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출발이다. 텐트를 걷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볍다. 방갈로에서 잔 덕분에 침낭을 말고 고집불통 텐트 폴대를 분해하고 그라운드시트 흙을 털어야 하는 노동이 생략된 아침은 상쾌하다 못해 경이롭다. 문명이란 결국 귀찮은 것을 제거하는 과정이 아니던가.
시라쿠사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거의 실신 상태였다. 뒷자리의 편안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앞자리는 풍경에 사로잡히게 되고 또 아무래도 운전자와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하지만 뒷자리는 다르다. 완벽한 수면의 성역이다. 시칠리아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지나는 리듬은 묘하게 자장가와 닮아 있었다. 이동 중에 잠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사치스러운 휴식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완벽하게 의식을 잃었던 순간을 지나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시라쿠사였다.
아르키메데스, 당신은 정말 벌거벗고 뛰었나요?
시라쿠사는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이다. 그 유명한 "유레카!(Eureka!)"의 발상지 말이다. 사실 그 외침에 대해서는 알지만 원리는 모르겠다. 솔직히 부력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그가 물이 넘치는 순간 무언가를 깨닫고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뛰쳐나왔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히 이 도시는 친숙한 느낌이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아르키메데스는 정말 벌거벗은 채 거리로 나가 뛰어다녔을까? 시라쿠사의 거리가 지금처럼 복잡하진 않았겠지만 기원전 3세기 그가 "유레카!"를 외치며 달렸을 당시의 시라쿠사는 대도시였다.
아테네보다도 큰 도시였다는데 아무리 커다란 천으로 몸을 감싸는 기원전이었다고 해도 공공장소에서의 복장 규정이 없었을 리 없다. 당시 시민들에게 그는 오늘날의 ‘바바리맨’ 같은 존재였을까 아니면 "또 미친 과학자 영감이 사고 쳤네" 정도였을까 하는 쓸데없는 궁리에 빠져 도시를 걸었다.
시라쿠사의 원형극장은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는 패스. 이미 아그리젠토에서 충분히 고대 유적을 봤고 이탈리아 전역에서 원형극장은 수없이 봤으며 보게 될 것이므로. 게다가 여행의 진실 중 하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보려고 하는 순간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대신 우리는 시라쿠사 대성당으로 향했다. 원래 아테나 신전이었던 것을 성당으로 변신시킨 기묘한 건축물이다. 아테나 신전의 기둥들이 성당 벽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기둥을 보며 생각해보니 이 돌기둥들은 2500년 동안 아테나도 섬기고 예수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믿음의 대상은 바뀌어도 돌기둥은 그대로다. 어쩌면 진짜 신앙은 저 기둥들처럼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이 바뀌고, 믿음이 바뀌고, 용도가 바뀌었지만 건물은 남았다. 신전은 성당이 되고, 목욕탕이 교회가 되고, 경기장이 광장이 된다. 돌이 종교보다 오래 산다. 대성당 내부는 깨끗하고 묘하게 산뜻했다.
아마도 젊은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현대적인 공기 때문일 것이다. 아그리젠토가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노인이라면 시라쿠사는 그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현재를 사는 청년 같다.
시라쿠사는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보다 컸다고 한다.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 중 하나였다. 플라톤이 세 번이나 찾아왔고 키케로는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찬양했다. 당시 인구는 30만명이 넘었고 로마나 카르타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도시였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제의 제국이 오늘의 관광지가 되는, 역사란 원래 그런 것이지만···.
시라쿠사가 강력했던 이유는 항구 때문이다. 오르티지아 섬과 본토 사이에 형성된 자연 항구는 지중해에서 가장 안전한 정박지 중 하나였다. 그리스 식민지들이 만든 배들이 이곳에 모여들었고, 시칠리아의 곡물이 이곳에서 지중해 전역으로 실려 나갔다. 조금 전 내가 젤라토를 먹으며 산책한 그 항구 말이다. 지금 관광객들이 셀카를 찍는 그곳이 2500년 전에는 전함들이 즐비했던 곳이다.
시라쿠사의 진짜 매력은 오르티지아 섬에 있다. 작은 다리 하나로 본토와 연결된 이 섬은 시라쿠사의 역사적 심장부다. 좁은 골목길, 바로크 건축물, 그리고 곳곳에 숨어 있는 고대 유적들. 대성당도 아폴론 신전도 아레투사 샘도 모두 이 섬에 있다.
우리는 아레투사 샘을 찾아갔다. 신화에 따르면 님프 아레투사가 강의 신 알페이오스의 구애를 피해 도망쳐 와서 아르테미스 여신에 의해 샘으로 변했다고 한다. 알페이오스는 포기하지 않고 지하 강이 되어 그리스에서 시칠리아까지 바다 밑을 건너와 샘과 합쳐졌다니 정말 집요한 스토킹의 기록이 아닐까 싶다. 그 집착 덕분에 바닷가 바로 옆에서 민물 샘이 솟는다.
