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슬픈 살인'…조현병 환자였던 살인범 라우도어 다룬 논픽션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1998년 6월 미국 뉴욕주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여성이 칼에 찔린 시신으로 발견된다. 배 속에 아이까지 있던 이 여성을 살해한 사람은 약혼자 마이클 라우도어.
이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간 뉴욕타임스 메트로 섹션 1면을 차지하기 2년 반 전인 1995년 11월 정확히 같은 지면에서도 라우도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살인 용의자로서가 아니라 조현병을 극복하고 예일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희망의 아이콘으로서였다.
신간 '슬픈 살인'(원제 'The Best Minds')는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라우도어의 이야기를 다룬 논픽션이다. 그의 오랜 친구인 소설가 겸 편집자 조너선 로즌이 그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부터 사건 이후의 이야기까지를 기록했다.
어린 시절 라우도어는 학습 능력이 남다른 영리한 책벌레였고,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는 야망도 있었다. 때론 인생 2회차처럼 조숙했다. 아버지가 대학교수라는 점을 포함해 환경이 여러모로 비슷했던 라우도어와 로즌은 초등학생 때 처음 만나 가까워졌고 함께 예일대에 입학할 때까지 우정을 이어갔다.
라우도어는 예일대를 3년 만에 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유명 컨설팅기업에 들어갔다가 오랜 꿈이던 글쓰기를 위해 1년 만에 퇴사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로즌이 한동안 뜸했던 친구의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스물다섯살 때였다. 라우도어가 자신의 부모님을 나치라고 여기며 부엌칼을 들고 돌아다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컨설팅회사에 다니던 때부터 다른 이들이 자신을 감시한다고 믿었던 그는 뒤늦게야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의 삶이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었다.
정신병원에서 8개월을 보낸 라우도어는 백화점 계산원 정도가 최선일 것이라는 의사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하듯 입원 전에 입학 허가를 받아놨던 예일대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박사후 연구원으로 발탁된다.
조현병을 극복한 천재를 조명한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그를 단숨에 영웅으로 만들었다. 회고록 출판과 영화 판권 계약도 했다.
그러나 그는 회고록 '광기의 법칙'을 끝내 내놓지 못했다. 약물 치료를 중단한 상태에서 함께 살던 여자친구 캐리를 죽인 후 피투성이로 먼 도시에 가서 스스로 경찰을 찾아간 그는 "캐리 또는 캐리인 척하는 태엽인형을 죽인 것 같다"고 말한다.
결국 살인범으로 수감된 라우도어를 가리켜 저자는 "조현병 환자의 고정관념을 거부한 사람으로 이름을 알렸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으로 그 이름에 다시 먹칠을 했다"고 표현했다.
살인 범죄에 대한 책이지만, 여느 범죄 논픽션처럼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다. 우정과 질투, 동경이 뒤섞였던 오랜 친구에 대한 슬픔과 연민이 담긴 저자의 시선으로 마이클의 삶과 주변 이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고도 섬세하게 담아냈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에 대한 연구 결과나 문화적 해석 등도 입체적으로 곁들이고, 탈시설화나 강제 치료 등을 포함해 사회가 정신질환자를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에 대한 묵직한 질문도 던진다.
이 책의 영어 원제에 붙은 부제는 '우정과 광기, 그리고 선의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A Story of Friendship, Madness, and the Tragedy of Good Intentions)다. 흔히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찍기'의 위험을 많이 지적하지만, 라우도어의 경우 어쩌면 낙인찍기를 거부한 많은 이들의 '선의'가 비극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조현병 환자가 아닌 '천재'나 '영웅'으로 그를 대한면서, 조현병의 위험은 오히려 가려졌을 수 있다.
"낙인에 관해 문제가 되는 지점은, 단순히 조현병 환자 가운데 마이클과 같은 결말을 맞는 사람은 극소수인데도 모두가 그의 전철을 밟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치료받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폭력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지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낙인을 찍는 행위라고 여기는 환경이었다."
문학동네. 박다솜 옮김. 7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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