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여부 기억하겠다"며 군함 파견 압박…공개 반대·신중 반응에 격분
이란 전쟁 매듭 후 우크라전 지원 및 각국 무역·안보협상서 보복 가능성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토요일이었던 지난 14일(현지시간) 오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불쑥 각국에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을 요구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대이란 군사작전을 시작한지 15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란이 사실상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서면서 중동산 원유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유가 상승의 타격이 현실화하는 시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난데없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이 군함을 보낼 것이라면서 중국과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을 차례로 거명했다.
이란의 공격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호위를 위해 군함을 보내라는 요구여서 동맹국의 충격은 컸다.
재집권 이후 고율관세를 앞세워 막대한 규모의 대미 투자를 끌어내거나 미국의 관여 축소를 내세워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는 등 거침없는 일방통행식 행보를 취해온 트럼프 대통령이었지만 파병 요구는 차원이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의 갖가지 무리한 요구에도 보복성 불이익을 우려해 목소리를 내기 꺼렸던 동맹국 사이에서 분명한 거부 입장이 이어졌다.
미국의 전쟁 목표도 확실치 않다는 평가 속에 이란 전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점치기 어려운 '시계제로'의 상황에서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가 거세더라도 동맹국 입장에서는 선뜻 파병을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자칫 군함을 파견했다가 자국민 인명에 피해가 있을 경우 파장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대이란 군사작전의 정당성에 대한 미국의 대외적 설득작업도 거의 없었던 터라 동맹국 여론을 납득시키기도 쉽지 않다.
이란의 핵보유 저지가 자국 안보에 중대 관심사인 유럽 각국도 마찬가지였다. 이란발 위협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는 한국과 일본 등도 신중한 태세를 유지했다.
결국 사흘 뒤인 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대부분으로부터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며 격분을 그대로 드러냈다.
때로 동맹이 적보다 나쁘다는 인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관세 부과 및 국방지출 대폭 확대 요구 등으로 강도 높게 우방을 압박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란 전쟁으로 수세에 처한 시점에 동맹의 호응을 얻지 못한 데 대한 좌절감과 분노를 여과 없이 표출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나토를 비롯한 동맹국이 미국에 지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군함 파견 요구를 관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거의 접은 것으로 관측된다.
48시간 내에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발전소들을 초토화하겠다는 위협을 거쳐 돌연 협상 모드로 선회한 것에서는 이란 전쟁의 출구를 고민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군함 파견 요구를 '없던 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함 파견을 재촉하면서 "참여 여부를 기억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상 참여하지 않을 경우의 불이익을 각오해야 한다는 압박을 담은 발언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의 수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전쟁을 마무리 짓고 나서는 군함 파견 요구에 응하지 않은 데 대한 '뒤끝'을 보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유럽의 경우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곤란한 처지에 내몰릴 수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탓에 트럼프 대통령이 지원 규모 축소 등을 내세워 우크라이나와 유럽에 불리한 종전 합의를 더욱 강도 높게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나토에 회의적인 입장을 연신 표출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를 통한 미국의 유럽 방어 지원에 더욱 소극적 입장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라며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에 선을 그은 유럽에 '우크라이나 전쟁도 미국의 전쟁이 아니다'라고 맞불을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을 포함한 동맹국과의 무역·안보 협상에서 미국우선주의에 기반한 일방적 공세의 강도를 한층 높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어떤 식으로든 '보복성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5개국과 일본이 19일 공동성명을 내고 호르무즈 해협 폐쇄를 규탄하며 안전한 항로 확보에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일정 부분 이런 상황을 감안한 측면이 있다.
군함 파견 같은 군사지원은 하기 어렵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정치적 의지를 함께 천명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려는 취지다. 이후 공동성명에는 한국과 캐나다, 호주 등이 참여해 30개국 정도가 이름을 올렸다.
한국 정부도 예외는 아닐 수 있다. 3천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합의 이후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비관세 무역장벽 완화를 비롯한 여러 요구를 거두지 않는 상황에서 '군함 파견 요구'의 후폭풍이 직·간접적으로 한미 간 협상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미국은 이란 전쟁 개전 열흘여만인 지난 11일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관세 등의 조치로 연방대법원의 위법 판결로 생긴 상호관세의 공백을 메우겠다는 구상인데,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등에 대해서도 파병 문제와 관련한 불만이 있다면 향후 301조 조사 관련 관세 부과때 그것이 투영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온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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