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가전제품 유통 구조가 변하고 있다. 상조·구독 서비스 등과 결합된 판매가 늘어나면서, 가전이 단순 소비재가 아닌 장기 할부 계약과 연동된 형태로 공급되는 사례가 확대되는 모습이다. 사은품이나 지원금 형태로 제시되지만 실제로는 별도의 할부계약이 결합된 구조로, 가격 형성과 비용 부담 방식이 기존 가전 판매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28일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결합상품에 포함된 가전제품 가격은 온라인 최저가 대비 평균 1.4배, 최대 3.3배 수준으로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렌탈 서비스와 비교해도 최대 2.9배 높은 사례가 확인됐다. 일부 제품은 전용 모델이거나 구형 제품으로 구성돼 동일 조건에서 가격 비교가 쉽지 않은 구조라는 점도 가격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 같은 가격 형성은 단순한 유통 마진보다는 ‘결합형’ 판매 구조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보는 시각이 나온다. 가전제품이 단독 상품이 아닌 장기 계약과 연동된 형태로 판매되면서, 전체 납입 구조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약이 이뤄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거래 구조를 보면 가전제품은 별도 할부 계약으로 분리된 형태를 띤다. 납입 기간은 통상 3~5년으로 설정되지만, 비용 보전 조건은 12~20년 수준의 장기 계약과 연동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일정 기간 이상 계약을 유지해야만 가전 관련 비용을 환급받을 수 있는 구조가 형성. 중도 해지 시에는 제공 혜택으로 인식됐던 가전제품에 대해 계약상 금액이 별도로 부과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소비자 피해로도 이어지고 있다. 20대 직장인 A씨는 ‘노트북 제공’ 조건으로 결합상품에 가입했지만, 납입금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개인 사정으로 해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노트북 할부금과 위약금이 별도로 부과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A씨는 “가입 당시에는 혜택 중심으로 설명을 들었고, 해지 단계에서 비용 구조를 체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례는 결합상품에서 가전이 차지하는 비용 구조를 드러내는 단면으로 해석된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초기 납입금 중 상조 서비스 비중이 5% 미만인 상품이 절반가량을 차지, 실제 납입금 대부분이 가전·전자기기 대금으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 해지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의 58%가 대금 문제였고, 이 가운데 88.3%는 가전 비용 과다 청구나 위약금과 관련된 사례로 집계됐다.
소비자 인식과 실제 계약 구조 간 괴리도 확인된다. 서울시 조사에서는 계약 구조를 정확히 이해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절반 수준에 그쳤고, 한국소비자원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90%가 결합상품이 별도의 계약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충분히 안내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판매 과정에서 ‘무료 제공’이나 ‘증정’과 같은 표현이 사용되면서 가전제품이 비용 항목이라는 인식이 희석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구조 변화도 감지된다. 가전이 포함된 결합상품은 기존 장례 중심 상품과 달리 노트북, 스마트워치, 무선이어폰 등 IT 기기 비중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관련 피해구제 사례에서 20대 비중이 37.1%로 가장 높고, 30대도 23.9%를 차지해 젊은 층 중심의 유입이 확인된다. 이는 가전·전자기기가 결합상품의 주요 유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유통 채널과 판매 방식 역시 이에 맞춰 확장되는 흐름이다.
일부 상품은 가전 유통망과 연계된 구독형 모델로 확장되는 분위기다. 롯데하이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통해 판매되는 상품의 경우, 가전 선택권과 함께 일정 수준의 캐시백이나 환급 조건을 제시하는 구조가 적용되고 있다. 가전 구매와 장기 납입 계약, 서비스 이용 조건이 결합되면서 소비자 유입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런 사례는 가전 유통이 단순 판매를 넘어 장기 납입·환급 구조와 결합된 형태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구조는 가격·계약·환급 조건이 결합된 형태로 설계돼 있어 소비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결합상품의 96.3%가 만기 시 가전 구매대금까지 환급을 약정하고 있지만, 해당 상품을 판매한 업체의 65.2%는 자본잠식 상태로 파악됐다. 이 경우 사업자의 재무 상황에 따라 약정된 환급이 원활히 이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제도 개선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결합상품 구조의 복잡성을 고려해 가전제품이 ‘사은품’이 아닌 별도의 할부 구매라는 점을 명확히 고지하도록 표준 약관 개정을 건의한 상태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거짓·과장된 유인 행위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결합상품이 가전 유통과 금융, 서비스가 결합된 새로운 판매 모델로 자리 잡은 만큼, 단순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가격 표시와 계약 구조에 대한 정보 제공을 어떻게 표준화할지, 소비자가 실제 부담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지가 향후 시장 신뢰를 좌우할 변수로 거론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결합상품은 가전 판매에 금융과 서비스를 결합해 소비자 접근성을 높인 측면도 있지만, 계약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정보 비대칭 문제도 커질 수밖에 없다”며 “가격 자체보다 납입 구조와 환급 조건을 얼마나 투명하게 드러내느냐가 시장 신뢰를 좌우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결합상품은 가전 구매와 서비스 계약이 함께 구성되는 만큼, 소비자가 전체 납입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입 전 납입 기간과 총부담 금액, 해지 시 환급 기준 등을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은품이나 지원금 형태로 제시되는 혜택이 실제 계약 구조에서 어떻게 반영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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