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포식자’된 식자재마트 30년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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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포식자’된 식자재마트 30년의 역설

투데이신문 2026-03-29 09:06: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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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의정부 소재 대형 식자재마트. 창고형마트와 일반마트의 모습이 혼재돼 있다. 
지난 26일 의정부 소재 대형 식자재마트. 창고형마트와 일반마트의 모습이 혼재돼 있다. 

【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 유통시장에서 식자재마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지난 2024년 기준 대형 식자재마트로 분류되는 푸디스트(식자재왕), 장보고식자재마트, 세계로마트 등 상위 3개 사의 매출 합계만 1조5800억원. 같은 기간 5조원대 매출의 롯데마트와 비교하면 체급 차이는 있지만, 골목상권 치고는 그 위세가 대단하다. 하지만 이들은 유통산업발전법상 규제 대상인 ‘대규모점포’도, ‘준대규모점포’도 아닌 법적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포식자 틈바구니에서 태동한 ‘생존의 산물’

식자재마트의 역사는 1990년대 후반, 대형마트라는 ‘최상위 포식자’의 등장과 궤를 같이한다. 당시 거대 자본을 앞세운 대형마트가 골목상권까지 잠식하자, 위기를 느낀 중형 슈퍼마켓과 식자재 도매상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화하며 태동했다. 초기 모델은 철저히 B2B(기업 간 거래)였다. 일반 소비자보다는 인근 음식점이나 급식업체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창고형 도매상’의 기능에 충실했다. 대형마트가 소매 시장을 장악한 생태계에서 찾은 처절한 생존 전략이었다.

변곡점은 2010년대에 찾아왔다. 정부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해 영업시간 제한과 주말 의무휴업 규제를 강화하자, 식자재마트는 그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렸다. 대기업 자본이 규제에 묶여 주춤하는 사이, 이들은 주거 밀집 지역으로 파고들며 소매 기능을 강화했다. ‘대용량·저가’라는 도매의 장점에 ‘접근성’이라는 소매의 옷을 입히며 비약적으로 세를 불린 것이다.

지난 26일 방문한 의정부 소재 대형 식자재마트. 업소용 음료가(사진 하단 노란색 포장)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고 있었다.
지난 26일 방문한 의정부 소재 대형 식자재마트. 업소용 음료가(사진 하단 노란색 포장)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고 있었다.

경계 사라진 식자재마트

지난 26일 방문한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식자재마트는 이러한 성장의 현재 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은 본관과 별관이 물리적으로 나뉘어 운영 중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쇼핑 공간이었다. 본지가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두 건물의 면적 합계는 약 1700㎡. 주목할 점은 건물별 운영 주체다. 실제 임대 및 운영 법인이 서로 다르게 등록되어 있었는데, 이는 대기업 계열사의 ‘준대규모점포’ 지정을 피하거나 3000㎡ 이상 ‘대규모점포’ 규제망을 우회하기 위한 전형적인 방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매장 내부의 풍경도 기형적이다.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 사이로 지게차가 상품을 적재하고, 매대에는 ‘업소용’이라고 적힌 음료가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고 있었다. 유통 생태계 질서를 흔드는 변칙 영업이 한자리에서 관찰됐다.

협상력 잃은 생산자의 절박함

이러한 구조 속에서 시세 파괴에 가까운 가격이 형성된다. 이날 식자재마트에서 판매 중인 콩나물 300g의 가격은 690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6일 기준 콩나물(340g) 전국 평균 소매가격은 2359원이다. 거칠게 비교해 봐도 식자재마트의 가격은 시중가보다 크게 낮다. 

이처럼 시중가보다 낮은 판매가는 납품을 담당하는 중소 생산자들에 대한 압박에서 비롯됐다는 증언이 나온다. 계란산업협회 강종성 회장은 <투데이신문> 과의 통화에서 “식자재마트 실무자들이 여러 업체에 견적을 받은 뒤, ‘다른 곳은 이만큼 불렀는데 더 낮추지 못하면 계약은 없다’고 압박하면, 생산자 입장에선 울며 겨자먹기로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최근 한 식자재마트에서 계란 한 판이 소비자에게 2000원에 판매되는 사례를 목격했다. 납품가 1700원에 유통된 것인데, 최근 계란의 산지 가격이 알당 180원(판당 5400원)인 점을 고려하면, 생산업자의 손실을 전제로 한 비정상적 가격이다. 그는 “동네 소형 마트나 제과점 등이 사라지며 판로가 막힌 생산자들은 식자재마트마저 놓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다”고 전했다. 과거엔 수억원 수준의 음성적 입점비 요구도 공공연했으며, 현재도 일부 음지에서 이러한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하지만 식자재마트는 업계의 관행적인 명칭일 뿐, 현행법상 명확한 개념 규정이 부재해 제도적 틀 안에 묶이지 않는다. 이들이 유통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근본적 배경이다 산업연구원 구진경 실장은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식자재마트 제도권 편입을 위한 입법·정책 토론회'에서 “식자재마트가 골목상권에 깊숙이 침투해 사실상 대형마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변화된 유통환경을 담아내지 못하는 현행 법제의 한계와 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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