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글의 차세대 인공지능(AI) 데이터 압축 기술 '터보퀀트(TurboQuant)'와 중국의 AI기업 '딥시크(DeepSeek)' 간에 유사성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아 주목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증권가를 중심으로 구글의 터보퀀트 역시 딥시크의 생성형 AI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기술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단기적인 투자 심리 위축 효과는 낳겠지만 생태계 전체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증시 전문가들 역시 국내 반도체 기업 주가에 약간의 변동은 있겠으나 머지않아 제 자리를 찾아갈 것으로 내다봤다.
고성능 메모리 문턱 낮춘 '터보퀀트' 등장에 반도체 주가 휘청, 증권가·학계 "일시적 현상"
26일 반도체 업계 등에 따르면 구글은 최근 차세대 AI 데이터 압축 기술인 '터보퀀트'를 발표했다. 이 기술은 대규모언어모델(LLM)의 임시 기억장치인 'KV(Key-Value) 캐시'를 3비트 수준으로 압축해 메모리 사용량을 6배 가량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KV 캐시'는 AI가 정보를 저장하는 임시 메모장 역할을 한다. 구글은 터보퀀트 도입 시 기존 알고리즘 대비 압축 오류를 최소화하면서도 AI 연산처리 속도는 8배 이상 향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혁신은 하드웨어 성능 향상에 집중해 온 기존의 방식을 완전히 뒤짚는 시도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글로벌 메모리 기업들은 데이터 통로를 넓혀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구글은 데이터 자체의 크기를 줄여 기존 인프라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해 도로를 넓히는 대신 차량의 크기를 줄인 것과 같은 의미다.
구글 발표 직후 AI 시장의 주도권이 하드웨어 성능에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겨나면서 세계 각국의 반도체 기업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26일(현지시간) 마이크론은 전일 대비 6.97% 급락하며 장을 마감했고 27일 국내 증시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장중 4.78%, 5.68%까지 하락했다. 특히 SK하이닉스 주가는 장중 한 때 90만원선이 무너졌다. 미국의 이란 폭격 소식이 알려졌던 지난 9일 이후 18일 만이다. 삼성전자 주가 또한 장중 17만1500원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투자 전문가들은 주요 반도체 기업의 주가 하락을 일시적인 심리적 충격에 기인한 결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터보퀀트 도입에 따른 HBM 수요 감소 우려는 단기적 영향일 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반도체 기업에 득이 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조셉 무어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터보퀀트 등장으로 AI 구동 비용이 낮아지면 기업들은 절감된 자원을 더 고도화된 제품 개발에 재투입할 것이다"며 "결국 메모리와 저장 공간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기보다 오히려 더 강력해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피터 캘러핸 골드만삭스 기술 분석 전문가 역시 이번 주가 하락의 원인을 기술적 요인보다 시장의 생리(生理)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진단했다. 그는 "시장이 공포에 빠진 것은 신기술 등장에 따른 본질적 가치 훼손이라기보다 올해 꾸준히 상승했던 메모리 반도체 관련주에 대한 수익 실현의 빌미로 작용한 측면이 크다"며 "과거 '딥시크 사태' 당시에도 일시적인 주가 하락이 있었으나 결국 주가는 회복됐고 AI 기술 또한 한 단계 더 도약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터보퀀트 기술 개발에 참여한 핵심 연구진도 향후 AI 반도체 수요 확대설에 힘을 보탰다. 카이쉬안 렌(Kaixuan Ren) 구글 연구원은 직접 작성한 리포트를 통해 "AI 모델이 더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변함에 따라 기업들은 서비스 범위를 확대하고 더 큰 모델을 학습시키며 추가 서비스를 배포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궁극적으로 하드웨어 수요를 다시 증가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국내 증권가에서도 터보퀀트 기술과 반도체 수요를 증가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터보퀀트 등 다양한 저비용 AI 기술은 AI 사용 장벽을 낮추고 전체 수요를 폭발적으로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며 "연산량 증가와 메모리 탑재량 확대로 AI 생태계가 확장되면 오히려 최대 수혜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학계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박운상 서강대 인공지능학과 교수는 "터보퀀트와 같은 압축 기술의 본질은 결국 더 많은 사람이 더 저렴하게 하드웨어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며 "AI 구동 비용이 낮아질수록 전 세계적인 메모리 반도체 보급률이 가팔라질 것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서버 및 기기용 반도체의 총량은 결과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 AI연구원 교수는 "현재 HBM과 같은 고성능 메모리는 일부 빅테크 기업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며 일반 사용자들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AI 처리 비용이 낮아지면 이를 도입하는 기업과 서비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고 전망했다. 이어 "아무리 보수적으로 전망해도 향후 HBM 수요가 공급을 밑돌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특히 모든 제조 현장에 로봇이 투입되는 로봇 대전환 시대가 도래하면 실시간 데이터 처리를 뒷받침할 메모리의 중요성은 절대적일 것이고 반도체 업계는 쏟아지는 주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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