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자 투자자 자금이 안전자산을 이탈해 단기 대기처로 이동하고 있다. 달러예금과 골드뱅킹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동시에 고객의 잉여 자금을 모아 주로 양도성예금증서(CD), 기업어음(CP), 만기 1년 미만의 단기국공채 등 신용위험이 낮은 단기 금융상품에 집중 투자해 얻은 수익을 돌려주는 초단기 채권형 펀드인 머니마켓펀드(MMF)로 자금이 몰리며, 리스크 회피보다 수익 실현과 유동성 확보에 무게를 두는 양상이 강화되고 있다.
◇달러·금 동반 이탈…‘안전자산 엑소더스’ 시작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지난 23일 기준 613억8300만달러로 집계됐다. 지난달 27일 658억4400만달러 대비 약 44억6100만달러(6.78%) 감소했다. 원화 기준으로는 약 6조7000억원이 한 달 사이 빠져나갔다.
같은 기간 국민·신한·우리은행의 골드뱅킹 잔액도 2조4357억원에서 2조1499억원으로 줄어 약 11.73% 감소했다.
통상 환율 상승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따른 변동성이 확대되는 시기 투자 자금은 달러와 금 등 안전자산에 몰린다. 그러나 최근 달러와 금의 자금 동반 이탈은 이례적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달러 예금의 경우 환차익을 기대한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변동성 장세에 대응 달라졌다…고점 부담에 수익 실현
안전자산에서의 이탈은 변동성 확대 국면에서 투자자들의 대응 방식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2024년 비상계엄 사태와 지난해 미국의 관세 압박, 올해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내외 변수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다.
시중은행 다른 관계자는 “대내외 변수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투자자들의 불확실성 대응 방식이 변화한 것”이라며 “지난해 하반기 증시 호황 이후 자산 증대에 대한 관심이 커진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원달러 환율과 금 가격이 단기간에 큰 폭으로 상승한 점도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증시와 마찬가지로 달러와 금 가격에 대한 고점 부담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환율 상승이 이어진 데다 금값이 조정 흐름을 보이면서 수익 실현을 서두르는 경향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달러는 차익실현, 금은 가격 부담…엇갈린 이탈 배경
다만 달러와 금에서 나타난 자금 이탈의 배경은 서로 다르다. 달러의 경우 환율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 성격이 강한 반면, 금은 가격 조정과 금리 환경 변화에 대한 부담이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달러 강세와 금리 상승은 금 가격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최근 금 가격도 고점 대비 조정을 거치며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지정학 리스크와 금리 인하 기대 약화, 가격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추가 매수하기보다 기존 보유분을 줄이며 수익 확정에 나서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전쟁의 최대 패자는 금”이라며 “글로벌 증시와 채권 시장이 모두 흔들렸지만 금 가격의 하락 폭이 상대적으로 컸다”고 지적했다.
◇MMF 247조 ‘파킹 자금’ 급증…단기 대기처서 ‘관망’
안전자산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단기 대기처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국내 MMF 설정액은 247조72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쟁 발발 전인 지난달 27일 231조9704억원 대비 한 달여 만에 16조원 이상 증가한 규모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올해 들어서만 50조원 넘게 늘었다.
MMF는 단기 국채와 기업어음(CP), 양도성예금증서(CD) 등에 투자하는 초단기 상품으로, 입출금이 자유롭고 하루 단위 수익이 가능해 변동성 확대 국면에서 자금이 몰리는 대표적 ‘파킹 자금’으로 꼽힌다.
백관열 LS증권 연구원은 “지정학 리스크가 지속되면서 MMF로 자금 유입이 이어지고 있다”며 “ETF형 MMF를 중심으로 단기 위험 회피 성격의 대기 자금 수요가 확대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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