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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세상이 열광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누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는 걸작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작품, 화려한 명성 뒤에 숨은 화가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지독하게 어긋난 운명, 고단하고 허무한 삶이었노라고 말입니다. 이데일리는 오랜 시간 ‘그림이 하는 말’을 들어온 이윤희 미술평론가와 함께 세계미술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천재화가들의 인생역정을 더듬습니다. 단순한 일대기를 넘어섭니다. 뜨거운 예술혼이 맞닥뜨린 차가운 현실, 그 쓸쓸한 생이 한사코 밀어냈을 결정적 장면을 엿봅니다. 삶이 묻고 그림이 답합니다. 캔버스에 굽이치던 화가의 인생길 ‘화폭역정’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께 다가섭니다. <편집자>편집자>
[이윤희 미술평론가] 1864년 11월 24일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알비. 고색창연한 한 저택에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백작 집안의 대를 잇는 정통 귀족으로 태어난 사내아이는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1864∼1901). 그의 가문은 8세기 카롤링거 왕조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서가 깊었다. 만약 그가 아버지보다 오래 살았다면 당연히 툴루즈-로트레크 백작의 작위를 계승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센 운명은 중세의 명예로운 가문을 잇는 대신 파리 몽마르트르의 사창가로 그를 이끌었다.
문제는 근친혼이었다. 툴루즈-로트레크의 부모는 사촌지간이었고 두 할머니는 자매였다. 가문의 재산과 혈통을 보전하려던 귀족 사회의 오랜 관행이 그들의 자녀에게 치명적인 유전 질환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툴루즈-로트레크는 어린 시절부터 허약했고, 열세 살과 열네 살에 연이어 양쪽 대퇴골이 골절됐으나 정상적으로 아물지 않았고 제대로 붙지 않았다. 성인이 된 그의 몸 상반신은 평균이었으나 다리는 어린아이에 머물러 키가 152㎝를 넘지 못했다. 현대의학은 이 질환을 ‘툴루즈-로트레크 증후군’, 좀 더 전문적으로는 농축골이형성증으로 명명한다. 그의 사촌 중 셋도 같은 질환을 앓았다.
백작인 아버지는 기행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여성 발레리나의 부풀린 짧은 치마를 입고 점심식사 자리에 나타나기도 했고, 말의 젖을 직접 짜서 들이켜기도 했으며, 매와 가마우지에게 성수를 먹여 천국에 보내려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냥과 승마에 광적으로 집착했던 이 귀족에게 말을 탈 수 없는 아들은 가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실패작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아들이 나중에 유명한 화가가 됐지만 아버지에게는 여전히 말을 탈 수 없는 아들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정서적 유기로 툴루즈-로트레크는 평생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았다. 청소년기에 쓴 일기장에는 “나는 크지도 잘생기지도 않았다”고 자신을 평가한 대목이 나온다.
◇몽마르트르 여인 그린 ‘세탁부’, 120년 뒤 232억원에 팔려
아버지가 외면한 자리를 채운 것은 어머니였다. 어릴 때부터 바깥 활동 대신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도, 당대 파리화단을 이끌던 레옹 보나와 페르낭 코르몽의 스튜디오에서 정식 미술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오랜 보살핌과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코르몽의 화실이 있던 몽마르트르는 당시 카바레와 선술집, 매음굴이 뒤섞인 곳이었고 젊은 화가들에게 그 골목들은 작업실의 연장이었다. 툴루즈-로트레크 역시 동료들과 어울려 술집을 전전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거리의 여인들과 안면을 텄다. 처음에는 모델로, 이윽고 일상을 나누는 이웃으로 관계가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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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의 툴루즈-로트레크가 카르멘 고댕이란 붉은 머리 여인을 모델로 그린 ‘세탁부’(1886)는 당시의 대표작이다. 흰 블라우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 잠시 일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지친 눈빛, 축 처진 어깨, 그러나 치켜 든 턱과 응시하는 시선에는 단순한 피로 이상이 서려 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꿈꾸는 더 나은 삶에 대한 동경이었을까, 아니면 이 순간을 힘차게 견뎌내기 위한 한숨 돌리기 같은 것이었을까. 고댕은 실제로 몽마르트르의 세탁소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1880년대 후반까지 최소 13점의 작품에 고댕이 등장한다.
