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안태준 의원, 분양가 상한제 민영 아파트 채권입찰제 도입 법안 발의
당첨자 시세차익 독점→채권 매입 의무화해 공공 재원으로 환수
李대통령 '로또분양 문제' 지적에 정부도 검토…분상제 확대로 이어질까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더불어민주당 안태준 의원이 최근 주택채권입찰제 도입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판교신도시 등 공공택지 아파트에 적용했다가 폐지된 지 13년 만에 재도입이 추진되는 것이다.
이번 발의안이 당정 합의로 발의된 것은 아니지만 시장은 벌써 술렁이고 있다.
'로또 청약'과 과도한 시세차익, 불로소득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의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어서 제도가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채권입찰제가 시행되면 함께 세트로 작동하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이 확대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채권입찰제가 미칠 나비효과에 시장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두 번 폐지됐던 채권입찰제, 13년 만에 재도입 추진
주택채권입찰제(이하 채권입찰제)는 1983년 5월 청약 과열과 분양가 상한제 시행에 따른 과도한 시세차익을 당첨자가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처음 도입됐다.
당시 민영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연 2% 금리, 20년 만기로 발행되는 국민주택채권을 사도록 하고 높은 금액을 구입한 사람 순으로 당첨 우선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후 외환위기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채권입입찰제가 무의미해지면서 1998년 제도가 폐지됐다.
채권입찰제가 다시 도입된 것은 2006년 판교신도시 분양 때다.
당시 정부는 '강남급 신도시'로 불린 판교신도시 분양에 청약광풍이 우려되자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 공공아파트를 대상으로 채권입찰제를 시행하고, 분양가와 채권 매입손실액(채권 매입후 즉시 매각했을때 손실액)을 합한 금액이 주변 시세의 90%가 되도록 채권을 사게 했다.
당시 판교에서 5억6천만원에 분양된 전용면적 115∼125㎡ 사례를 보자. 인근 아파트 주변 시세는 9억원 선으로 청약자는 분양가와 채권 손실액을 합한 금액을 주변 시세의 90%인 8억1천만원에 맞춰야 하니 채권매입손실액이 2억5천만원이 되도록 채권을 사야 한다.
당시 발행한 2종 국민주택채권(이자율 0%, 10년 만기)의 할인율은 35∼38% 선으로, 38%의 할인율을 적용할 경우 청약자는 은행에 액면가 6억5천800만원의 채권을 매입한다고 써내고 즉시 매도를 통해 실제로는 2억5천만원을 부담했다.
분양가 5억6천만원에 채권 손실액 2억5천만원을 합해 시세의 90%인 8억1천만원에 분양받는 구조다.
채권입찰제는 이후 다른 공공택지내 중대형 아파트에도 적용됐지만, 실제 적용 단지는 고양 일산2지구 등 일부에 그쳤다.
채권입찰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80% 미만일 때만 작동하도록 제도를 완화해 적용할 수 있는 공공택지가 많지 않았다.
채권입찰제는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집값이 하락하자 다양한 문제를 드러냈다.
판교신도시 중대형 당첨자들은 입주 시점에 집값이 하락해 분양가와 채권 손실액을 합한 금액이 시세보다 높은 '역전현상'이 발생하자 정부에 채권 매입액을 돌려달라고 항의했다.
또 고양 일산2지구에선 청약 당첨자에게는 채권입찰제를 적용하고, 미분양분 신청자는 채권 매입 대상에서 제외하며 형평성 논란이 거셌다.
이후 정부는 '반값 아파트'를 내걸며 공급한 보금자리주택 분양은 서민주거안정을 이유로 채권입찰제를 적용하지 않았고, 주택경기 침체기가 길어지면서 2013년에 제도를 폐지했다.
◇ '로또분양' 시세차익, 채권으로 정부가 환수…분상제 민영아파트 대상
안태준 의원이 이번에 발의한 주택법 개정안은 판교 때와 달리 공공아파트를 제외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의 민영 아파트 청약자를 대상으로 채권입찰제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현재 분상제 지역인 강남3구와 용산구에서는 '로또 분양'이 양산되고 최대 수십억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당첨자가 독점하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청약경쟁률은 수백 대 1에 달하고 로또 아파트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한 위장전입이나 위장 결혼·이혼·미혼 등 가점제 꼼수와 조작이 횡행하고 있다.
