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시간들>이 3월 18일 개봉한다. 이종필 감독 의 <침팬지>,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 장건재 감독의 <영화의 시간> 세 편으로 구성했는데, 그중에서도 세 사람이 출연한 <침팬지>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어떤 티저에도 침팬지는 보이지 않던데. 홍사빈 꽁꽁 숨겨둔 존재다.(웃음) 이 작품은 감독님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2000 년, 광화문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침팬지’ 이야기에 매료된 고도(김대명 역)가 25년 후 영화감독이 되어 그 시절을 돌아보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침팬지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중요한 메타포다. 원슈타인 누구에게나 이 영화 같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억이 왜곡된 건지, 맞는지 확신할 수 없는 순간. 또렷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때 감정만큼은 선명하게 남은 경우도 있지 않나. ‘침팬지’는 모호하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는, 소중한 기억이나 꿈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세 사람의 조합도 흥미롭다. 캐스팅 비하인드에 대해 들은 게 있나? 원슈타인은 김대명 배우와 닮아 캐스팅 됐다고 들었다.원슈타인 맞다. 감독님이 김대명 선배님이 맡은 ‘고도’의 젊은 시절을 연기할 인물을 찾다가, 어느 블로그에서 저와 선배님이 닮았다는 글을 봤다고 하더라. 정확히 ‘김대명 배우를 닮은 뮤지션’이라고 검색하신 걸로 안다. 뮤지션을 캐스팅하고 싶었다고 하더라. 홍사빈 내가 경험한 감독님은 직감으로 결정하는 순간이 꽤 많았다. 원슈타인과 이수경, 두 배우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무조건 하게 할 거다”, “이 세 명이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이 조합을 들었을 때 꼭 성사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체크 트렌치 코트와 이너 톱,
데님 팬츠, 스카프
슈즈 모두 Burberry.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유는? 홍사빈 서로 다른 영역의 아티스트와 작업할때 분명한 시너지가 있다. 영화 <화란>에서 가수 비비와 함께한 경험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 연기를공부한 입장에서, 그들이 인물을 해석하거나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을 보며 신선한 자극을 받곤 한다. 흥미를 유발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이를테면 나도 래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가 출연하는 <마티슈프림>을 기대하고 있으니. 수경 배우의 연기는 <용순>과 <침묵>에서 인상 깊게 본 터라 함께하게 되어 좋았다.
홍사빈 배우는 <탈주>와 <박하경 여행기>에 이어 이종필 감독과 세 번째 호흡 아닌가?홍사빈 그렇다. 내가 맡은 ‘제제’ 역의 전사를 과거에 감독님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 캐릭터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도 쓰신 걸로 안다. 언젠가 이 캐릭터로 영화를 찍겠다는 이야기를 계속 하셨는데, 마침 내가 군 복무 중일 때 제안을 하셨다. 촬영 일정을 조금 미뤄달라고 부탁드린 뒤 제대하자마자 찍었다. 제제가 극 중 군인이라 당시 내가 캐릭터와 맞지 않았나 싶다.(웃음)
감독이 이수경 배우를 두고 “누벨바그 영화에 나올 것 같은 한국 배우”라고 했다. 오늘 촬영하면서 그 말에 공감했다. 포토그래퍼가 당신의 손에 장 뤽 고다르의 책을 쥐여준 걸 보면 모두가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이수경 감사하다.(웃음) 맡은 배역인 ‘모모’를 그런 이미지로 그리셨던 것 같다. 빈말이 아니라 감독님과 꼭 한번 작업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제안을 받았을 때 정말 기뻤다. 장문의 메시지와 함께 시나리오를 직접 보내주신 것도 감사했다.
원슈타인은 첫 영화인 만큼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부담은 없었나?원슈타인 테크닉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연기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나를 선택하셨다고 믿었다. 어색한 모습조차 감독님이 계산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따로 준비하기보다 느낀 그대로 연기하려고 했다.
감독님을 전적으로 믿었나 보다.원슈타인 솔직히 현장에서 김대명 선배님에게 여쭤봤다. 내가 하고 있는게 맞는지. 그랬더니 “감독님이 오케이를 내면 그게 오케이다. 그 이상 물어볼 필요 없다”고 하시더라. 그 후로는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사를 내뱉을 때 랩이나 노래를 할 때와는 확실히 달라 디렉팅을 받으면 당황한 순간도 많았다. 이수경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웃음) 원슈타인 분명 어려운 지점도 있었지만, 음악을 할 때도 가면을 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난 어떤 역할이 주어지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튜브 톱 드레스 Rokh,
진주 롱 네크리스
Vivienne Westwood,
프린트 가죽 오버 더 니 부츠
Jimmy Choo.
