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국내 생명보험업계가 IFRS17(신 회계기준) 도입 이후 5조원대 순이익을 올렸지만, 자본은 1년 새 21조원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보장성보험 판매 확대가 단기 실적을 밀어 올렸지만 미래이익의 저장고인 보험계약마진(CSM)은 기대만큼 쌓이지 않았고, 금리 하락 충격까지 겹치며 건전성 부담은 오히려 커졌다는 분석이다. 겉으로는 호황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수익성과 자본이 엇갈리는 역설적 구조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26일 보험업권에 따르면 2024년 생명보험 수입보험료는 전년 대비 0.9%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초회보험료는 37.5% 늘었다. 신규 판매는 급증했지만 전체 보험료 외형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한 셈이다.
수입보험료는 2023~2024년 112~113조원 수준으로 2020~2021년 119~120조원보다 낮아진 반면, 초회보험료는 2020~2021년 10~12조원에서 2023~2024년 14~19조원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보장성보험 판매 확대가 실적을 끌어올렸지만, 보유계약 해지 증가 등으로 외형 성장의 질은 기대만큼 탄탄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는 보험연구원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노건엽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KIRI 리포트 ‘회계 제도 변화와 생명보험산업 대응방안’에서 IFRS17 시행 이후 생명보험산업이 보장성보험 중심의 성장 전략을 전개하고 있으나, 수입보험료 증가세는 제한적이고 CSM은 해지율 가정 변화와 물량 요인에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급여력 역시 금리 하락에 따른 가용자본 감소와 보험위험 확대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진단이다.
팔아도 덜 쌓이는 CSM…미래이익의 한계
생보사의 장기 수익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CSM 둔화 흐름도 뚜렷했다. 앞선 2년간 6조8000억원 증가했던 생보업계 CSM은, 2024년 말 62조4000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2.6%(1조6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치며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겉으로는 증가세를 이어간 듯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랐다. 지난해 신계약 유입으로 CSM은 13조7000억원 늘었지만, 해지율 가정 변경으로 7조5000억원이 줄고 물량 차이로 5조5000억원이 감소했다. 결국 신계약 효과 상당 부분이 상쇄되면서 연간 순증 규모는 1조6000억원에 그쳤다.
이는 생보사들이 보장성보험을 공격적으로 팔아 당기 실적을 끌어올려도, 그 이익이 미래 수익의 저장고인 CSM으로 온전히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IFRS17 체제에서 순이익 숫자만으로 업황 개선을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노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당기순이익이 IFRS17 시행 이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해지율 가정 변화와 물량 요인 등으로 CSM 잔액 증가 폭이 둔화되면서 향후 보험이익이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리 내리자 자본 21조원 증발…건전성 부담 확대
더 큰 문제는 건전성이다. 2024년 말 생명보험회사 자본은 82조1000억원으로 2023년 말 103조3000억원에서 1년 만에 21조2000억원 줄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 증가로 이익잉여금은 늘었지만, 금리 변동이 반영되는 기타포괄손익누계액이 28조5000억원 감소하면서 전체 자본을 끌어내렸다. 실적은 늘었는데 자본은 줄어든, 이른바 ‘이익과 자본의 디커플링’이 본격화한 셈이다.
배경에는 금리 하락과 유동성 프리미엄 축소가 있다. 2023년 말 3.183%였던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2024년 말 2.855%로 내려갔고, 같은 기간 보험부채 할인율에 적용하는 유동성 프리미엄도 95.3bp에서 48.7bp로 하락했다. 금리가 하락하면 보험부채 현재가치가 커지고, 이는 자본 감소로 이어진다.
여기에 보장성보험 판매 확대에 따라 요구자본도 늘었다. 2024년 요구자본은 전년 대비 2조원 증가했는데, 생명·장기손해보험위험액이 4조1000억원 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장해·질병위험은 1조9000억원 증가해 건강보험 판매 확대의 부담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에 보장성보험 위주의 성장 전략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고서는 특정 보장성 상품 판매 확대로 초회보험료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수입보험료는 보유계약 해지 증가의 영향으로 뚜렷한 성장세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또 향후 금리 하락과 유동성 프리미엄 축소에 따른 부채 증가로 가용자본은 감소하는 반면, 보장성보험 판매 확대에 따른 보험리스크 전이로 요구자본은 증가해 지급여력 관리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봤다.
대안으로는 영국의 사례가 제시됐다. 영국 생명보험산업은 IFRS17 시행 이후에도 수입보험료의 약 90%가 연금상품에서 나오고, 대형사 AVIVA는 2022년 말 64억8000만파운드였던 CSM이 2024년 말 77억7000만파운드로 늘어 연평균 9.5% 성장했다는 점에서다.
노 연구위원은 국내 생보산업 역시 보장성보험의 지나친 확대를 지양하고, 연금상품 기반의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한편 자산·부채관리(ALM)와 자본 변동성 대응 체계를 함께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IFRS17은 생보사의 이익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 제도인 동시에, 그 이익 기반의 취약성까지 드러낸 제도이기도 하다”며 “이제 시장의 질문은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니라, 그 이익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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