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전장 핵심 전력으로 기대를 모았던 다목적 무인차량 사업이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2018년 육군 소요 제기 이후 2020년 현대로템의 신속시범사업 2대 수주로 진전을 보였으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평가 기준 및 시험 방식을 둘러싼 이견과 제도적 혼선이 계속되며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했다. 도리어 경쟁 업체 간 갈등은 심화됐고, 사업 향방도 미궁에 빠진 모양새다. 운전대를 잡은 방위사업청은 법령에 따른 정상 절차와 공정성 확보를 강조하지만, 업계의 시선은 불안하기만 하다. <편집자주>편집자주>
【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 다목적 무인차량 사업이 수년째 지연되면서 사업 전반을 관리하는 방위사업청에 대한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다. 무인화·AI 전환으로 전장(戰場) 환경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는 만큼 시급성이 높은 사업으로 손꼽히지만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못하자 경쟁 업체 간 갈등을 넘어 사업 관리 체계 전반에 문제 제기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다목적 무인차량 사업은 감시·정찰과 수송 등 다양한 임무 수행이 가능한 미래형 전력으로 군의 무인화 전환을 상징하는 대표 사업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사업은 장기간 지연되며 정책 신뢰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사업은 2016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지원 민군협력 과제로 출발했다. 이후 2018년 육군이 소요를 제기하면서 본격적인 획득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당초 계획대로 2019년까지 개발을 완료한 뒤 시범 운용을 거쳐 전력화 단계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제도 설계와 평가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며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일정 부분 진전은 있었다. 2020년 현대로템이 한화디펜스(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경쟁한 끝에 신속시범사업으로 2대를 납품했다. 다만 선정 방식을 둘러싼 논란도 함께 불거지며 이후 갈등의 단초가 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두 업체가 요구 성능(기술)을 모두 충족하고 입찰 가격까지 ‘0원’으로 동일하게 제출하자 전자추첨 방식으로 낙찰자를 결정한 것이다. 방위사업청으로선 관련 법령에 따라 원칙적으로 처리했다는 입장이지만, 추첨 방식으로 업체 선정이 이뤄진데 대해 이른바 ‘가위바위보’ 논란으로 적절성에 의문을 남겼다.
이후 제도 개선으로 같은 논란이 발생할 일은 없어졌다. 방위사업청은 최저가를 써낸 장비를 낙찰하는 ‘요구조건충족최저비용방법’이 아닌, 기술·성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종합평가에 의한 방법’을 채택했다. 문제는 평가 기준과 성능 검증 방식을 둘러싼 이견이다. 최근 이용철 방사청장의 발언으로 업계의 관심을 모았던 ‘고의 지연 페널티’ 검토가 이를 방증하는 사례다.
이용철 방사청장은 지난 19일 국방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다목적 무인차량 사업의 재공고 가능성을 우려하며 “(특정 업체가 사업 지연을 목적으로 평가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지금 구조상으로는 사업이 무한 루프로 다시 가야 한다. 고의적 지연 행위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해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도록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페널티’는 특정 업체를 지목해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라기보다, 사업 지연에 관한 제도적 대응 차원에서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사업 구조와 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연 책임을 기업에만 돌리는 접근은 적절하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특히 평가 기준의 불확실성과 절차의 예측 가능성 부족이 기업 참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된다고 지적한다. 앞서 한화에어로와 현대로템은 2024년 4월 방사청의 입찰 공고에 따라 각각 아리온-스멧, HR-셰르파를 앞세워 도전장을 냈다. 2년 가까이 진행된 사업이지만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며 현대로템은 성능확인평가 불참을 선언했고, 한화에어로만 단독으로 참여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업 유찰은 단순한 결과일 뿐 기업이 참여를 주저하는 배경에는 기준의 불명확성과 리스크 부담이 있다”며 “예측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참여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형식적으로 공정한 기준이라 하더라도 성능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라면 기업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 같은 구조가 반복되면 경쟁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학계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한 전문가는 “일정 기준을 넘으면 동일하게 평가하는 방식은 경쟁의 의미를 약화시킬 수 있다”며 “우수한 성능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2년 이상 지연된 사업은 사업 관리 실패 측면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며 “초기 설계와 평가 기준 설정, 갈등 조정 과정에서 일관성이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발주기관이 구조 설계와 일정 관리의 중심에 있음에도 역할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업의 향후 절차와 방향은 이르면 4월 내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유찰을 거쳐 두 업체가 그대로 참여하는 재공고나 조건을 재정비한 새로운 공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화에어로와의 단독 협상 시나리오도 제기되지만, 업계에서는 현실화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관련 법령과 제안요청서에 명시된 기준에 따라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전력화 일정 지연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관계자는 “성능 확인 종료에 따라 다음 단계인 가격협상을 추진할 예정”이라면서 “전력화 일정이 지연되지 않도록 신속히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우수한 장비가 전력화될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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