아이보리 슈트와 파자마 셔츠,
레이어드한 파자마 팬츠 모두 Dolce&Gabbana,
워치 Cartier by Beantique, 슈즈와 벨트,
네크리스, 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솔직히 고백하면, <침팬지>를 다 보고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행간의 의미를 찾아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세 분을 만나면 가장 먼저 묻고 싶었다. 완성본을 처음 봤을 때 어땠는지. 이수경 솔직히 <침팬지> 하나만 볼 때보다 윤가은·장건재 감독님의 작품과 묶어놓고 보니 의미가 진하게 다가오고 재미있더라. 특히 감독님이 오프닝과 엔딩에 배치한 영사 기사님 장면은 배우로서 큰 울림이 있었다. 아, 그리고 촬영할 때부터 ‘침팬지가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는데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현장에서 실제처럼 보여 모니터링하면서도 깜짝깜짝 놀랐다. 과연 관객들은 그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웃음)
아, 진짜 침팬지가 아니었나?이수경 모르셨나?(웃음). CG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홍사빈 장요훈이라는 배우가 탈을 쓰고 연기한 거다. <스포일리아>라는 단편영화의 주연이고, 이종필 감독님이 연출한 <탈주>와 <파반느>에도 출연했다. 몸을 정말 잘 쓰는 배우다. 어느 매체에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 5인 중 한 명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몇 년을 붙잡고 이야기해도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데,
영화 한 편이 이를 가능하게 할 때가 있다. _ 원슈타인감독님들이 <극장의 사람들>을 막내 동생을 보듯 아끼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 역시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고. _ 이수경
원슈타인과 홍사빈, 두 분의 감상도 들어보고 싶다. 원슈타인 나 역시 대본을 처음 읽을 때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웃음) 영화를 보고 나서도 완전히 알겠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모르는 상태’가 오히려 맞다고 느껴졌다. 촬영 중 감독님께 잘 모르겠다고 말씀드리니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시더라.(웃음) 홍사빈 거대한 서사를 따라가는 구조가 아니라 그림이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다. 그런데 완성된 걸 보니 생각보다 이야기가 와닿기도 했고, 먹먹한 장면도 있었다.
어떤 장면이었나? 홍사빈 김대명 선배님의 독백 위로 우리 셋의 얼굴이 인서트로 지나가는 장면이 있다. 원래 시나리오에 없던 장면이다. 숲에서 춤추는 장면을 찍다가 감독님이 갑자기 한 사람씩 촬영을 하셨는데, 그게 그렇게 쓸쓸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어떻게 쓰일지 모른 채 연기하는 건 불안하지 않나?홍사빈 개인적으로 이런 즉흥적인 작업을 즐기는 편이다. 전사를 철저히 이해하고 연기하다 보면 ‘내가 맞게 했나’ 고민이 많아지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아예 모르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라. 이수경 맞다. 정답이 없으니 마음을 비우게 된다. 감독님은 너무 많은 걸 분석하기보다 힘을 빼고 무심하게 연기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셋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고도(원슈타인)가 “잘 모르겠어”라고 할 때, 내가 “난 알겠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그것도 현장에서 주어진 대사였다.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시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의미를 알았다면 조금 더 비장하게, 힘을 주려고 했을 것 같다.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미쟝센단 편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배우로서는 꽤 보람된 순간이었을 것 같다. 홍사빈 감독님이 자신의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다. 평소 들뜨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는 분인데, 이번에는 정말 아이처럼 “신난다”고 말씀하시더라. 40대 성인 남성이 그렇게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 않나.(웃음) 감독님과 세 작품을 함께했지만,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이수경 실제 촬영 기간은 2~3일 정도로 짧았는데, 오히려 영화제를 포함한 행사 일정이 더 많았다. 영화제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워 보였다. 영화를 향한 진심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니 나 역시 영화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고. 홍사빈 씨네큐브 개관 25주년을 맞아 제작한 영화지만, 이런 작품이 매년 하나씩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로서 스스로를 환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나도 저만큼 사랑했던 무언가가 있었지’라는 마음이 들었으면 한다. 감독님이 전하고 싶은 것 역시 결국 “영화야 사랑해”라는 고백이 아닐까 싶다. 잊고 있던 침팬지를 만나길 바란다. _ 홍사빈
이수경 _ 스웨터 톱, 오버코트, 스커트 Max Mara,
모스트로 가죽 부츠 PUMA.
홍사빈 _ 안경 Blueelephant,
워치 Cartier by Beantique, 니트 톱과 팬츠, 슈즈,
삭스, 네크리스, 링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원슈타인 _ 셔츠와 타이 모두 We11done,
스트라이프 팬츠 Juun.J, 워커 Dr.Martens.
