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미국·일본·중국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도체 산업 전략을 구체화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경쟁이 동시에 가속화되고 있다. 투자, 구조 재편, 기술 추격이 맞물리며 경쟁 축이 ‘개별 기업’에서 ‘국가 단위 반도체 생태계’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을 자본과 동맹 구조로 재편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국무부가 출범시킨 ‘팍스 실리카 펀드’는 2억5000만달러의 공적 자금을 마중물로 국부펀드와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공급망을 동맹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핵심 광물부터 제조 설비까지 공급망 전 주기에 개입해 ‘투자-생산-수요’를 묶는 구조를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일본은 전력 반도체를 중심으로 산업 재편에 나섰다. 롬·도시바·미쓰비시전기의 사업 통합 논의는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확대로 수요가 급증하는 전력 반도체 시장에서 규모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다. 탄화규소(SiC)와 실리콘, 고내압 기술을 결합해 제품군을 확대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가능한 사업 구조를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에서 기술 격차 축소를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양쯔메모리(YMTC)가 300단 이상 낸드 양산을 예고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의 적층 기술 격차가 사실상 좁혀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생산능력 확대와 점유율 상승 전략이 맞물리며, 기존 ‘기술 우위’ 기반 경쟁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중국 업체들은 단순 적층 경쟁을 넘어 피지컬 AI 등 신수요에 대응하는 메모리 제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경쟁 축을 응용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메모리 경쟁이 성능 지표에서 시스템·응용 최적화로 이동하는 양상이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 복합적인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에 대응해야 하는 동시에, 일본의 전력 반도체 경쟁 확대, 중국의 메모리 기술 추격까지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낸드 분야에서는 기술 격차 축소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면서 차세대 메모리 기술 확보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경쟁의 기준이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단 공정이나 제품 성능 중심 경쟁에서 벗어나, 자본·정책·공급망·기술을 결합한 ‘종합 산업 역량’이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도 단순 기술 경쟁을 넘어 공급망 전략과 제품 포트폴리오 전환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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