바다가 아름다웠다. 단순히 파랗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조금 더 투명하며 조금 더 가까운 느낌으로 바다와 도시 사이의 거리가 거의 없는 샘 주변 파피루스가 자라는 정원도 아름다웠다. 유럽에서 자연적으로 파피루스가 자라는 유일한 군락지라고 한다. 이집트 밖에서 파피루스를 보다니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중국 대나무숲을 보는 느낌이랄까.
파피루스! 이집트의 영광을 안겨준 식물. 대리석에 새기는 것보다 편하고 가벼워서 기록에 능한 재료였던 파피루스는 결국 중국의 종이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다. 기술의 역사란 결국 더 편한 것이 덜 편한 것을 밀어내는 과정이다. 파피루스가 돌을 밀어냈고, 종이가 파피루스를 밀어냈고, 이제 디지털이 종이를 밀어내고 있다. 종이와 펜을 사랑하는 나조차 디지털패드에 똑딱거리며 글을 적고 있으니 말이다.
도망자 카라바조가 남긴 빛
시라쿠사에는 카라바조가 남긴 걸작이 있다.〈성 루치아의 매장> 이다. 카라바조는 살인 혐의로 로마를 떠나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때 시라쿠사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마주하면 한동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림은 생각보다 어두웠고 밝은 부분은 의외로 적었다.
이건 빛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아니라 어둠과 침묵으로 말하는 그림이다. 얼굴보다 그림자가 더 오래 남고, 사건보다 침묵이 더 크게 느껴졌다. 시라쿠사의 빛은 특별하다. 지중해의 강렬한 햇빛이 흰 석회암 건물에 반사되어 도시 전체가 은은하게 빛난다.
카라바조의 트레이드마크인 명암 대비, 키아로스쿠로는 어쩌면 이곳의 빛에서 영감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도망자였던 화가가 남긴 빛. 그것이 400년 후에도 여전히 시라쿠사를 밝히고 있다.
시라쿠사에는 신전의 잔해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다. 아폴론 신전도 흔적만 남아 있었다. 기둥 몇 개, 주춧돌 몇 개.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고 현지인들은 그 옆을 그냥 지나간다. 2000년이 넘은 유적 옆에서 현대인들은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우리도 그랬다. 맛있는 카포나타를 먹었고 젤라토를 핥으며 재밌게 시장을 구경했다. 시라쿠사의 시장은 활기찼다. 생선·과일·채소·치즈·올리브 그리고 견과류. 우리는 견과류를 많이 샀다. 왜 이렇게 먹는 걸까? 우리는 무슨 먹기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처럼 정말 많이 먹는다. 미 선배는 과일을, 후니는 고기를, 나는 이것저것을 계속 기웃거린다.
말린 과일과 견과류를 사고 오는 길에 내일 먹을 양식도 포함해서 쇼핑을 했다. 식비도 많이 든다. 여행의 절반 이상이 먹는 일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랴. 이탈리아에서 먹지 않는다는 것은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눈을 감고 앉아있는 것과 같으니까.
시라쿠사는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을 격퇴한 도시다. 기원전 415년 아테네는 시칠리아를 정복하려 했다. 당시 최강국 아테네의 함대에도 시라쿠사는 항복하지 않았다. 2년 동안의 전투 끝에 아테네 함대는 전멸했고 이것이 아테네 몰락의 시작이 되었다.
투키디데스는 이 전투를 이렇게 기록했다. "승자에게는 가장 빛나는 승리였고, 패자에게는 가장 완벽한 파멸이었다." 7000명의 아테네 병사들이 시라쿠사의 채석장에 포로로 갇혔다. 그들 중 일부는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을 암송해서 풀려났다고 한다. 문학이 목숨을 구한 것, 멋지지 않은가.
아테네를 이긴 도시였고, 아르키메데스를 낳은 도시였고, 플라톤과 키케로가 추앙한 도시였던 시라쿠사는 내게 완벽한 젤라토를 선물한 도시이기도 하다. 시라쿠사의 밤은 조용했다. 바람은 부드러웠고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린다.
내일은 에트나 화산으로 간다. 신들의 대장간, 헤파이스토스의 작업장. 떨리지만 설렌다. 지금도 연기를 내뿜고 있는 유럽에서 가장 활동적인 활화산이다. 잘 입고 가야지. 산꼭대기는 한여름에도 춥다고 했으니까.
☞키아로스쿠로= 명암대조법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밝음을 뜻하는 치아로(chiaro)와 어두움을 뜻하는 오스쿠로(oscuro)의 합성어다. 회화에서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입체감과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법으로 카라바조가 이 분야의 선구자로 꼽힌다.
여성경제신문 박재희 작가
jaeheecall@gmail.com
박재희 작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전공 후 국제경영 MBA를 취득했다. 현대그룹과 DELL, EMC 등 글로벌 IT 기업 마케터로 일하고 미국 벤처 Actifio 아시아태평양 지역 마케팅 총괄대표를 지냈다. 커리어의 정점에서 '인생 리셋'을 선언하고 두 차례 산티아고 순례 후 현재는 여행작가이자 자기계발 리더십 코치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 <산티아고 어게인> , <숲에서 다시 시작하다> , <그 여자, 정치적이다> 등이 있으며 현재 모모인 컴퍼니 대표를 맡고 있다. 그> 숲에서> 산티아고>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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