<극장의 시간들>은 결국 ‘영화’와 ‘극장’에 관한 이야기다. 각자 생각하는 영화의 매력은 무엇인가?이수경 극 중 캐릭터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결국 사람에 대한 탐구가 아닐까 싶은데, 복잡한 캐릭터일수록 인물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큰 재미를 느낀다. 현실에서 경험하기 힘든 다양한 인물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영화 속 아닐까. 원슈타인 영화 <인셉션>처럼 나의 가치관을 바꿔놓는 경험을 할 때 쾌감을 느낀다.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건 힘든 일이다. 몇 년을 붙잡고 이야기해도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데, 영화 한 편이 이를 가능하게 할 때가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존재를 영화 속 인물을 통해 이해하는 순간이 있다. 홍사빈 나도 같은 생각이다. 대학생 때 한 형이 “영화는 잘못이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한 번씩 떠오른다. 영화는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변하는 건 우리 마음이라는 뜻이다. 영화가 멀어지는 순간도 있고, 너무 좋아서 매일 극장에 가며 가까워지는 순간도 있지만, 사실 영화는 늘 그 자리에 있다. 아무튼, 영화의 매력은 언제 어떤 이야기를 건넬지 모른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브라운 슈트 Recto,
핑크 니트 베스트와 핑크 셔츠, 타이,
워치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과 이너 톱, 스팽글 쇼츠
모두 Dries Van Noten,
스카프 Golden Goose.
크롭 지퍼 셔츠 White Abyss,
니트 미니 스커트 The Barnnet,
레이어드 레이스 원피스 Yuthentic,
초커 네크리스 Vivienne Westwood.
감독님의 경험담을 통해 세 사람도 각각의 방식으로 영화를 다시 돌아보게 된 것 같다. 이 작품은 각자 커리어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홍사빈 사실 연기하다 보면 내가 더 좋은 모습으로 돋보이길 바라는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근데 이번엔 그런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통편집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이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꼈다. 사실 배우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싶은 적도 있었다. 영화가 좋지만 역량이 부족해서, 혹은 캐스팅이 되지 않아 영화를 찍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 작품은 내가 영화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원슈타인 예를 들면 어른이 되어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아기 공룡 둘리>의 고길동 같은 인물 아닐까. 이수경 촬영하는 내내 즐거웠다. 이종필 감독님은 물론 윤가은·장건재감독님, 그리고 동료 배우들과 제작진까지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이 얼마나 영화에 진심인지 체감했고,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특히 감독님들이 이 영화를 막내 동생을 보듯 아끼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 역시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고. 원슈타인 만약 계속 연기를 한다면 <극장의 시간들>은 그 시작점이 될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아주 어릴 때 이모, 동생과 함께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를 통째로 외워 가족들 앞에서 따라 한 적이 있다. 그때 이모가 감독 역할이었다.(웃음) 연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하는 경험과 재미를 그때 처음 배운 것 같다. 그 소중한 기억을 소환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수경, 홍사빈 두 배우는 연기 외 해보고 싶은 게 있나? 홍사빈 배우이자 가수인 스다 마사키 같은 존재가 마음 한구석에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친구를 데뷔시키진 못할 것 같다.(웃음) 상업적 니즈가 있을 것 같은 친구는 아니다. 대신 언젠가 팟캐스트를 해보고 싶다. 평소 글 쓰는 걸 좋아해 공연 연출도 하고 있는데, 팟캐스트를 하게 되면 두 분을 초대해 가사 쓰기 경연 대회 같은 콘텐츠를 해봐도 재밌을 것 같다.(웃음) 이수경 연기 외에는 딱히 관심사가 없는 편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얼굴이 확실히 다양한 것 같다. 원슈타인의 콘서트와 사빈이의 연극을 보러 갔을 때 평소 보지 못했던 면을 발견했다. 원슈타인은 대화를 할 때는 소년 같은데, 콘서트장에서는 굉장히 호방하더라. ‘쾌남’이라고 해야 할까. 사빈이 역시 전혀 몰랐던 귀여운 면이 있더라. 홍사빈 예전에 <탈주> 오디션을 볼 때 이종필 감독님이 “귀여운 게 모든 걸 이긴다”는 코멘트를 주신 적이 있다. 악역을 비롯해 어떤 역할이든 인물에게 호감이 생겨야 관객이 그 캐릭터를 계속 보게 된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이수경 사빈이의 연극 무대를 보면 그런 모습이 굉장히 짙게 묻어난다.
마지막 질문이다. 관객들이 <극장의 시간들>을 보고 무엇을 느끼길 바라나? 이수경 내가 이 작품을 하며 느낀 것처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심이 관객에게도 전해지면 좋겠다. 그리고 “침팬지, 진짜 같다”는 말도 꼭 듣고 싶다.(웃음) 홍사빈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나도 저만큼 사랑했던 무언가가 있었지’라는 마음이 들었으면 한다. 영화를 본 뒤 술 한잔 기울이며 그 이야기를 계속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감독님이 전하고 싶은 것 역시 결국 “영화야 사랑해”라는 고백이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 가슴속에 침팬지 한 마리쯤은 품고 살지 않나. 잊고 있던 침팬지를 만나길 바란다.
Copyright ⓒ 맨 노블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