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와 SSD가 주목받는 AI 시대, 김정균 이사가 짚은 또 하나의 핵심 인프라
씨게이트, 드라이브 넘어 스토리지 시스템 기업으로 진화
SECON 2026 전시장에는 어김없이 AI가 중심 화두로 떠올랐다. 영상보안, 관제, 데이터 분석, 엣지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부스마다 인공지능을 내세웠고, 관계자의 대화 역시 GPU와 고성능 연산, 초고속 처리 기술에 집중됐다. 지금 산업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면 누구나 비슷한 대답을 내놓을 법한 현장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씨게이트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김정균 이사가 꺼낸 이야기는 조금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연산의 전면이 아니라, 그 뒤에서 폭증하는 데이터를 감당하는 저장 인프라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발표 초반, 하드디스크를 둘러싼 익숙한 인식부터 정면으로 건드렸다.
“하드 드라이브하면 어쩐지 이제는 SSD가 너무 많이 쓰이고 있으니까 요즘에도 하드 쓰나 앞으로 얼마나 쓸 건가 이런 생각들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전시 현장을 찾은 참관객 다수가 한 번쯤 품었을 법한 질문이자 짧은 문장 안에는 지금 시장이 하드디스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SSD가 빠르게 일상에 들어오고, 더 빠른 응답성과 더 높은 성능이 저장장치의 기준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 하드디스크는 어느새 느리고 오래된 기술, 언젠가 조용히 퇴장할 장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김 이사가 이어간 설명은 그 인식을 단번에 뒤집는다.
“오히려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쓰임이 있습니다.”
현장의 발표는 그러한 역설에서 부터 출발했다. 우리의 눈에 덜 보일 뿐, 하드디스크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거대한 환경의 핵심 장비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 즉, 빠른 저장장치의 확산이 곧 하드디스크의 퇴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 AI가 커질수록 더 중요해지는 저장의 문제
김 이사는 AI의 진화 과정을 짚으며 왜 저장 인프라가 다시 중요해졌는지를 설명했다. 초기 인공지능이 규칙 기반 접근으로는 현실의 복잡성을 따라가지 못했고, 이후 대량의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지금의 AI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알파고 이후 AI는 대중에게 더 이상 먼 기술이 아니게 됐고, 생성형 AI의 등장은 똑똑해진 수준을 넘어 일상 속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기술로 안착한다.
그러나 발표의 초점은 AI의 ‘성능’ 자체보다는, AI가 만들어내는 데이터의 규모를 향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냈던 추론 시스템이 이제는 데이터를 만들고 있어요”라며, 저장의 본질을 건든다. “그 데이터들 어디 저장되고 있을까요?”
현장에서 제시한 답은 명확했다. 일부는 SSD에서 운영되지만, AI 인프라에서 대규모로 생성되고 축적되는 데이터의 대부분은 결국 하드디스크에 저장된다는 것이다.
“지금 AI 인프라에서 거의 대부분의 데이터, 90% 정도의 데이터는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이 되고 있어요. 다만 우리 눈에 안 보일 뿐이에요.”
사람들은 늘 가장 빠른 것, 가장 비싼 것, 가장 전면에 놓인 것을 먼저 본다. AI의 핵심 자원으로 인식하는 GPU 서버와 메모리, 네트워크 장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실제 인프라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계층 위에서 완성된다. GPU가 계산을 수행하고 메모리가 빠른 연산을 보조한다면,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어마한 규모의 데이터를 받아내고 보관하는 역할. 즉 저장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지만, AI 인프라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 축이라는 의미다.
# SSD의 시대에도, HDD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김 이사는 SSD와 HDD를 승패의 관계로 두지 않았다. 오히려 워크로드에 따라 역할이 분명히 나뉨을 인정한다. 빠른 응답과 저지연 처리가 필요한 워크로드에서는 SSD가 대체 불가능한 선택지다. 다만 모든 데이터가 그런 방식으로 다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응답 속도가 빠른 워크로드 처리는 여전히 SSD가 강점을 발휘하지만, 시퀀셜 데이터 영상 혹은 오래 보관하는 데이터는 하드 디스크가 훨씬 더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영상보안과 같은 산업 현장에서는 구분이 더 명확해진다. 24시간 쌓이는 영상 데이터, 장기간 보관해야 하는 기록, 대규모로 누적되는 분석 원본처럼, 순차 접근이 많고 저장 용량 대비 비용 효율이 중요한 환경에서는 하드디스크의 강점이 여전히 뚜렷하다.