19세기 파리에서 세탁부는 도시의 힘겹고 위험한 직업 중 하나였다. 습한 작업장에서 무거운 빨래를 나르고, 뜨거운 다리미와 증기·화학약품에 하루종일 노출되는 일상은 쉽게 결핵과 기관지염을 불러왔다. 당시 파리에는 수만 명의 세탁부가 있었고 임금은 형편없이 낮았다. 그런 이유로 많은 세탁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부업으로 매춘에 의지해야 했다. 때문에 세탁부를 바라보는 행인의 시선에는 성적 대상화가 뒤섞여 있었고 높은 습도로 인해 헐렁한 옷을 입을 수밖에 없던 차림까지 도덕적으로 의심받았다. 고댕 역시 세탁소에서 일하며 모델 일을 병행했고 훗날에는 툴루즈-로트레크의 매춘부 연작에도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툴루즈-로트레크는 ‘세탁부’에 대한 도덕적 논평을 철저히 배제했다. 연민도 비난도 이상화도 거부했다. “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논평하지 않는다. 기록할 뿐이다.” 그가 남긴 이 말은 ‘세탁부’의 정수기도 하다. 그저 한 여인이 창밖을 바라보는 찰나를 포착했을 뿐인데 그 순간 안에는 19세기 파리 여성노동자의 삶 전체가 농축돼 있다. 먼 훗날인 2005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세탁부’는 2240만달러(당시 약 232억원)에 낙찰되며 툴루즈-로트레크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120년이 지나서야 세상은 이 ‘하찮은’ 세탁부의 얼굴이 지닌 가치를 비로소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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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툴루즈-로트레크는 파리 물랭가 24번지 고급 매음굴에 아예 짐을 싸들고 들어가 살았다. 중국풍 살롱, 고딕풍 방, 무어식 돔 천장이 있는 이곳에서 그는 여인들과 일상을 공유했다. 카드놀이를 하고 생일선물을 주고받았으며 식사를 함께하고 극장에도 갔다. 매춘부들은 툴루즈-로트레크를 ‘추방자 동료’로 받아들였다. 이 시기에 그린 작품 중 하나가 ‘의료검진’(1894)이다. 19세기 프랑스 정부는 매독 확산을 막기 위해 등록된 매춘부에게 정기적인 의료검진을 의무화했다. 세기말 파리에는 약 3만 4000명의 등록 매춘부가 있었다. 사실 이 검사는 고객 보호 차원이었지 매춘 여성들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회서 배척당한 여인들과 장애로 배척당한 화가의 유대감
그림에는 두 여인이 속치마를 걷어 올린 채 줄을 서 있다. 금발의 나이 든 여인은 체념한 듯 눈을 내리깔고 품에 옷을 모아 쥐며 남은 존엄을 지키려 한다. 붉은 머리의 젊은 여인은 보다 당당하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중이다. 덕분에 이 작품의 핵심은 벗겨진 육체가 아니라 그 눈빛이 됐다. 바로 이 장면을 툴루즈-로트레크는 성적 착취의 대상이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인의 기록으로 그린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만들어진 아름다움을 그리기보다,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거나 이상적인 육체를 가진 모델을 그리기보다는 말이다. 화가 앞에서 매혹적인 포즈를 취하지 않는 여인, 위선 없이 묵묵히 제 삶을 사는 여인을 그린 것이다.
툴루즈-로트레크가 즐겨 그린 가수 이베트 길베르는 자신의 회고록에 “난 귀족의 살롱보다 사창가의 거실에서 더 많은 품격을 발견한다”는 화가의 말을 남겨뒀다. 툴루즈-로트레크는 “여인들의 웃음 뒤에 숨은 쓴맛을 난 누구보다 잘 안다”고도 했고, “화장을 떡칠한 창녀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사악한 사회의 상처”라고도 했다.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여인들 사이에서 육체적인 기형으로 배척당한 화가는 비로소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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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9월 서른여섯 살의 툴루즈-로트레크는 숨을 거뒀다. 백작가의 아들로 태어나 사창가에서 살다가 짧게 생을 마감한 화가지만 툴루즈-로트레크가 남긴 것은 당대 사회의 진실이었다. 그는 사회가 외면한 곳에서 인간의 품격을 발견했고, 모두가 못 본 척하는 얼굴들에서 아름다움을 길어 올렸다. 세탁부도, 매춘부도, 무희도, 서커스 단원도 모두 동등한 무게로 말이다. 부러진 다리는 고통이었으나 대신 세상이 외면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줬다. 이런 삶도 있다.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을 안고 신분의 안온함 대신 세상의 폭풍우 속으로 걸어 들어가 진실을 마주한 삶 말이다.
△이윤희 미술평론가는…
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느 미술관에서 마주친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수많은 작품이 품은 이야기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였다. 이화여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로 출발해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쳤고, 지금은 이화여대·추계예대 등에서 미술이론을 강의하며 오래전 렘브란트의 감동을 넓혀가고 있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는 ‘불편한 시선: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2022), ‘꿈꾸는 방: 여성과 공간의 미술사’(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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