최근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전 후보자가 기혼 아들을 동원한 '원펜타스' 부정청약 논란이 대표적이다.
안 의원은 "채권입찰제를 도입하면 당첨자가 가져갈 높은 시세차익을 공공이 환수할 수 있고, 최근 청약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택도시기금 재원으로 활용해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안 의원이 제안한 채권매수 방식은 판교신도시 때와 차이가 있다.
판교 때는 시세의 90%까지 채권매입 손실액을 맞춰야 했다면, 안 의원은 제도를 단순화해 분양가와 인근 시세(100%)의 차액만큼 채권을 매입하도록 했다.
분양가가 20억원이고 주변 시세가 30억원이라면, 차액인 10억원만큼 국민주택채권으로 매입하면 되는 것이다.
새로 발행하는 채권의 할인율을 20%로 가정하고 10억원의 채권을 매입 즉시 매도한다면 실제로는 2억원의 채권매입 손실액(10억원×20%)만 납부하면 되고, 실질 분양가는 총 22억원이 된다.
안 의원측은 자체 분석 결과 최근 5년간 분양한 강남3구와 용산구 분양가 상한제 대상 아파트 23개 단지에 새로운 채권입찰제를 적용할 경우 약 1조5천300억원가량을 공공이 환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보다 안정적인 기금 재원 확보를 위해 다양한 이자율과 만기로 이뤄진 채권을 출시해 채권 매입을 준조세가 아닌 투자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안 의원 발의안이 정부안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이재명 대통령도 로또 분양에 대한 문제의식을 밝힌 만큼 제도 도입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무회의에서 "로또 분양은 분양가 상한 제한으로 인해 실제 시세와 크게 차이가 발생해 주변 집값을 폭등시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LH 개혁위원회의 공공주택 확대 방안과 함께 분양·청약제도 개편과 채권입찰제 도입 여부를 함께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로또·꼼수 청약 해결 vs 현금부자 유리"…시장선 분상제 확대 촉각
채권입찰제 도입 검토 소식에 청약 대기자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시세보다 싼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오랜 기간 무주택을 유지하며 가점을 쌓아왔는데 채권입찰제가 시행되면 시세차익이 줄어들거나 없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올해 하반기 분양 예정인 반포1·2·4주구 재건축 단지인 '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에 청약가점제가 적용되는 것이냐며 확인하는 문의 글들이 줄을 이었다.
시장에서는 채권입찰제가 도입되면 로또 분양이 사라지면서 무리한 가점제 조작 등 부작용도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시세보다 싸게 분양받던 청약통장의 매력이 사라지면서 통장 가입자 이탈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선 채권상한액이 높은 시세를 더욱 공고히 하고, 현금 부자들만 당첨되는 부작용이 심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채권입찰제는 분양가 상한제 시행에 따른 차익을 당첨자가 갖느냐, 정부가 환수하느냐의 차이지 집값 안정의 수단으로 보긴 어렵다"며 "오히려 상한제 아파트를 싸게 분양받기를 원했던 청약 대기자들은 실질 분양가 부담이 커지면서 불만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채권입찰제가 민간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의 로또 청약을 막는 효과는 있겠지만, 신혼부부 등 정책 대상자의 실질 분양가가 오르고 현금 부자들의 자금력 대결이 되는 것은 문제"라며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시행업계와 정비업계는 채권입찰제 도입이 궁극적으로 분양가 상한제 지역 확대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분상제가 확대되면 강남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비강남권의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은 물론, 높은 땅값을 주고 매입한 시행사 토지도 분양가 제약으로 사업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R114 윤지해 리서치랩장은 "이미 지난 10·15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가 서울 전역과 분당·과천 등 수도권 12곳으로 확대되면서 분양가 상한제와 채권입찰제 적용 지역 확대 여건은 마련돼 있다"며 "과거 분상제 시행 때도 그랬듯이 분상제가 확대되면 정비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며 실제 분양·입주 물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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