비용과 효율의 문제도 함께 짚었다.
“도입 비용 대비 용량을 볼 땐 여전히 하드 드라이브가 한 6~7배 정도 더 SSD보다 우세”하다는 말은 결국 저장이 성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즉, 현대의 스토리지는 어느 한 기술이 다른 기술을 완전히 대체하는 구조가 아니라, 워크로드 특성에 맞춰 계층적으로 설계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더 빠른 저장과 더 큰 저장, 더 짧은 응답과 더 긴 보존은 각기 다른 계층에서 서로를 보완한다. AI 시대라고 해서 근원적인 원칙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드디스크를 둘러싼 오래된 인식도 건들었다.
“여러분들이 보실 수 있는 기계장치 중에서 아마도 가장 정교하지 않을까 싶어요.”
곧 이어 하드디스크의 동작 정밀도를 설명하기 위해 강한 비유를 꺼냈다.
“비유를 하자면, 하드 드라이브는 지면에서 1mm를 떠서 25초에 한 번씩 지구를 돌면서 땅 위에 나 있는 풀잎을 세는 정도의 정밀도”라고 설명했다.
다소 극적이지만, 핵심은 명확하다. 오늘날 엔터프라이즈 HDD는 단순히 디스크가 회전하는 저장장치가 아니다. 디스크 표면 위를 비행하는 헤드는 수 나노미터 수준의 간격을 유지하며, 필요할 경우 히터를 통해 그 간극을 더 좁힌다. 외부 진동은 센서가 감지해 보정하고, 기록 밀도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정밀 제어가 동시에 작동한다. 겉보기와 달리, HDD는 초미세 제어 기술과 반도체 공정의 연장선 위에 있는 저장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하드디스크와 SSD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기계 장치에 불과한 하드 드라이브와는 다르게 SSD는 정밀한 반도체라고 여길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같은 반도체 기술에서 출발합니다.”
빠른 응답속도를 위해 반도체에 전하를 저장하는 방식이 SSD라면, 더 많은 데이터 저장을 위해 반도체에 자기기록 장치를 극도로 정교하게 구현해서 디스크에 기록하는 기술이 HDD라는 설명이다.
# HAMR, 용량을 넘어 인프라 효율을 바꾸는 기술
그리고 기술적 중심에는 HAMR(Heat-Assisted Magnetic Recording)이 자리한다. 기존 자기기록 기술이 물리적 한계에 가까워지면서, 용량 확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해졌고 그 해답이 HAMR이라는 설명이다.
김 이사는 배경을 먼저 짚었다.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좀 어려워졌어요. 용량을 더 늘리기가.” 이어 HAMR은 “디스크 표면을 레이저로 조사해 기록이 되는 표면적을 확 줄여주는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즉, 더 작은 면적에 더 정교하게 기록함으로써 저장 밀도를 끌어올린 씨게이트의 해법이자, 고용량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참고로 AI 인프라에서는 GPU와 서버가 이미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저장장치가 같은 공간, 같은 전력 조건 안에서 더 많은 데이터를 수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시스템 전체의 효율로 이어진다. 김 이사가 “용량이 늘어나면서 이제부터 전력이 상당히 중요해졌어요”라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장 밀도의 향상은 곧 데이터센터의 공간 효율과 전력 효율, 그리고 총소유비용(TCO) 개선과 연관깊다. AI 시대의 스토리지 기술은 더 이상 용량 경쟁만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 효율의 문제이기도 했다.
또 하나 눈에 띈 부분이라면 씨게이트 라는 브랜드의 정체성 변화다.
“씨게이트 하면 그냥 하드 만드는 회사 이렇게 아마 많이들 알고 계셨을 것 같은데”
그러나 실제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 씨게이트의 역할은 그보다 넓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SSD를 포함한 저장장치뿐 아니라, 고밀도 샤시와 확장형 스토리지,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 데이터 이관 서비스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동안 OEM 형태를 포함해 다양한 브랜드와 환경에 스토리지를 공급해온 경험이 누적돼 있으며, 특히 고밀도 저장환경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샤시 기술과 시스템 설계 역량이 강점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특히 고밀도 드라이브일수록 진동과 발열, 냉각과 같은 요소가 성능과 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저장장치는 이제 단품의 경쟁력이 아니라, 그것을 담는 시스템 환경까지 포함해 평가해야 하는 영역이 됐다.
