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재경부·국조실 등 분산 구조…부처 간 칸막이 비판 여전
개발협력 전문가들, 유·무상 연계 논의 속 "책임·권한 재설계 필요"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5조원을 넘어선 한국 공적개발원조(ODA)가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전환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정책과 집행이 분산된 구조가 근본적인 한계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 부처 간 역할이 나뉜 구조 속에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지고, 정책 수립과 사업 집행 간 연결성이 약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4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에서 '통합적 ODA'가 강조된 배경 역시 이러한 구조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 국조실 통합·조정 기능 한계…"전략적 연계 수준" 평가도
한국의 ODA 정책은 무상원조는 외교부, 유상원조는 재정경제부, 예산은 기획예산처, 조정 기능은 국무조정실이 맡는 다부처 구조다. 무상원조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이, 유상원조는 한국수출입은행이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활용해 수행한다.
이런 체계는 ODA 사업 규모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최근에는 정책의 일관성과 책임성 측면에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처 간 역할이 분산되면서 사업 내용 중복이나 지연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30일 국제개발협력계 전문가들은 현 체제에서 가장 큰 문제로 정책 컨트롤타워 기능의 부재를 우선으로 꼽는다.
국조실이 공식적으로 부처 간 조정 역할을 맡고 있지만, 실제 정책 결정과 예산 심사 권한은 각 부처에 분산돼 있어 실질적으로 통합·조정 기능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리적 통합보다는 전략적 연계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2023년 8월 감사원의 'ODA 사업 추진 실태' 감사에서는 부처 간 조정 체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체적인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일부 사업에서는 외교부 등 주관기관 심의나 국조실 산하 국제개발협력위원회(국개위) 의결을 거친 이후에도 개별 수행기관이 사업 내용을 변경하거나 예산을 증액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 국조실 조정 결과에 따라 축소 또는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음에도, 수행기관이 기존 계획을 유지한 채 예산을 집행하거나 사업을 연장 추진한 사실도 드러났다.
◇ '20년 역사' 국개위 있지만 분절화 여전…근본 개선 요구
이처럼 조정 기구의 결정이 집행 단계에서 강제력을 갖지 못하고, 각 부처와 산하기관의 사업 권한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정책·조정·집행 간 엇박자가 반복되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는 "ODA 체계의 통합과 효율성 제고는 개발협력의 구조와 방향을 좌우할 중요한 과제"라며 "정부는 ODA 체계 개편이 부처들 간 주도권을 둘러싼 지나친 과열 경쟁이나 갈등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 간 연계 역시 유사 사업을 묶는 수준에 머물면서, 공동 성과 목표나 통합적 성과관리 체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개발협력계 전문가는 "40여개 부처청이 2천여개 사업을 수행하는 분절적 구조에서는 전략적 일관성 확보가 어렵다"며 "정부가 국개위를 만들어 사업 간 연계를 강화해 분절화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분절화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분절화 상황에서는 전략적 우선순위를 명확히 설정하기 어렵고 성과관리도 기관별·사업별로 분산될 수밖에 없다"며 "전략과 성과관리 체계를 일원화해 가시적 성과를 창출하고, 이러한 ODA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외교·경제 정책의 전략적 추진 기반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국개위 체제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국개위가 2006년 부처 간 조정 기구로 출범해 20년이 지났지만 기존 부처 위에 또 다른 조정 기구가 얹힌 '옥상옥' 구조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사무국을 맡고 있는 국조실이 조정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권한과 집행 수단은 부족해 근본적인 한계를 해결할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 유·무상원조 통합 논의 재점화…"정치권 결단" 목소리도
이런 한계 속에서 '통합 ODA' 논의도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무상원조와 유상원조가 분리된 이원화 체제에서는 개발협력에서 강조하는 '패키지형 지원'이나 '국가 단위 통합 전략'이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통합형 ODA' 정책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대외전략 및 기본계획과 분야별 전략, 개별 사업으로 일관되게 이어지는 기획형 추진체계를 가동하고, 국개위의 종합·조정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법론을 두고는 견해가 엇갈린다. 외교부 등 단일 기관 중심 통합, 국조실의 조정 역할 강화, 정부와 민간 등을 아우르는 개발협력 전담 조직 신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ODA를 외교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려면 부처 간 반발을 무릅쓰고 유·무상원조 통합이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일본 정치권의 사례를 참고해 청와대나 국무총리실 등 정치권의 강력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은 고이즈미 내각과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을 거쳐 아소 다로 내각 초기인 2008년 10월 기존 일본국제협력기구(JICA·자이카)와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의 유상원조 부문을 통합해 신(新) 자이카를 출범시켰다.
당시 일본은 무상원조와 기술협력을 담당한 외무성과 유상원조를 담당한 재무성 간 예산·주도권을 둘러싼 다툼으로 인해 비효율성이 높다는 비판이 이어진 시기였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유·무상 통합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유·무상원조가 나뉜 구조에서는 전략과 집행을 둘러싼 효율성 논쟁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며 "영국, 독일, 스위스, 일본 등 선진국처럼 통합 모델을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선부처 후조정' 구조 반대로…성과관리 체계 통합 강조
전문가들은 급격한 구조 개편보다 전략과 성과관리 체계를 재설계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유·무상 사업 간 연계 강화와 공동 기획 확대, 국가별 통합 전략 수립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김은미 이화학당 이사장 겸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지금처럼 예산과 사업이 각 부처에서 먼저 움직이고 조정이 뒤따르는 방식은 순서가 뒤바뀐 구조"라며 "상위에서 전략과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따라 예산을 배분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4차 기본계획에는 무상원조 통합 강화, 시행기관 구조 효율화, 성과 중심 관리체계 구축, 평가 전문기관 운영 등이 포함돼 있다. 분산된 사업을 줄이고 전략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게 핵심이다.
남수정 한국행정연구원 평가지원팀장은 "전략·정책은 주관기관이 총괄하고 코이카가 국가별 프로그램을 총괄하면 시행기관, 시민사회, 민간 등이 전문 분야 집행을 맡도록 해야 한다"며 "성과관리 체계를 통합해 같은 목표로 사업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이카의 역할 재정립 필요성도 제기된다. 정부가 4차 기본계획에서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코이카 중심의 무상원조 분야 통합적 플랫폼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자율성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에 코이카 측은 "ODA의 질적 고도화를 위해 우리의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전략적인 ODA를 실행해야 한다"며 "정부의 전략목표 달성을 위한 '코이카 프로그램'을 통해 체계적으로 성과를 창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원조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전환한 한국 ODA는 이제 '얼마나 쓰느냐'를 넘어 '어떻게 쓰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규모에 걸맞은 전략과 구조를 갖추지 못한다면 성과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국 개발협력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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