이다.
이 단편에 이어지는 시인 황인숙과 소설가 김도언과의 미니 인터뷰도 하나의 작품처럼 다가온다.
김도언은 "길고양이 밥을 주러 심야 시간대까지 하루 열 시간가량을 발품 팔며 돌아다니는 이 시대착오적인 시인"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과 타인을 향한 연민과 사랑의 기원을 탐색한다.
또 강혜림의 '살아 있다는 행위'는 마당을 지키려 고양이를 밀어내던 사람이 '살아 있음의 흔적'을 받아들이며 배제에서 화해로 이동하는 이야기를 펼친다.
양정규의 '떠나도 괜찮아'에서 화자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찾아온 고양이 가족을 돌보며, 남겨짐과 떠남을 '허락하는 애도'를 배운다.
이렇듯 고양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관계, 돌봄과 상실, 사랑과 이별을 섬세하게 풀어낸 총 10편의 소설이 담겼다.
책을 기획한 잉걸북스 대표인 소설가 신승철은 "고양이는 부르면 오지 않는다. 그 단순한 사실은 곧 관계의 윤리가 된다"며 "'고양이, 부르면 오지 않는 것들'에는 상실과 연민, 그리고 '붙잡지 않기로 한 순간에야 머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가서고 싶지만 넘을 수 없는 선, 더 다정해지고 싶지만 감당해야 할 책임, 떠나보내야 하지만 놓지 못하는 마음, 그 미묘하고 어려운 관계의 균형점을 탐색하는 작품집이다.
이순원·황인순·서성란·고은규 등 지음. 294쪽.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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