# AI 시대, 저장은 더 이상 후순위가 아니다
SECON 2026 현장에서 김정균 이사가 던진 메시지를 정리하자면,
하드디스크의 유효성을 변호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말하고자 한 핵심은 더 근본적이다. AI 시대의 인프라는 더 이상 ‘무엇이 가장 빠른 가’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이제는 ‘무엇이 가장 많은 데이터를 가장 안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경쟁력의 기준이 단일 장비의 최고 성능에서 전체 구조의 지속 가능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오늘날 AI 산업은 속도의 서사에 익숙하다. 더 많은 GPU, 더 넓은 메모리 대역폭, 더 짧은 지연시간, 더 빠른 추론. 시장은 언제나 가장 극적인 수치와 가장 눈에 띄는 성능 향상에 먼저 반응한다. 그것이 기술 산업의 속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전면에 놓인 기술이 산업의 전부는 아니다. 연산은 시작일 수 있어도, 인프라는 축적과 운영, 유지와 확장을 포함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AI가 계속해서 학습하고, 추론하고, 기록하고, 다시 불러오는 과정을 반복하는 한, 데이터는 결국 어디인가 쌓여야 한다. 그리고 그 축적의 문제를 외면한 채 속도만 말하는 것은, 화려한 입구만 설계하고 건물의 하중은 계산하지 않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장의 내용이 더욱 의미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정균 이사는 하드디스크가 여전히 쓰인다고만 말하지 않았다. 왜 여전히 필요한지, 더 정확히는 왜 지금 같은 시대일수록 그 존재가 다시 부각되는지를 저장 구조의 관점에서 서술했다. SSD는 빠르고, GPU는 강력하며, 메모리는 넓어졌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더 크게 드러나는 것은 ‘모든 것을 가장 빠른 계층에 둘 수는 없다’는 현실도 지적했다. 연산 성능이 올라갈수록 생성되는 데이터도 많아지고, 보존해야 할 데이터도 늘어나며, 그 데이터를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비용과 전력, 공간의 문제는 더 중요해진다. 결국 AI 시대는 속도의 시대인 동시에, 저장의 현실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저장은 연산 이후를 책임지는 장치이자, 인프라 전체의 수명을 결정하는 조건이 된다. 아무리 빠른 추론이 가능해도 데이터를 감당할 수 없다면 시스템은 지속할 수 없다. 반대로 가장 빠르지는 않더라도 저장이 뒷받침되면 인프라는 훨씬 오래 버틴다. 산업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순간적인 데모 성능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되는 운영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빨리 계산하느냐만큼, 얼마나 오래 저장하고 얼마나 무리 없이 확장하느냐가 중요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 생각해볼 대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AI를 흔히 ‘지능’의 문제로 받아들이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서 AI는 점점 더 ‘추론’의 문제에 가까워지고 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학습했는가, 어떤 데이터를 얼마나 오래 보관하는가, 필요할 때 그것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꺼내 쓸 수 있는가가 성능과 비용, 지속 가능성을 함께 좌우한다. 그렇다면 저장은 단순히 디바이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AI 시대에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산업적 선택이기도 하다. 빠른 기술은 순간의 우위를 만들 수 있지만, 오래 가동하는 설계는 근본적으로 체력이 되기에.
이런 맥락에서 접근하면 현장의 발표는 하드디스크에 대한 재평가를 넘어, 인프라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다시 정렬해야 함을 향하고 있다. 저장장치를 속도로만 평가하던 과거의 편견에서는 HDD가 뒤처진 기술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저장을 총량과 안정성, 전력과 비용, 그리고 시스템 전체의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느 기술이 더 우월한가가 아니라, 어떤 기술을 어떤 계층에 배치해야 전체가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이는가가 더욱 중요해진다. 그것이 바로 AI 시대의 스토리지가 단품 경쟁이 아니라 구조 설계의 문제로 넘어가는 이유다.
바야흐로 오늘날의 산업은 늘 가장 눈에 띄는 기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을 오래 지탱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체를 보조하는 기반일 때가 많다. 하드디스크는 그런 의미에서 사라져가는 과거의 저장장치가 아니다. 더 많은 데이터, 더 긴 보존 주기, 더 무거운 인프라 요구를 감당하기 위해 지금도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현재의 기술이다. 그리고 AI 시대가 진짜로 묻는 질문 역시 여기에 가까울지 모른다. 누가 더 빠른 가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더 거대한 데이터를 수용할 수 있는가.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저장장치는 더 이상 조연이 아니다. 오히려 인프라의 마지막 완성도를 결정하는 핵심 조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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